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방 풍경

이름과 직함

tlsdkssk 2010. 9. 10. 07:16

이름과 직함

자신을 소개할 때 직함을 생략하는 경우를 자주 본다. 산학연(産學硏) 조찬회의시 산업체에서 나온 사람이 00회사 아무개입니다 라고 할 때 그는 사장이다. 학계의 경우 00대학교 아무개입니다 라고 하는 이는 경륜 있는 교수이며, 자기 이름에 교수 직함을 붙이는 사람은 연륜이 짧거나 명함을 받아보면 조교수인 경우가 많다.

소개하는 경우가 아닐 때 자기의 이름과 직함을 말하는 상황은 좀 복잡하다. 윗사람의 전화를 받을 때 ‘A(이름)부장’입니다, 라고 하는 사람이 있다. 그것은 이름을 빼고 ‘XX부장‘입니다 라고 직책만을 말하는 것보다도 못하고 -상황에 따라서는 직책만 빨리 말하는 게 좋을 때도 있고, 직책과 관등성명을 똑바로 대야하는 경우도 있지만 -이름만 말하는 것보다도 훨씬 못하다. 이름만 말 하는 것은 자기의 현 직위가 과분하다는 것을 윗사람에게 암시하려는 자세일 수 있으며, 그렇지 않은 사정이더라도 겸손한 자세임에는 틀림이 없다. 나는 회장께서 찾으시거나 전화응대 때에 꼭 이름 석 자만 말한다.

이름과 관련한 지혜로운 일화가 있다. 대우빌딩에 있는 모 은행의 지점장에게 김우중 회장이 비서실에서 연결해 놓은 전화통에 대고 “저 우중입니다”했다. 일시적인 자금협조를 부탁한 그 전화에 성까지 빼고 이름 두 자만 달랑 말하는 통에 ‘그만 감격하여 오줌을 쌌노라’는 지점장의 뒷얘기는 화제가 되었고, 이런 사소한 것도 대우의 成長史에 숨어 있다고 한다. 그런데 나는 이 실화를 뛰어난 비즈니스 감각의 한 예인 동시에 ‘이름과 직함’의 좋은 사례도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나에게는 버리지 못하고 있는 메모지 한 장이 있다. 편지도 아닌 그것의 전문(全文)을 옮기면 다음과 같다.

 

나무는 가만히 있어도 바람이 불면 흔들리고

눈이 오면 눈꽃이 핍니다. 감사합니다. B이사.

 

B이사는 나와 근 20년 동안 두 직장을 함께 다닌 직장 후배이며 그 중 15년 동안은 나의 부하직원으로 일하였고, 나이는 9년 연하이다. 일을 우선으로 하는 내 직장관 때문에 업무추진력이 뛰어난 그는 남들이 시기할 정도의 많은 일을 하였으며, 그것으로 하여 나는 윗분으로부터 그를 편애한다는 지적을 받기도 했다. 그런데 그에게는 과시욕과 오만이라는 -내게도 약간의 책임이 있는-단점이 있었다. 2년 전, 아무도 대신 져줄 수 없는 사유로 그는 회사를 떠나게 된다. ‘B이사’다음에 ‘올림’이라는 두 글자마저 빠져 있는 그 메모지 한 장을 남기고….

나는 대단히 실망했다. 이 회사에 소개한 내게 누를 끼친 점은 차치하고라도 평소 그렇게 자주 충고하고 야단도 쳤는데, 인생의 전환점이 되는 상황에서조차 그는 조금도 개전의 기색이 없단 말인가. 자기를 나무에 비유하고 남들을 바람이나 눈에 비유한 것이 무언가 여운을 남기는 대목이기는 했지만, 이미 그런 것으로 판단을 할 단계는 지나 있었다. 내 방에 와서 작별인사를 하면서 회사가 불러줄 날이 언제쯤이겠느냐고 물었을 때 나는 대갈(大喝)하였다. 무조건 근신하라고, 사람이 달라지기 전에는 나를 만날 생각을 말라고. 그 순간 내 머리 속에 바로 그 ‘B이사’가 지울 수 없는 분노의 씨앗이 되어 자리 잡기 시작하였다. 그 단어 하나가 그의 단점 두 가지를 더 확실히 설명이나 하는 듯…. 그러나 그 자리에서 그것을 거론하는 것만은 참았다. 어쩌면 그것은 마지막 벌이어야 하며 언젠가는 그에게 말해 줄 기회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 후 새해와 명절을 맞을 때마다 전화라도 한번 해줄까 하다가 오늘까지 왔다. 그 ‘B이사‘만 생각하면 아직 멀었다는 생각이 들면서 내 감정을 눌러버리곤 한 것이다.

