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방 풍경

정답이 없다

tlsdkssk 2010. 10. 15. 23:42

정답이 없다

집 앞 공원 청소에 나선다. 경비원에게 빗자루와 쓰레받기를 달라고 하니 만류한다. 구청에서 가끔 할머니들에게 일당을 주면서 시키므로 할 필요가 없다는 얘기다. 회원으로 있는 단체의 봉사활동 숙제라고 하고 청소용구를 받아 드는데 여행지에서의 기억 하나가 머리를 스친다. 공항을 빠져나와 열 시간이 넘도록 참았던 담배를 피워 물고 스탠드 재떨이를 찾고 있을 때 가이드가 말했었다. “아무데나 버리세요. 그래야 청소부들도 일거리가 있습니다.”

길부터 쓸기 시작한다. 이런 일을 해보는 게 도대체 얼마만인가. 새마을운동 교육에 다녀와서 한동안 골목 쓸기를 했었다. 그게 1975년이니 30년이 다 되었다.

공원에 들어선다. 한쪽 켠에 어린이 놀이기구가 있지만 이곳은 길 건너 빌딩 사무실의 젊은이들이 많이 찾는 소공원이다. 농구 골대 두 개는 일요일인 오늘도 그들 차지다. 3층 빌라의 지붕과 키 재기를 하려는 은행나무들과, 두터운 그늘을 크게 드리운 느티나무들, 그 사이사이에 벤치가 놓여 있다.

쓰레기는 담배꽁초가 대부분이다. 어쩌다 흙에 반쯤 묻힌 비닐봉지라도 캐내면 왕건이를 건진 기분이다. 놀이터 모래밭에서 천 원짜리 한 장을 발견한다. 아이 셋이 놀고 있어 물어본다.

“얘들아 아저씨 돈 주웠다. 잃어버린 사람?” 남자아이 둘이 서로 얼굴을 쳐다보더니 그런 일 없단다. “얼마짜리인지 맞추면 그냥 줄게.” 혼자 놀러 나온듯한 여자아이, 고개를 세차게 흔든다. 난처하다. 문득 쓸 데가 생각난다. 꼬깃꼬깃 접힌 돈을 주머니에 넣었다.

얼핏 깨끗해 보였지만 쓰레기는 찾으려 드니 없는 것도 아니다. 어느 새 모자 속에 땀이 챈다. 공원가로등 옆 벤치에 앉는다. 지난겨울 은행나무, 나 셋이서 대화했던 바로 그 벤치다.

말을 먼저 건넨 건 벤치였다. "나무야, 너도 여기 앉으렴. 다리 아프겠다. “

나무가 대답했다. “괜찮아, 난 서 있는 게 앉은 거야.”

내가 벤치에게 말했다. “너도 겨울에는 사람들이 앉아주지 않아서 외롭겠다.”

나는 그때 3층 베란다에 앉아 그들 곁에 있는 착각을 했었다. 주황색 가로등 불빛이 분위기를 잡았고…… .

후문 쪽, 느티나무 그늘에서 신문지를 줍다가 ‘다짜고짜’를 묻은 자리를 살핀다. 그날 딸 재희가 나뭇가지를 꽂아주었는데 비에 씻겨 보이지 않는다. 다짜고짜는 5년 전에 재희가 야자(야간자율학습)끝나고 귀가하던 길에 주워온 새끼거북이 이름이다. 늦가을 기온이 뚝 떨어진 밤, 슈퍼마켓 입구에 웅크리고 있던 녀석이 재희에게 발견되었다. 몸길이가 내 새끼손가락 두 마디쯤 되는 놈이다. 수족관에서 갓 팔려나온 후 잘못된 듯했다. 샤워로 마사지를 시키고 따뜻한 물에 담가두었더니 녀석은 고맙다는 듯 목을 길게 빼어 머리를 꾸벅꾸벅 했었다. 그 해 겨울, 두 번씩이나 없어져서 식구들이 온 집안을 뒤진 후에 재희가 붙인 이름이 ‘다짜고짜‘다.

