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혜의 골방

[스크랩] 매력

tlsdkssk 2010. 4. 30. 17:12
  1996년

                                

 

                                    매 력


                                                                      


   <매력>이란 단어에는 묘한 끌림이 있다.

   두 글자를 소리 내어 뇌어본다.

  어감마저 찰싹찰싹 달라붙는 접착성의 느낌으로 다가오는 것 같다. 

  미인이나 잘 생긴 사람들을 보는 것도 즐거운 일이지만, 그보다는 독특한 분위기나 개성을 지닌 사람에게 먼저 관심이 간다. 잘 다듬어진 외모는 눈을 놀라게 할 뿐이지만 심신이 빚는 매력에는 심정이 사로잡힌다. 그래 선가 새로운 대상을 만날 때면 내 더듬이는 먼저 그의 특성을 살피느라 분주해진다.

 

  인간에게 풍기는 매력처럼 상식을 초월하고 만인에게 평등한 것도 흔치는 않으리라. 그것은 국적이나 성별, 미추(美醜)나 연령의 높낮이도 따지지 않는다. 학식의 유무나 빈부는 물론, 선악이나 윤리마저 별 상관이 없는 일이다. 매력이란 그야말로 왠지 모르게, 이유 없이 사람을 호리어 끄는 불가항력의 힘인 까닭이다.

 

  그것은 제 눈에 안경이라 종류도 천차만별하다. 천사적인 매력이 있는가 하면 악마적인 매력이 있고, 야성적인 매력이 있는가 하면 보호본능을 자극하는 선병질적 매력도 있다. 또한 번뜩이는 천재성의 매력이 있는가 하면 백치적인 매력이 있고, 빈틈없고 야물딱진 매력이 있는가 하면 하물며는 꺼벙하고 어리숙한 행태조차도 사람을 끄는 힘으로 작용할 수가 있다.

 

  꽃향기를 맡고 있는 남성을 보면 나는 간혹 맥없이 끌리곤 한다. 그 모습은  순후하고도 낭만적으로 보여 호감을 준다. 여성의 경우야 새삼스런 감동이 생길 리 없겠으나, 꽃과 남성이라는 조금은 일탈된 구도에서 풍기는 파격은 이상스럽도록 신선하고 아름답게 다가온다. 그가 만약 눈이라도 지그시 감고 화향(花香)에 취한다면, 나는 설레어 그 한 가지 만으로도 상대의 세 가지의 결점쯤을 선뜻 눈감아 주는 만용을 부릴지도 모르겠다.

 

  지금은 친숙해진 수필 동인 ‘ㅅ’ 선생만 해도 첫 만남에선 그리 호감을 느끼지 못했다. 그날따라 카랑카랑한 음성이며 꼬장꼬장해 보이는 인상이 잘못 걸렸다간 호되게 당할 것 같은 긴장감을 느끼게 했다. 내가 그분에 대한 마음의 벽을 튼 것은 순전히 하나의 광경 덕이라고 할 수 있을 게다.

 

  언젠가 우리 집에서 문우들의 모임이 있던 날이었다. 귀한 손을 위하여 마침 뜰에 흐드러진 유채꽃을 꺾어 놓았다. 한데 그는 거실로 들어선 순간 지체 없이 탁자로 다가가 꽃내음부터 맡는 게 아닌가. 노란 유채와 꽃에 얼굴을 묻은 중년 신사가 주는 대비는 무척이나 신선하고도 이색적이었다. 무심결에 행하는 동작이란 대체로 그 사람의 진솔한 면모라고 봐야한다. 내 입가에 잔잔한 파문이 번지며 기존의 느낌이 변하기 시작한 건 두말 할 필요가 없다.   

 

  어쩌면 이 모든 게 무모한 호기일 수 있으리라. 하지만 매혹의 과정에서 환상이란 필수적인 선제 조건이다. 남들의 눈엔 무의미하여도 당사자에겐 대단한 의미로 다가오는 일종의 가벼운 착란과 착시, 이 역동적 힘을 무엇으로 막을 것인가.

  매력이란 저마다 지닌 색이요 향이요 광채다. 그 빛과 향은 타자와 구별되는 파격과 희소성을 지닐 때 더욱 영롱히 빛난다.

 

  헌데 이 글을 쓰고 있는 나란 존재는 정작 얼 만큼의 매력지수를 지닌 것일까. 만약 지금껏 아무도 내게 자력을 느끼지 못했다고 한다면 이보다 더 큰 낭패는 없으리라. 진정한 매력이란 아무래도 생득적인 것이기에 화장하듯 덧바를 수도 없는 까닭이다.

































  


출처 : 장미와 미꾸라지
글쓴이 : 애나 원글보기
메모 :

'민혜의 골방'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나를 만나던 날  (0) 2010.12.24
[스크랩] 간신히 아무도 그립지 않을 무렵  (0) 2010.04.30
[스크랩] 목숨  (0) 2010.04.30
[스크랩] 삶의 끄트머리  (0) 2010.04.30
[스크랩] 꽃의 파랑  (0) 2010.04.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