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방 풍경

사투리 (一)

tlsdkssk 2010. 9. 6. 19:23

사 투 리

단골 목욕탕에 가서 샤워를 하면서 보면, 이런 팻말이 붙여 있다. ‘물 절약은 양심입니다요’

‘입니다’로 충분한데 ’요’는 왜 붙였는지 모르겠다. 친구들 여럿이 모인자리에서 말했더니 호남사투리란다.

인기 TV연속극 ‘해신’에 보면 ‘자미부인’에게 보고하는 녀석이 자주 “입니다요”하던 게 생각난다. ’까요’도 자주 썼다. ‘합니까요?’ ‘하겠습니까요?’등으로.

‘뜨레모아’라는 간판이 붙어 있는 카페가 있다. 해설판에 ‘제주도 방언인데 ‘서로 사랑합시다.’라는 뜻‘이라고 적혀 있다. ‘따뜻한 커피 한 잔에 따스한 사랑을 담았습니다.’의 의미로 가게이름을 붙였단다.

경상도에선 ‘누나’를 ‘누부’라 한다. ‘서울 1945년’이라는 연속극에 보면 함경도광산에서 일하던 누나가 폭발사고로 죽었는데 “누부가 죽었다”고 울부짖는다. 함경도 사투리다. 경상도와 함경도는 동해로 연결되어 있어 같은 사투리가 있나보다.

‘내가‘를 호남에선 ’나가‘라 하고 평안도에선 ’내래‘라 한다.

요즘 시청률 높은 드라마 ‘황금사과’에 보면 아이들이 아니꼽고 구역질나는걸 보고 ‘앵꼽다’, ‘깨악질 난다’한다. 너무 오랜만에 들어보는 고향사투리라 반가워서 인터넷에서까지 찾아보았다.

 

대학교에 입학해서 전국에서 모인 친구들과 어울리다가 ‘66회’란걸 만들었다. 친구 여섯에 부인들 끼워 66이 된 것이다. 서울, 경상도, 충청도, 전라도 다 모였다. 그 중 전라도 친구는 10년 전에 갔다. 지천명의 나이에 접어들면서 백혈병으로….투병기를 ‘겨울노래’라는 제목으로 썼다.

“오늘은 좀 어때? 밥은 많이 먹었느냐?”는 물음에 “혀가 아파 못 먹었어, 입이 죄를 많이 지어서…”한 친구야. 죄를 지었어도 내가 더 많이 지었을 텐데 왜 그리 마음 닦기를 모질게 하느냐.

눈 온 다음에는 삭풍이 불지만 삭풍 따라 봄은 온다네. 친구여 봄이 저만치서 다가오고 있다네.”

드라마 ‘불멸의 이순신’에 보면 좌수영 관할에서 부하가 장군께 보고할 때 “문어 대가리들이 쳐들어오고 있습니다요. 영감! 공격할까요?”한다.

 

사투리는 우습고 구수하다. 훈민정음도 예외가 아니다.

 

전라도 훈민정음

시방 나라 말쌈지가 떼놈들 말하고 솔찬히 거시기혀서

글씨로는 이녁들끼리 통헐 수가 없응께로 요로코롬 혀갖고는 느그 거시기들이

씨부리고 싶은 것이 있어도 그 뜻을 거시기헐 수 없응께 허벌나게 깝깝하지 않커쏘?

그러코롬 혀서 나가 새로 스물여덟 자를 거시기 했응께 수월허니 거시기 혀부러갖고 날마동 씀시롱 느그들은 편하게 살아부러라.

재미있다면서 경상도 훈민정음을 만들어보라는 주문을 받았다. 하지만 지역마다 사투리는 ‘고향의 맛’과 ‘고유한 향토색의 멋’이 물씬 배어 있어, 다른 지방 말로하면 맛도 없고 멋도 없을 것이어서 포기했다.

