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O, 어제 말한 내 친구를 뜻한다.
어제 예고편에서 나는 오가 도무지 자기 자랑을 안한다는 말을 했는데,
착각하지 말 것이, 자랑이란 결코 내세울 게 많은 자랑스런 한국인만의 전유물이 아니란 점이다.
별로 자랑거리가 없는 사람이라도 얼마든지 자랑할 수 있는 게 자랑질의 속성이기에 그렇다.
하기에 평생 자랑 한번 못해본 사람은 거의 없을 줄로 안다.
나도 자랑질을 간간히 하는 편인데, 그러면서도 남의 자랑질은 못봐주는
고약하고도 이중적인 근성을 지니고 있다.
내게는 용납되는 자랑과 용납되지 않는 자랑이라는 두가지 잣대가 있다.
남이 내 앞에서 자랑을 할 때 자랑하는 상대 음성의 톤이 덤덤하고 약간 검연쩍어하거나
미안한 감을 품고 있으면 얼마든지 용납이 되고 그 자랑을 나도 함께 기뻐하며 동참해준다.
또한 장난하듯 유머러스하게, 혹은 애교를 섞어 해도 그 윤활유에 미끄러져 자동 통과가 된다.
한데 만약 자랑질을 하는 상대가 습관성이거나 자기도취와 자기 현시욕에 넘쳐 천박함을 내보이면
그때부턴 내 비위가 요동을 치기 시작한다.
물론 내 얼굴은 여일하게 거짓 평화를 유지하고 있긴 하지만....
오는 정말 제 자랑을 할 줄 모른다.
여자들, 특히 엄마들이 잘 하는 자랑 중에 자식자랑이 있다.
오는 영어 선생을 하다가 늦은 결혼을 하여 자식도 늦게 두었다.
둘째인 아들은 몇년 전에 서울대(건축공학)에 합격한 재원이다.
둘째가 대입을 치르던 해 합격자 발표가 날 무렵, 나는 눈치 보아가며 오에게 아들 소식을 물었다.
평소 내게 자기 아들이 별로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아 걱정이라는말을 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자 오는 아무 일도 없었던 듯 덤덤하게
"으응, 홍대랑 연대는 발표가 나서 합격이 확정됐는데 서울대는 아직 발표를 안해 모르겠어."
하는 게 아닌가.
그 보다 더 오래 전, 자기 아들이 아주대 수십모집에 합격했다고 방방 뛰며
머리 감고 있던 나에게 전화를 왜 늦게 받느냐고 따지던 한 지인의 태도와는 아주 대조적인 모습이었다.
오의 아들은 서울대도 합격했다. 성적이 좋아 서울대 장학생으로 들어갔다.
오는 그 사실도 나중에야 알려주었다.
자랑을 모르는 또 한 사람, 그는 H다.
그는 자기 글이 교과서에 실려도 내게 한마디도 알려주지 않았다.
모처에서 언론인 상을 받아도 알려주지 않았다.
내가 풍문으로 듣고 아는 척을 하면 그제사 빙긋 웃음 한번 흘리고 만다.
당시는 나와 자주 연락을 할 때였는데도 그랬다.
양반과 상놈은 자랑질에서 가름나는 것 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