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정경을 바라보는 순간, 내 입에서 '가을의 침몰'이란'말이 나왔다.
어제 1,157미터 고지의 용문산 정상을 힘겹게 오르고 하산하는 길이었다.
10월의 마지막 날 용문산은 절반의 가을과 절반의 겨울이 혼재되어 있었다,
가을에서 겨울로 올라갔다가, 다시 겨울에서 가을로 내려오는 중이었다.
한 지점에 이르자 그윽한 가을 산의 정취가 눈 아래 펼쳐지는데
순간 그 아름다움에 후욱 빨려들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겨울의 밑자락에 , 내 발 아래에 거대한 가을이 고여 있지 않은가.
정상에 있던 가을이 겨울에 밀려 몽땅 그곳으로 몰려가 침몰(침잠)되어 있었다.
소나무라곤 보이지 않는 그 산자락엔 키가 훌쩍한 활엽수만이 가득했고,
나무들은 내장산 단풍이 내뿜는 것 같은 강렬하고 화려한 색체와 달리
은은하고 미묘한 색감을 풀어내며 황혼녘의 고즈넉함과 함께 아주 고요히 운집하여 있었다.
아, 황홀하도록 아름다웠던 가을의 침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