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 한자락

식어간다는 것

tlsdkssk 2012. 10. 20. 06:36

사람이 늙고 병들어 죽는다는 건 몸이 식어가다 마침내 차가워진다는 걸 의미하는 것이리라.

친정아버지의 임종을 지켜보던 순간이 떠오른다.

의식이 꺼져가는 아버지 곁에서 나는 계속 아버지의 팔다리를  매만지고 있었다.

어느 시점에 이르자 아버지의 체온은 추운 계절에 식어가는 국처럼 낮아지기 시작했다.

미미하나마 좀전까지 남아 있던 체온이 다 어디로 새었는지 모를 순간 아버지의 숨은 끊기었고

몸은 거짓말 처럼 차가웠고, 팔과 다리는 마른 명태처럼 탄력을 잃은 채 나무토막처럼 뻣뻣했다.

아버지의 체온과 의식은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다.

아버지는 끝간 데 모를 나락으로 추락하여  내 곁에 계시되 그것은 한낱 우화한 곤충의 껍질처럼

빈 것에 지나지 않았다. 

죽음이란 다른 게 아니라 차갑고도 딱딱한 것이었다.

 

현대인의 체온이 많이 떨어졌다고 한다.

정상 체온을 지닌 사람이 드물다고도 한다.

먹거리와 제반 환경및 스트레스가 체질에 영향을 주어 체온을 낮게 한다는 것이다.

나도 점점 체온이 식어지는 것일까.

추위를 견디기가 점차 어려워진다.

언젠가 우리 집에서 엘리랑 잠자리에 들었을 때

나는 엘리의 머리가 뜨거워 열이 나는 줄만 알고 법썩을 떤 일이 있었다.

우리 집에서 하룻 밤 묶을 예정이었던 손녀와 아들을 서둘러 집으로 돌려보낸 다음 날

아들은 전화로 이렇게 말했다.

엘리가 열이 난 게 아니었다고. 집에 가 체온을 재보니 37도 였다고.

나도 엘리에게 체온계를 썼으나 체온은 37도 정도였다.  

일반적으로 정상 체온은 36.5~37도이다.

한데도 내 체온계가 불량이라고 여겼다. 내 손바닥에 와 닿은 엘리의 체온은 못되어도 38도는 되는 것 같았으니까.

몇년 전만 해도 겨울에 난방을 거의 하지 않고 지냈다.

친구  초청으로 뉴질랜드 여행을 갔을 때 거기는 이른 봄이었는데 실내온도가 제법 서늘했다.

한데도 친구 가족들은 아무런 난방 시설을 하지 않고 지내는 것이었다.

거기선 환경 오염을 우려하여 그렇게 지낸다는 것이다.

친구의 집은 고급 주택가에 있었음에도 우리나라 같은 난방 시설은 없었다.

추위가 심할 때면 전기 난로의 도움을 받으며 지냈다.

친구는 내가 자는 침실로 찾아와 전기 난로를 주었지만, 나도 그네들처럼 그냥 견뎌보았다.

옷을 든든히 입고 이불을 잘 덮으니 머리가 맑고 쾌적하니 좋았다.

그 해 겨울, 나는 남편의 실직으로 인한 생활비 절약과 환경오염방지에 일조하겠다는 생각으로

겨울 난방을 하지 않고 지냈다. 손님이 오시거나 아주 추운 날에만 살짝 살짝 난방을 틀며 지냈다.

난방을 안하니 실내가  건조하지도 않아 가습기도 거의 필요 없고 실내 공기도 맑아 기분이 좋았다.

대신 옷은 두툼하게 끼어 입었다.   

 

아직 영하의 기온도 아닌데 밤이나 새벽이면 추위를 느낀다.

오늘 새벽에도 추워서 거실로 나오기가 싫었다.

이불 속에서 김훈의 소설로 추위를 달래었다.

체온계를 찾아 내 체온을 재었더니 35.4도.

새벽엔 사람 체온이 내려가는 것인가. 이따 다시 재어볼 생각이다.

암튼 나는 늙어가고 있으니 체온도 점차 하강하는 중일 것이다.

그러니 얼마 전과 같은 해프닝이 일어난 거겠지.

내 체온이 낮은 건 생각 못하고 엘리에게 열이나는 것으로 착각한 것이다.

체온이 식어가는 인생의 황혼을 무엇으로 덥힐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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