직함의 사용에 내가 이렇게 엄격한 데에는 오랜 뿌리가 있다. 학교를 졸업하고 사회에 첫 발을 내디딘 해에 나는 어떤 사정으로 검찰 고위층의 한 어른에게 부탁하러 갔는데 그 분은 명함의 뒷면에다 관할 경찰서장에게 ‘이 사람이 억울하지 않도록 선처하시오’라고 쓰더니 명함 앞면의 지검장 글씨에 사선(斜線)을 긋는 것이었다. 지검장이라면 일선 경찰서장에게는 가히 할아버지 격이 되는 직함인데, 그것을 지우는 것이 너무 인상적이었다. 그것은 겸양지덕을 나타내려는 유교적 관습이라는 것을 나중에 알았다. 요즘은 흔한 직함이지만 그 당시는 많지 않았던 은행의 지점장들도 명함을 소개장으로 사용할 때 직함을 지우는 것이 관례였다.

내 이름은 욕이다. 고등학교 때 까지는 몰랐는데 서울에 와서 대학친구들이 ‘병태 같은 자식’하면서 서로 내 이름을 부르는 것을 보고 너무 놀랐다. 될 수 있는 한 나는 내 이름을 말하지 않으려 애쓴다. 지금도 “영자 씨 잘 있어요?”하는 농담을 캐디가 걸어오면 골프공이 잘 안 맞는다. 내 이름에 관련되는 말은 듣고 싶지도 않은 것이다.(영자는 히트영화 ‘고래사냥’과 ‘영자의 전성시대’등에서 어줍게 순진하고 사려 깊지 못한 행동을 하는 병태의 애인이다.) 그런데도 지금껏 나는 상사에게 내 성에다 직함만을 붙여 말한 기억이 없다.

마음이 겸손하면 행동도 겸손하다. 품성이 겸손하고 매너도 훌륭한 사람은 윗사람에게 자기를 C상무‘라고 표현해도 오만스럽지 않다. 하지만 겸손하지 못한 사람은 말이라도 조심해야 한다. 자기 신분을 표현하는 말 하나를 적절히 사용하지 못할 때 그는 자칫 오만하게 보이는 것이다.

2년이라는 세월이 너무 길었다면 그것은 기대가 컸던 만큼 벌도 커야하며, 또한 그를 유난히 좋아했기 때문일 것이다. 오만의 치료약은 고통이라 했던가. 그러나 약이 과하여 비굴에 이르렀을까 걱정이다. 이제 그 ‘마지막 편지’를 돌려주면서 술 한 잔 권하는 자리에 그를 초대해야겠다. 자기과시욕도 지속적인 자기발전을 위하여 조금은 필요하다는 격려의 말도 그 술잔에 담아서….

‘이름과 직함’에 대해 무심코 실수를 한 것이라는 변명이라도 기대하며 이제 그를 만나려 한다.

 

** 그런데 세상일이란 참 이상한 것이다. B이사의 그 메모지는 여직원이 필사(筆寫)한 것으로, ‘감사합니다.’ 다음에 직함을 빼고 이름 석 자만 쓴 것을 그녀가 ‘B이사‘라고 옮겨 쓴 것임이 드러났다. 상사와 부하 직원에게 남기고 싶은 글들을 한꺼번에 한 통의 편지 속에 담았는데, 내게 해당되는 부분을 뽑아 적으면서…….그녀로서야 상사의 이름이니까 직함을 빼지 않는 것이 당연할 테니까.

1997년 5월 (200 x 17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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