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 한자락

밴드쟁이 엘리

tlsdkssk 2012. 3. 31. 05:25

손녀 엘리는 밴드 부치는 걸 유난히 좋아한다.

손이나 발등을 조금 스치기만 해도 서랍 뒤져 밴드부터 찾는다.

몸에서 밴드가 떨어질 날이 드물 지경이다.

어제는 현관에 벗어놓은 엘리의 구두 코에 밴드가 붙여져 있는 걸 보았다.

구두 앞쪽에 조금 흠집이 났었는데 엘리는 구두에도 밴드를 붙여놓은 것이다.

언젠가는 장난감 곰 인형 코에도 밴드를 붙이는 걸 본 적이 있다.

내가 엘리 나이 무렵이었을 때 나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요즘 엘리는 위험과 비극의 주인공이 되는 걸 즐겨하는 것 같다.

모습이 보이지 않아 기웃거리면 엘리는 곧잘 식탁 밑이나 책상 밑에 가서 혼자 옹크리고  있다.

뭘하느냐 물으면, "저는 잠자는 숲속의 공준데요, 지금 괴물이 저를 잡아먹으려고 해요."한다.

할머니가 괴물을 물리쳐주겟다고 하면 그 괴물은 아무도 물리칠 수가 없어 큰일이라고 한다.

왕자님을 불러주겠다고 했더니 여긴 왕자님도 올 수가 없는 곳이란다.

한수 더 떠 하느님도 올 수가 없다는 것이다.그러면서 혼자말로 무어라 중얼거린다.

내가 엘리 만할 적엔 배게를 엎고 곧잘 충무로 거리를 돌아다니곤 했다.

배게는  아기였으며 나는 언제나 위기에 처한 불행한 엄마였다.

사람이 보이지 않는 틈을 타  나는 아기를 달래곤 했다.

그 시절 내가 좋아햇던 이름은 금순이.

내 이름이 금순이가 아닌 것이 속상할 지경이었다.

당시 유행하던 <굳세어라 금순아>라는 노래 덕이었을까.

우리집 주변엔 레코드 가게가 있어 나는 늘 그 노래를 들었다.

대여섯살 무렵의 유년풍경은 기억에 선하다.

엘리도 성인이 되면 요즘 저의 모습을 기억해 낼것이다. 하지만 기억이란 완벽히 재생되는 게 아니니

자기 구두에 밴드를 붙쳤던 일은 까맣게 잊을런지 모른다.

밴드쟁이 엘리야, 네가 크면 할머니는 꼭 그 얘기를 들려줄 거야.

그리고 그저께 밤 침대에 누어 네가 할머니에게 물었던 질문도 들려줄 것이다.

그 날 너는 이렇게 물었지.

"할머니, 할머니는 할머닌데, 왜 손에 나무같은 거(지팡이를 말하는 것이었으리) 도 들지 않고

얼굴에 주름도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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