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詩情을 더듬어
1. 가을 밤 빗소리를 들으며
최치원
가을바람도
씁쓸히 읊조리나니
세상길에
참 벗 없음이여!
창밖엔
삼경의 비
등잔 앞엔
만리의 마음-
秋風唯苦吟 世路少知音
窓外三更雨 燈前萬里心
<秋夜雨中>
2. 뜻 가는 대로
길 재
시냇가 초가집에 찾는 인 달과 바람,
외객은 아니 오고 산새랑 지껄이다.
대숲에 평상 옮기어 누워서 책을 본다.
臨溪茅屋獨閒居 月白風淸興有餘
外客不來山鳥語 移床竹塢臥看書
<述志>
3. 무 위
만물이 때를 따라
변천하듯이
이 몸도 한가로이
자적(自適)하노라
몇 해째 애쓰는 맘
점차 줄어져
길이 청산 대할 뿐
시도 안 짓고….
자적 : 제 마음 내키는 대로 즐김.
4. 산 길
강 백 년
십리에 인기척 없고
산은 비었는데 봄새가 운다.
중 만나 앞길을 물었건만
중 가고 나니 길은 도로 헷갈려….
-蝸足: 어찌 산길뿐이랴? 인생길 또한 그러한 것을-
十里無人響 山空春鳥啼
逢僧問前路 僧去路還迷
5. 금강산 들어가며
김병연(金 笠)
글 읽어 백발이요
칼 갈아 사양인데,
하늘 땅 그지없는
한 가닥 한은 길어,
장안의 붉은 열 말
기를 써 다 마시곤
갈바람에 삿갓 쓰고
금강으로 드노라.
書爲白髮劍斜陽 天地無窮一恨長
痛飮長安紅十斗 秋風簑笠入金剛
儉斜陽: 한평생 검술을 익혀오는 동안, 복수를 다지며 갈아온 장검 그 칼의 사양에 반사하는 섬뜩한 검광
6. 시작 과정 (詩作過程)
정 지 윤
가장 영롱한 곳에
영감(靈感) 은 서렸어도
큰 공력(功力) 안 들이곤
표현해 낼 순 없네.
묘(妙)에 들려면
범굴을 더듬어 거쳐야 하고,
기(奇)로 빼나려면
용문감(龍問龕) 뚫는 일에 어찌 덜하리?
금당 화창한 날
꽃은 피어 임자 없고,
옥루 맑은 밤에
달은 유정도 하다.
그윽한 오솔길을
때로 혼자 거닐지나,
큰 집 울타리엘랑
가까이 가지 말지어다.
最玲瓏處性靈存 不下深功不易言
人妙應經探虎穴 出奇何減?龍門
金塘融日花無質 玉殿淸霄月有魂
幽徑只堪時獨往 勸君莫奇大家藩
<作詩有感>
7.대관령을 넘으며
신사임당
백발 慈母두고 홀로 가는 이 마음을,
대관령 굽이굽이 돌아뵈는 강릉땅을,
저무는 산 푸름을 덮어 흰구름이 가리네.
慈親鶴髮在臨瀛 身向長安獨去淸
回首北坪時一望 白雲飛下暮山靑
<踰大關嶺望親庭>
8. 기다림
이 옥 봉
오마더니 왜 이리 늦나?
매화는 벌써 지려 하는데,
문득 까치 소리 하 반갑더니,
거울 속 눈썹만 괜히 그렸네.
有約來何晩 庭梅欲謝時
忽閒枝上鵲 虛畵鏡中眉
<閨情>
9. 밤에 앉아
강정일당
밤 깊어 고요하고, 빈 뜰에 달 밝은 제,
씻은 듯 맑은 마음 탁 트여 활짝 개니,
참 나의 본디 모습을 속속들이 볼러라!
夜久群動息 庭空晧月明
方寸淸如洗 豁然見性情
<夜坐>
흰머리를 어루만지며…
장지완
남들은 밉다지만
백발이 난 좋으이.
뭐래도 오래 삶은 ‘소주선’ 긔 아닌가.
돌아보아 몇 사람이나
이 경지에 이르렀느뇨?
검은 머리로도 다투어
무덤길 가는 터에….
小住仙 : 잠시 머물러 가는 신선
人憎髮白我還憐 久視猶成小佳仙
回首幾人能到此 黑頭爭去北邙阡
<白髮自嘲>