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방 풍경

검정우산

tlsdkssk 2010. 8. 11. 23:51

검정우산

며칠 전이다. 화랑에 들렀더니 검정우산을 그린 판화가 있었다. 나는 그 그림을 사려고 했다.

그러나 검정우산 그림은, 그 옆에 나란히 걸려있는 빨간 장미꽃 그림과 한 짝으로 판다고 화랑주인이 말했다. 따로따로는 팔지 않는다는 것이다.

나는 망설였다. 작가의 의도가 얼핏 이해가 됨직도 했지만, 그렇다고 두 점을 나란히 걸어두면, 검정우산이 내게 주는 오롯한 연상 작용이 그 장미꽃으로 인해 방해될 것 같았기 때문이다.

나는 화랑주인에게 검정우산만 사겠다고 졸랐다. 하지만 두 그림을 한 짝으로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팔지 않겠다는 화랑주인의 자존심 같은 게 어찌나 강하게 느껴져 오던지, 나는 두 점을 사서 각각 따로 걸어둘 엄두를 내지 못한 채 화랑을 나오고 말았다.

 

비치파라솔을 써야할 때 검정우산으로 때우는, 그와 비슷한 경우들이 우리 생활 가운데 더러 있다, 그런 때 우리는 약간 창피한 기분을 느낀다. 하지만 그것이 나름대로 어떤 의미를 우리에게 부여할 경우에는 괘념치 않는다.

내 마음 속에 남아 있는, 20년 전 어느 날 피서지에서의 검정우산이 바로 그런 경우에 해당된다. 그것을 회상해 보자면, 이야기는 그 날보다 2년 전인, 그러니까 지금부터 22년 전의 내 결혼식 날부터 시작한다.

장인어른은 신혼여행을 떠나는 사위와 딸을 앉히고 이렇게 말씀하셨다.

"좋은 꿈꾸고 와야 한다. 신행여행 중에 인생설계를 잘 해서 그것을 평생의 꿈으로 삼아야 해!"

아버지가 아니 계시는 나에게 장인의 말씀은 두 분 아버지의 몫으로 들렸고, 신혼여행 동안 우리 부부는 좋은 꿈들을 꾸며 보냈다.

신혼생활이 시작되었다. 그런데 3개월 예정의 시집살이를 다 채우지도 못한 어느 날엔가, 아내는 나쁜 열병에 감염되었다. 대장절제수술을 두 번 씩이나 받으며 사경을 헤매는 동안 나를 쳐다보는 아내의 눈은 숯덩이처럼 새까맣고, 눈빛은 이상하리만치 초롱초롱하였다. 한계체중까지 떨어진 아내의 몸, 그러나 눈에서만은 회생의 의지와 가능성이 보였다.

원래 속눈썹이 짙은 편이기는 하지만, 그 당시 아내의 눈을 보고 어떤 이는 섬뜩하다고 했고 , 어떤 이는 죽지 않겠다고 했다.

절망적인 시간들이 지나고, 회임이 어려울 테니 자녀는 기대하지 않는 게 좋겠다는 의사의 조건을 담보로 아내는 극적으로 회생하였다. 퇴원 후에 그녀는 자신을 지탱해준 힘이 신혼여행 중에 함께 설계한 꿈 때문이었다고 말했다. 오직 그것만 생각하며 누워 있었다고 했다. 그 꿈은 평범하다면 평범한, 하지만 스물 넷, 신혼의 여자로서 송두리째 포기할 수는 없는 꿈들이라고 했다. '신랑을 너무 사랑하므로 그에게 큰 슬픔을 줄 수는 없다, 오래오래 그에게 사랑을 받고 싶다, 내 집 마련은 언제쯤 하고, 자녀를 키우며, 언덕위에 2층 집을 지어서 살고 싶다…….' 그 후 또 한 번의 입원과 친정에서의 요양기간 등을 거쳐 우리는 신혼 생활을 2년 만에 새로 시작하였다. 결혼하여 그 해 여름과 다음해 여름을 넘기고 다시 여름이 왔다.

그 동안 회사의 여름휴가를 휴가답게 보낼 수 없었던 나는 건강을 회복한 아내를 동반한 멋진 여행을 생각하고 있었다.

행선지를 의논하던 중에 아내는 뜻밖에 서울 근교의 한강변에나 하루 다녀오자고 했다. 이유인 즉, 우리들의 신혼설계에 내 집 마련이 3년 이내인데, 그 계획을 이루자니 휴가보너스조차 쓸 수 없다는 것이었다.

