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처없이 돌아다니기를 좋아한다고 자처하는 나에게도 타성과 헛점은 있어서
뛰고 날아봤자 늘 딛던 동선만을 되풀이하며 지내왔다.
그것이 근거리든 원거리든 결국은 거기서 거기였다.
하물며 우리 아파트 단지에서도 그러 했다.
늘 가던 길, 나무 그늘이 있는 길, 조금이라도 걸음 수를 줄일 수 있는 길을 택해 걸었다.
그러다 어느날 발길을 조금 달리 움직여보았다.
그러자 놀랍게도 전혀 모르던 새 세상이 보이질 않는가.
나는 거기서 쑥이며 돌나물이며 신선한 나물거리를 듬뿍 뜯을 수 있었다.
또 얼마 전엔 동네 산책을 하며 이따금 거닐던 중랑천 길 대신 샛길로 접어들었더니
중랑천보다 훨씬 운치 있는 길이 펼쳐지고 있었다.
이런 점은 사람과의 관게에 있어서도 예외가 아님을 새삼 깨닫고 있다.
다른 삶과의 소통이란 영혼과 영혼으로 전해지는 감동적인 파동이며
충만함과 행복의 느낌을 새롭게 만들어내는 생명의 에너지라고도 하지 않는가.
낯선 길을 걸을 때 간혹 위험이 기다리고 있을 수도 있을 것이다.
언젠가 한 겨울 날 홀로 도봉산 주봉을 오르다가 낯선 길로 빠지는 바람에 애를 먹은 적이 있었다.
길인가 하고 걷다 보면 벼랑이 나오고 주위에 보이는 사람은 없고 나는 한동안 산길을 두려운 마음으로 헤매었다. 하지만 결국 주봉에 다달았고 낯선 것에 대한 두려움을 이겨낸 자신에 대해 작은 감동이 일었다.
낯선 사람과의 소통을 트는 일 역시 때론 실망이나 위험의 요인이 잠재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사람에겐 고유한 체취라는 게 있어 어느만큼 인생을 살아내다 보면
상대와 많은 말을 나누지 않고도 그 사람의 됨됨이나 성정이 감(感)으로 전달되어 온다.
세부적인 것까지야 알수 없다 해도 내가 그에게 접근해도 될것인가 아닌가 하는 정도는
최소한 파악되어지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