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방 풍경

[스크랩] 서울신문 어린이날 특집 동화 / 심후섭

tlsdkssk 2009. 5. 15. 0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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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날 특집 엄마와 읽는 동화]

 

이 세상 모든 것이 다 나를 키운다

- 흉년이면 도토리는…

 

심후섭

“아버지, 이곳의 나무를 좀 베어버려야겠습니다.”

아들이 전기톱을 든 채 씩씩거렸습니다.

“무엇 때문에?”

“이곳을 갈아엎어 밭을 더 넓혀야 하겠습니다.”

“아니, 밭은 지금도 묵는 것이 있는데…….”

“아닙니다. 밭은 넓을수록 좋지 않습니까?”

 

그러자 팔십이 넘은 아버지는 조용히 말했습니다.

“얘야, 너 지난번에 바닷가 낭떠러지 아래에 산처럼 쌓여 있는 양 떼들의 뼈를 보았지?”

“네.”

아들의 대답은 여전히 퉁명스럽습니다.

클릭하시면 원본 보기가 가능합니다.

“그 뼈들이 왜 거기에 그렇게 많이 모여 있다고 생각하니?”

 

“글쎄요. 누가 갖다 버렸겠지요.”

“아니다. 그 많은 뼈를 무슨 수로 다 갖다 버리겠니? 양들이 거기에서 한꺼번에 죽었기 때문이란다.”

“아니, 그럼 양떼들이 거기에서 자살을 했단 말입니까? 무엇 때문에…….”

“양들은 죽고 싶어서 죽은 게 아니야.”

“네에?”

 

“뒤에서 마구 달려오니 앞에서는 밟히지 않으려고 정신없이 달리게 되었지. 그러다가 낭떠러지에 이르러서는 멈추지 못해 결국 모두 다 떨어져서 죽은 것이지.”

“왜 달리게 되었는데요?”

 

“너처럼 전기톱을 들고 설친 때문이지.”

“아니, 양들에게 무슨 전기톱이 있다고 그러십니까?”

 

“양떼들은 늘 하는 것처럼 평화롭게 풀을 뜯고 있었어. 그런데 뒤에 있던 한 마리가 풀을 더 탐내어 맨 앞으로 나왔지. 그러자 모두들 조금씩 더 앞으로 나오게 되었어. 그러다 보니 양들은 서로 앞지르려고 달리기 시작했지.”

“왜 자꾸 앞질렀습니까?”

 

“조금이라도 풀을 더 많이 뜯어먹으려고 그랬지.”

“아니, 들판에 온통 널려 있는 것이 모두 풀인데 왜 서로 그랬습니까?”

“내 말이 바로 그 말이다. 바로 앞에 있는 풀만 해도 충분한데 조금이라도 더 많이 차지하려고 서로 앞지르다 보니 나중에는 그만 어떻게 할 수 없을 정도까지 무리가 늘어나게 되고 말았지. 조금씩 달리던 것이 점점 더 달리게 되었고……. 그러다가 점점 더 빨라지게 되자 마침내는 무엇 때문에 달리는지도 모르고 그저 밟혀 죽지 않기 위해 냅다 달릴 수밖에 없게 되었지.”

 

“그러다가 낭떠러지를 만났지만 멈출 수 없게 된 양들이 모조리 한 구덩이에 떨어져서 다 죽게 되었다는 말씀이군요.”

“그렇지. 네가 톱을 들고 설치는 모습이 바로 그 양떼들이 조금씩 앞 달려나간 것과 똑같은 모습으로 보이는구나.”

“네에.”

그제서야 아들은 톱을 내려놓고 머리를 긁적였습니다.

 

“자, 그 톱을 다시 들고 저 백과공(白果公) 밑으로 가 보자.”

“백과공이라고요?”

“그래. 저 은행나무는 열매가 하얗지 않으냐? 그래서 옛사람들은 저 나무를 가리켜 ‘흰 열매를 가진 노인’이라는 뜻으로 ‘백과공’이라고 불렀어. 나무를 사람처럼 대하는 것이지. 나무를 사람처럼 부른다는 것은 매우 중요해. 그건 바로 나무도 친구로 볼 수 있기 때문이지.”

“네에.”

“자세히 봐. 저 나무는 사람처럼 위엄을 갖추고 있지 않으냐? 다른 나무도 그렇지만 저 나무는 더욱 의젓하게 생겼고…….”

“네, 그렇군요.”