언젠가는 빨간 융단이 깔린 언덕위의 2층집을 지으리라 꿈꾸던 아내는 그 출발점인 내 집 마련의 꿈부터 차질 없이 이룰 결심을 했던 게다.

나는 그 때 마침 근검절약을 최고의 미덕으로 가르친 '새마을 연수'를 다녀온 직후인데다, 다시 살아난 아내가 고마워서도, 내 생각을 바꾸어 그 제안에 순순히 따르기로 했던 것 같다.

어쨌거나, 버스를 두 번씩 바꿔 타며 간 곳이 덕소유원지였다. 도착하여 보니 멀리 내려다보이는 강변은 가뭄 끝에 물이 줄어 강폭이 좁아지고, 모래와 자갈밭이 드넓게 보였다. 배낭을 풀고 비닐 돗자리와 음식들을 꺼내는데 그 때 검정우산이 나왔다. 반으로 접은 여행용 우산이었다. 아내가 챙겨 넣은 것이었다.

한낮이 되면서 햇살이 뜨거워졌다.

아내는 찬 음료수를 사러 간다며 자리를 떴다.

나는 우산을 펴려고 하다가 난감한 생각이 들었다. 검정우산이 주변의 분위기에 어울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천막과 비치파라솔과 양산들만 울긋불긋 보이고, 검정우산은 없었다. 지금과 같은 개성시대에는 차라리 있을 법한 검정우산이 그 때는 보이지 않았다. 바캉스라는 말이 막 유행하던 시절이다.

아내는 돌아와서 내 옆에 앉더니 왜 우산을 펴지 않았느냐고 했다. 그러면서 천연덕스럽게 우산을 폈다. 그러는 그녀의 행동은 조금도 거리낌이 없었다. 화사한 비치파라솔을 펴들며 내 옆에 앉는 여인. 아내의 모습은 그런 것이었다.

이렇게 하여 우리는 한더위에 개가 할딱거리듯이 검정우산 밑에 앉아 결혼 후 처음 맞는 바캉스를 보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아내는 양산이란 걸 안 쓰는 여자였다. 원래 피부가 가무잡잡하여 양산은 쓰나마나라고 했다.

세월이 흘러 아내는 연년생으로 아이 둘을 낳았다. 수술을 맡았던 의사가 깜짝 놀랄 일을 해낸 것이다.

가족 넷이 제주도에 피서를 가던 언제였던가, 아내는 이런 말을 했다.

“택시도 많았는데……그 긴 버스 줄을 기다려…… 두 번 씩이나 갈아타고……”

아내의 말은 덕소에서 할딱거린 것 까지는 좋았는데, 돌아올 때도 버스를 갈아타면서 오느라 그 하루가 너무 고단했었다는 것이다.

“지갑은 당신이 갖고 있었소! 난 그저 당신 눈치만 보았는데.”

내 말에 아내는 웃었다. 그리고는 조용히 미소를 띤 채로 눈을 감고 있었다. 나는 그녀가 '그 날의 검정우산'을 생각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왜냐하면 한참 만에 눈을 뜬 아내는 이렇게 말했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니 , 신혼의 꿈이 꽤 많이 이루어진 것 같아요! "

 

나는 검정우산 그림을 구해다 걸어둘 작정이다. 그러나 처음 그 그림을 봤을 때의 생각을 바꾸어 ,장미꽃 그림까지도 함께 걸 생각을 한다. 짝이 아니면 결코 팔지 않겠다던 화랑주인의 말이 옳다는 결론에 접근했기 때문이다.

'빨간 색은 발산하는 정렬의 색'

'검은 색은 흡수하는 준비의 색'

 

그 둘을 나란히 걸어놓고 보면 꽤나 멋진 조화의 삶을 그려볼 수 있을 테니까.

그 날 강변에서의 한 나절을 다시 떠올려 본다. 비치파라솔과 검정우산, 화려한 발산의 꿈과 그 꿈의 실현을 위한 흡수의 과정……. 그렇다면 그때의 아내의 검정우산에는 이미 화려한 비치파라솔이 깊숙이 잉태되어 있었던 것이다.

 

이제 장미꽃은 꿈의 실체로서 다가와 서 있다. 나는 내일 화랑에 다시 들러야겠다.

(1994년 여름)

  요즘 써 보지만 16년 전에 쓴 글보다 나은 것 없고, 사랑방 풍경 다 뒤져도 검정우산 없어 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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