일본의 방사능 문제로 어물전이 썰렁하고 생선 위신이 말이 아니지만,
그나마 국산 생선은 방사능에서 안전하다고 한다.
그 덕에 가을 갈치 맛을 제대로 보았다.
제주갈치의 은빛 아름다움은 독보적인 데가 있다.
어느 생선인들 독보적이 아니랴만, 나는 갈치 외에 은빛 찬란한 생선을 따로이 알지 못한다.
갈치 비늘을 벗길 때면 참으로 아깝다는 생각이 든다. 그 아름다운 은비늘을 없애야 하다니...
그러나 갈치 비늘엔 영양가가 없고 먹어서 득될 게 없어 긁어내고 조리해야 한다.
갈치 비늘을 벗기고 양파와 감자와 청량고추를 넣어 매콤 달달하게 졸인 갈치 조림은
다른 반찬이 필요없을 정도로 입안에 짝짝 붙었다.
아들 혼자 먹는 저녁상에 갈치를 놓곤,
"얘, 갈치가 아니라 꿀치같다. 어쩌면 이렇게 맛있니? 갈치가 고등어같이 살이 많으면 얼마나 좋을까."
했더니, 아들도 맛나게 먹는다. 두 토막을 주었건만 한토막만 먹고 감자를 골라 먹는다.
말은 없어도 나는 아들이 갈치 아껴 나에게 양보하기 위해 그런다는 걸 안다.
"갈치 마저 먹어라." 해도 소용이 없었다.
물론 나도 한토막만 먹었다. 나머지는 아껴서 아들과 해외에서 돌아올 며늘에게 더 먹게 하기 위함이다.
모든 음식이 그렇지만 생선조림도 갓 조리했을 때가 가장 맛있다.
이튿날 다시 갈치를 올리니 전날 만 못했다. 그래도 그 맛이 어디로 도망가진 않는다.
아들은 다시 작은 토막 하나만 먹고 남긴다.
나도 감자와 양파 위주로 먹고 갈치를 남겼다. 원재료가 맛나니 감자와 양파맛도 훌륭하지만,
말이 없는 가운데 우리 모자의 갈치 양보는 끈질기게(?) 이어진다.
어제 저녁에 귀가한 며늘의 밥상에 갈치를 놓고
"갈치 조림이다." 했더니, 입 짧은 며늘도 맛나게 먹는 듯 했다.
날이 저물어 나는 며늘이 밥을 먹는 걸 보며 아들 집을 나섰다.
2002년 무렵, 나는 대구에 머물며 40여일간 매일 갈치를 먹은 적이 있었다.
굵은 갈치를 사서 매일 먹었다. 어찌나 맛있던지 물리도록 먹고 싶어 절여 먹고 구워 먹고 먹고 또 먹었다.
요즘 방사능 문제로 생선값이 내렸다지만, 그래도 갈치 같은 생선은 자주 먹기는 가격이 부담스럽다.
그럴 때 마다 위안처럼 혼자 중얼거리곤 한다.
"갈치 값이 싸봐라, 밥 맛 좋아 뱃살 밖에 더 늘어나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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