 

백과공은 노인이 늘 기대어 쉬는 은행나무였습니다.

이삼백 년도 더 되어 밑둥치만 해도 열 아름이 넘었습니다.

나무 밑에는 안락의자가 놓여 있었고, 찻잔을 놓아두는 탁자도 있었습니다. 탁자 위에는 노인이 가끔씩 건강 정도를 알아보기 위해 사용하는 전파탐지기도 놓여 있었습니다.

“자, 이 탐지기의 관을 저 나무둥치에 대어 보거라.”

“네.”

아들은 귀마개처럼 생긴 탐지기의 관을 굵은 가지에 갖다 걸었습니다.

 

“자, 이번에는 톱을 들고 그 나무에게 다가가 보거라.”

아버지는 전파탐지기의 스위치를 올리며 말했습니다.

아들은 톱을 윙윙 울리며 나무에게로 다가갔습니다.

“아니, 이럴 수가!”

전파탐지기의 바늘이 갑자기 날카로운 곡선을 마구 그려댔습니다.

아들은 깜짝 놀라 하마터면 톱을 떨어뜨릴 뻔하였습니다.

전파탐지기에는 지금까지 볼 수 없었던 날카로운 선이 마구 나타났기 때문이었습니다.

 

“봐라. 네가 톱을 들고 다가가니 나무가 이렇게 놀라지 않니? 우리 귀에는 들리지 않지만 나무의 이런 비명이 계속되면 우리 인간들에게도 좋을 것이 없어. 사람들도 이런 스트레스를 계속 받으면 빨리 죽게 되고 말 것이야. 자, 이걸 좀 보거라.”

노인은 톱을 밀어내고 백리향꽃 화분을 들고 나무에게로 다가갔습니다. 백리향은 향기가 백 리까지 퍼져나간다고 붙여진 이름이었습니다.

그러자 전파탐지기는 화면에 부드러운 물결선을 그렸습니다.

 

“자, 나무에게 아름다운 꽃을 들고 다가가니 이렇게 평화스러워하지 않느냐. 평화스러운 나무 밑에 앉아 있으면 사람도 저절로 평온해지게 되지.”

“네에.”

아들은 다시 한번 머리를 긁적였습니다.

“너, 나무도 음악을 좋아한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겠지.”

“네. 들어보았습니다.”

 

“그래, 나무에게 시끄러운 기계 소리와 음악 소리를 오래 들려주었더니 음악 소리를 들려준 쪽이 훨씬 더 건강하게 잘 자랐다고 하지 않더냐.”

“네에…….”

“말이 없어 보이는 듯한 나무이지만 이처럼 다 생각을 하고 있어. 그런데 우리는 지금 당장 배불리 먹으려고 나무를 마구 베어내고 있어. 그러면 이 세상이 어떻게 될 것 같니?”

아들은 대답 대신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뿐만 아니야. 우리는 나무에게서 많이 배워야 해. 나무를 자세히 살펴보면 많은 역사를 짐작할 수 있어. 동네 근처에 있는 참나무에는 어른 눈높이쯤에 상처가 많아.”

“누가 나무를 해롭게 하였군요.”

“그렇지. 흉년이 들면 도토리를 따기 위해 커다란 돌멩이로 나무 등걸을 마구 때린 때문이지. 나무에 상처가 많이 생긴 해에는 인심도 사나웠다고 볼 수 있지.”

“그러고 보니 그 부분이 많이 썩고 있었습니다.”

 

“그래. 그렇게 하지 않아도 되는데 사람들은 자꾸 욕심을 낸 때문이야. 도토리나무는 흉년이 들면 일부러 열매를 많이 맺어 우리들에게 나누어 주고 있어. 그리고 풍년이 들면 열매를 적게 맺어 힘을 아껴 두고…….”

“정말입니까?”

“그렇지. 비가 적게 오면 곡식은 목이 말라 흉년이 들지만 도토리나무는 열매를 더 많이 맺게 되지. 비가 적으면 바람으로 이루어지는 가루받이가 더 잘 이루어지는 때문이지. 반대로 비가 많이 오면 곡식은 풍년이 들지만 도토리는 적게 달리게 되지. 그리하여 결국은 힘을 아끼는 셈이 되지. 다 하늘이 만들어낸 오묘한 삶의 이치이지.”

“네에.”

 

“그런데도 사람들이 자꾸만 나무를 때려 억지로 따내는 바람에 나중에 꼭 필요할 때에는 그 열매를 제대로 얻을 수 없게 되고 말지.”