아파트에서 동면 없이 잘 먹고 자라다가 작년 늦가을 이곳 빌라에 이사 와서 녀석은 환경의 변화를 이기지 못했다. 봄이 오고 5월이 되어도 먹는 것 자체를 잊어버리기나 한 듯 내 속을 태우더니 며칠 전 목을 빼어 하직인사를 했다. 녀석의 목이 그렇게 긴 것은 그 날 처음 보았다.

쪼그리고 앉아 꼬챙이 한 개를 다시 꽂는다. 녀석은 늘 겁이 많았다. 허겁지겁 먹다가도 들여다보면 물속으로 얼른 숨었다. 우리는 그때마다 시선을 피해주었고 더 이상 먹지 않으면 물이 더러워지지 않도록 남은 먹이를 건져내주는 정성을 들였었다. 외로울 것 같아 친구들을 사 넣어 주었지만 다 오래가지 못했다. 그 놈들 때문에 아내는 다짜고짜에게서도 정을 떼었고, 재희는 대학생이 되어 바빠졌다. 나는 녀석을 손바닥 만 하게 키우고 싶었는데… .

녀석의 장례식을 치렀다. 몸을 씻기고 티슈로 싼 다음 은색 비닐봉지에 담아 삽을 들고 공원에 갔다. 비닐봉지는 관이었다. ‘아메리카 인디언의 가르침’에 나오는 구절을 인용하면서 왜 느티나무 밑에 묻는지를 재희에게 설명했다. <할아버지는 늠름한 전나무 한 그루를 가리키셨다. “내가 가거들랑 내 몸을 저 나무 곁에다 묻어주게. 저 나무는 무수히 새끼를 쳐서 그 숲으로 나를 따뜻하게 해주고 보호해줬으니까… . 내 한 몸이면 저 나무의 2년 치 양식은 될 걸세.”> 재희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 둘은 녀석의 머리와 등을 한 번씩 쓰다듬었고 관에서 꺼낸 채로 묻었다. “꼭꼭 밟아주자, 더 꼭꼭.”

후문을 나서서 공원 옆길을 쓸고 청소를 끝낸다. 경비원에게 청소용구를 돌려준다. 주운 돈을 꺼낸다. “손주 갖다 주세요.”하면서.

점심을 먹다가 주운 돈 얘기를 했다. 그 자리에 그냥 두고 왔어야 하는지 마음 한 켠이 찜찜했기 때문이다. 재희가 말했다.

“이제 가면 언제 오나 하는 거 있잖아요. 막대기 새끼줄에 돈 꽂는 거….”

“노잣돈 말이냐?”

“네.”

재희는 녀석을 생각하고 있었다. 다짜고짜의 노잣돈이라… .그래, 녀석에게 노잣돈이 필요할 리 없겠지만 그 방법이 한결 나을 뻔했다. 그것은 머리로 생각하는 것과는 다른, 감성에 의한 판단이 아닌가. 어쩌면 꼬챙이에 꽂힌 걸 보고 누군가가 기분 좋게 가져가는 것이 그 돈의 바람이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인간 삶의 에너지이기도 한 감성은 그 자리에 그냥 두라는 도덕성이나 경비원 손주에게 주라는 배려심 만큼이나 우리 행위의 모티브가 될 수 있다. 하지만 이들 세 가지 형태로 나타나는 행위의 그 어느 것도 정답은 아닌 듯하다.

공원 청소는 또 어떤가. 내가 할머니들의 일자리를 빼앗았다면 이것도 생각해볼 일이다. 봉사활동의 사회정화기능은 일반론이지만, 일자리는 생계이며 생계는 절실한 문제가 아닌가. 더구나 소수의 의견이 옳을 수도 있으니 어느 것이 정답인지 나로서는 자신이 없다.

안 하던 청소를 한 탓일까. 오늘은 이래저래 정답이 없다. 정답이 없다함은 다 정답이라는 의미도 되는 것이다. 정답이 아닌 것들이 정답이라면 이것 또한 그 스스로 정답이 아니기는 마찬가지다.

세상만사에 정답이 없다. 그런 세상을 우리는 열심히 살아가고 있다.

(200x16) 2000년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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