사투리는 고향으로 돌아가는 공간여행뿐 아니라, 어린 시절로 돌아가는 시간여행도 가능하게 해준다.

‘찔뚝 없다‘는 나서지 않아도 될 자리에 쓸 떼 없이 나서고, 나서서 불필요한 말을 지껄인다는 경상도 사투리다.

아기는 어머니의 배 속에서부터 말을 배운다. 과학자들은 임산부가 72데시빌(dB)로 말할 때 자궁 내에서는 77.2dB로 들리는 것으로 측정했다. 태아는 어머니 배 속에서 ‘영혼의 말’인 탯말을 배운다. 사투리의 뿌리인 탯말을… .

사투리는 공간과 시간을 초월하는 말이다.

경북 안동의 정겨운 사투리에 대해 생활 칼럼니스트인 김서령씨는 이렇게 쓰고 있다.

‘엄첩다’란 말이 있다. 어린 내가 큰으매(친할머니)에게 가위를 갖다 드릴 때 날을 내 쪽으로 하고 손잡이를 큰어매 쪽으로 돌려서 드리면 한방 모인 할매들은 입을 모아 엄첩다고 말했다. 굳이 ‘교양 있는 사람들이 두루 쓰는 현대 서울말’인 ‘표준말’로 따지자면 ‘기대 이상이다’ 쯤으로 해석될 말이었다. ‘어린 줄 알았는데 다 자랐구나.’라는 안도와 만족과 대견함이 흐뭇한 웃음에 버무려진 ‘엄첩다’는 어른이 아이에게 건넬 수 있는 최상의 칭찬이었다. 호들갑스럽지 않았고 인색하지도 않았다. 내가 언제나 너의 행동을 유심히 지켜보고 있노라 하는 위엄과 참 잘 했다는 격려가 동시에 담겨 있었다. ‘엄첩다’라는 말을 들으려고 나는 혼자 단추를 끼우고 혼자 머리를 빗고 혼자 방 정리를 했다.

그 ‘엄첩다’는 말이 사라져 버렸다. 고향에 가도 아무도 그 말을 쓰지 않는다. 아이에게 일정거리를 유지하는 위엄 있는 칭찬 말 대신 껴안고 입 맞추는 애정 공세만이 그득하다. 쓸쓸하다.

요즘 나는 시간 날 때마다 아슴아슴해진 옛말들을 찾으려고 안타깝게 허공을 휘젓는다. 우리 어머니가 일상으로 쓰던 알찌근하다, 간조증난다, 시어득하다, 얼분시럽다 같은 말들, 그 말들 안에는 어머니 일생을 지배했던 정서가 화석처럼 박혀 있다. 따스하고 풍성하고 정다워 눈물겹다. 오늘도 혀에 뱅뱅 도는 말들을 떠올리려 자꾸만 사전을 뒤져봤자 소용없다. 표준어 아닌 말이 사전에 실려 있을 리가 없다. 제대로 된 방언사전이 만들어지고 그게 결국 표준어로 편입될 날을 학수고대한다. 어매와 아지매와 할매가 쓰던 말의 정감을, 그 내음새와 빛깔과 감촉을 잃어서는 나는 내가 아니다. 아까운 사투리를 더는 잃어버릴 수 없다.

2006년 4월 (200x15매)

전라도 사투리인줄 알았던 ‘다요’ ‘까요’가 우리나라 전역에서 쓰던 말임을 알게 되었다.

드라마 ‘허준’에 보면 경상도 산음(현재 산청)에서도 썼고, ‘상도’에 보면 황해도에서도 썼다. ‘했습니다.’ ‘했습니까?’는 명료하지만 정감은 없다. ‘…다요.’ ‘…까요.’는 윗사람에게 정을 담아 더 존경한다는 뜻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목욕탕에 가서 그 ‘물 절약은 양심입니다요.’자리에 자주 간다. ‘명료’ 보다 ‘정’이 아쉬운 시대를 살아가기 때문이리라.

200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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