“아, 그러고 보니 지금도 지구의 곳곳에서 숲이 사라지는데 숲이 없어지는 만큼 사막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사막이 늘어나는 만큼 사람은 더욱 살아가기 힘들게 되고…….”

 

“그렇지. 사막에서 불어오는 흙바람 때문에 숨쉬기에 얼마니 힘드니? 따지고 보면 이 세상 모든 것이 다 우리를 살려주고 있는데 우리는 그것도 모르고 만물양아설(萬物養我說)을 거역하고 있어.”

“네에? 만물양아설이라고요?”

“그래, 나무와 풀은 물론이고 발에 이리저리 채이는 돌멩이까지. 그러니까 이 세상 모든 사물이 다 우리들을 길러주고 있다는 것이야. 우리가 제대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가 한데 어울려야 한다는 것이지.”

“네.”

아들은 연신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그 무렵 손자가 학교에서 돌아왔습니다.

손자의 손에는 나무 한 그루가 들려져 있었습니다.

가지에는 발그레한 꽃눈이 맺혀 있었습니다.

“웬 것이냐?”

할아버지가 나무를 받아들며 말했습니다.

“오다가 냇가에서 주웠습니다. 물에 떠내려 온 것 같습니다.”

꽃나무는 물에 씻겨 껍질이 더러 벗겨져 있었습니다.

“그렇구나. 그래, 어떻게 하려고?”

 

“이 나무는 우리 집에는 없는 나무 같아요. 우리 집 담 밑에 심겠어요.”

“그래, 그거 참 좋은 생각이로구나. 네 덕분에 우리 집이 더욱 아름다워지겠구나. 새로 철쭉꽃이 들어왔으니…….”

“네에, 새 철쭉꽃이라고요?”

손자가 궁금해하였습니다.

“그래, 철쭉이라는 이름은 발걸음을 멈추게 한다는 ‘척촉(??)’에서 왔대. 꽃이 너무 아름다워 지나가는 사람이 자꾸 멈칫거리게 되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 바로 ‘척촉’인데 이 말이 변해서 ‘철쭉’이 되었다고 하는구나. 앞으로 우리 집 앞을 지나가는 사람들은 모두 다 네가 심은 이 꽃나무를 들여다보고 ‘야, 아름다운 꽃이로구나.’ 하며 걸음을 멈칫거릴 테니 바로 이 꽃이 새 철쭉꽃이 아니고 무엇이냐? 허허허!”

할아버지가 큰 소리로 웃었습니다.

 

“하하하! 꽃이 피거든 멀리 있는 이웃들을 초대해야 하겠습니다. 이웃을 본 지도 오래된 것 같으니…….”

아들이 톱을 내려놓으며 말했습니다.

“네, 그게 좋겠어요. 하하하!”

손자도 웃으며 맞장구를 쳤습니다.

온 집안이 웃음꽃으로 가득 찼습니다.

 

 

●작가의 말

 

▲ 동화작가 심후섭씨
이제 전 세계는 전쟁 난민이 문제가 아니라 기후 난민이 더 큰 문제로 다가오고 있습니다. 세계 곳곳에서 고온과 물 부족으로 삶의 터전을 옮기는 사람들이 해마다 급격하게 늘어나고 있습니다.

 사막에서 공룡의 뼈가 발견되고 숲의 흔적이 발견되는 것은 그 옛날 이곳이 깊은 밀림 지대였음을 말해 줍니다. 그러나 지금은 황사를 일으키는 메마른 사막이 되고 말았습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땅도 점차 사막으로 변해가고 있습니다. 그럼 우리들은 어디로 가야 할까요? 우리 후손들은 어떻게 살아가게 될까요?

 

 

●약력

▲1953년 경북 청송 진보에서 출생 ▲경북대학교 교육대학원, 대구가톨릭대학교 대학원 졸업(교육학 박사) ▲´대구매일신문 신춘문예´ 동화 당선 및 ´소년´지 동화 추천 완료 ▲제1회 MBC창작 동화 대상, 대구문학상, 한국아동문학상 수상 ▲동화집 ´나무도 날개를 달 수 있다´, ´의로운 소 누렁이´ 등 50여 권 지음 ▲현재 대구학남초등학교장 및 대구교대 겸임교수

2009-05-04  26면

출처 : 서울신문 어린이날 특집 동화 / 심후섭
글쓴이 : 심후섭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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