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혜의 골방

나를 만나던 날

tlsdkssk 2010. 12. 24. 09:05
 

2010, 12

                                              나를 만나던 날

                                                                 


 

  달랑, 한 장 남은 달력을 보다가 지인 몇 사람에게 전화를 걸었다. 분명 뭐라 말을 한 것 같은데, 전화를 끊고 나니 정작 아무 말도 하지 못한 기분이 들었다. 상대방은 구지레한 사연이 머리끝까지 차올라있었던지 내 인사말에 “잘 지내셨죠?” 혹은 “별 일 없으시죠?”라는 한 마디를 던지곤 속 끓인 남편 얘기며 자식들 얘기로 여념이 없었다. 모두들 한 해 동안의 삶의 무게에 짓눌려 지낸 모양이었다. 나는 아, 네, 하는 가벼운 추임새를 넣으며 이야기를 듣다가 적당히 말을 정리하며 전화를 끊을 수밖에 없었다.  

  아무와 아무 얘기도 할 수 없었던 날, 사는 게 참으로 허허롭고 씁쓸하던 날, 차라리 아무 전화를 안 한 것이 더 나았을 날, 육신마저 시름시름 아프던 날이었다.

 

  전화를 하기 전, 실은 사는 게 맛이 없다며 혼자 훌쩍거릴 참이었다. 이런 내 모습이 처량 맞고 한심도 하여 기분 전환 겸 전화를 했던 거였다. 언젠가부터 시도 때도 없이 눈물이 흐르곤 한다. 젊을 적엔 의지로 자제하곤 하였는데, 이젠 고장 난 수도꼭지가 돼버렸다. 거리에서도 곧잘 눈물을 질금거린다. 이 모든 게 갱년기 우울 증상일 수도 있겠다. 허나 냉정해 보이는 나는 본디부터 눈물이 많았다. 잘 여문 봉숭아 씨방처럼 미세한 감동이나 자극에도 내 누선은 맥없이 터지곤 했다. 한데 그들은 어쩌자고 내가 잘 지냈을 거라고 일방적으로 몰아 부친단 말인가. 남편과 사별한지 고작 반년도 안 된 내게 말이다.

  그들이 내 심중을 짚어주지 않은 건 어쩌면 내 아픈 기억을 상기시키고 싶지 않아 그랬을 거라고 나는 한껏 이해의 촉각을 돋우었다. 또한 평소의 내가 워낙 ‘쿨’하게 처신 한 것이 문제일 거라고…. 하지만 이해는 머리가 억지로 꿰맞춘 것일 뿐 가슴은 바람 부는 빈들에 홀로 선 듯 황량했다.

 

  매양 먹는 세끼의 밥이 어느 날은 입에 달고 어느 날은 껄끄럽듯 허구한 날 고만고만하게 돌아가는 일상도 어느 날은 달치근하고 어느 날은 왜 그리 시고 떫은가 모르겠다. 황혼녘에 접어드니 몸뿐 아니라 마음의 추위도 민감해지는 것 같다. 나는 예외일 줄 알았는데 작은 일로도 서운해지고 자잘해지는 자신을 보게 된다. 한창 때엔 젊음의 힘으로 모든 걸 끌어안고 삭이며 감내했지만 이젠 마음의 탄력이 퇴조한 때문이리라. 

  친한 벗 H가 떠오르기도 했지만 그 친구는 환자를 보느라 여념이 없을 터. 아니, 설령 시간이 있다 해도 나는 지금 아무와도 노닥거릴 기분이 아니다. 이해인 수녀의 시가 떠올랐다.

                  

                   어느 날

                   혼자 가만히 있다가

                   갑자기 허무해지고

                   아무 말도 할 수 없고

                   가슴이 터질 것만 같고

                   눈물이 쏟아지는데

                   누군가를 만나고 싶은데

                   만날 사람이 없다

                      

                                      

            (이해인의 시 ‘어느 날의 커피’ 중에서)

  

  이해인 시인의 외로움과 나의 외로움을 포개놓으면 한 치 오차도 없이 그대로 맞아 떨어질 것만 같다. 각기 섬처럼 떠도는 인생들에게 무슨 말을 할 것인가. 나는 타인에게 하듯 내게 말을 건네었다.

  “오늘은 그냥 혼자 가만히 있어.”

  내가 내게 대답한다.

  “그게 좋겠어. 근데 펑펑 울고만 싶어.”

  “그럼, 울어. 소리 내어 울어도 좋아. 아무도 없잖아?”

  나는 소리 내어 울기 시작했다. 나이, 체면 다 내팽겨 치고 잉잉 엉엉 아이가 되어 울었다. 울음에 충실해지기 위해 울어야 할 이유들을 끄집어내었다. 그 동안 얼마나 많이 자신을 안으로 구겨 넣고 살았는가. 어른으로만 산다는 건 얼마나 고달픈 일이람. 자식에게 서운하여 한 마디 뱉고 싶다가도 감정에 겨워 표정 관리가 안 될 것 같으면 아예 덤덤한 척 입을 다물곤 했지. 들을 준비가 안 된 대상에게 지청구를 쏟는 건 피차에게 득 될 게 없고 공허한 일이니까. 그래, 그건 잘 한 일 같다.

  눈물이 또 다른 눈물을 불러낸다. 병 앓다 떠나버린 남편에 대한 한없는 연민이, 한 무례한 인간에 대한 참았던 분노가, 재능 없는 자신에 대한 실망과 절망감 등이 눈물을 타고 난무한다. 새삼스런 일도 아니건만 처음 겪는 일인 양, 그동안의 절제에 보상이라도 받을 양 나는 좀 유치하고 과장스럽게 운다. 몸이 온통 눈물로만 채워져 있는 것 같다. 한 동안 나를 그대로 내버려둔다.

 

  얼마나 지났을까, 다소 진정 국면으로 접어들며 울음소리가 잦아들기 시작했다. 코를 팽 풀고 매무새를 다듬으며 마지막 정리를 했다. 켜를 이룬 삶의 상처나 아픔이 하루 눈물로 해결될 리는 만무할 테니 이쯤에서 끝내야 할 것 같았다.

  오늘 같은 날, 가장 필요한 건 바로 나 자신이었을지 모른다. 진즉에 나를 부를 일이었다. 괜하게 이 사람 저 사람 불러대고 혼자 바람맞았다. 이한치한, 이열치열이라고 외로움이나 고독 또한 더한 자기 고독 속으로 침잠될 때 치유되는 법. 타인의 위무란 극히 제한되고 찰나적인 것. 나 같은 족속에겐 특히 그렇다. 신(神) 아닌 그 누구의 앞에서 이렇듯 자유롭고 정직할 수 있단 말인가. 자신에 대한 직시나 객관화가 간단한 일은 아닐지언정, 자신을 자신만큼 헤아려 줄 수 있는 존재는 아무도 없을 터이다. 나는 모처럼 만에 나를 만난 듯한 느낌이었다. 나에게 돌아와 준 내가 고마웠다.

  마무리로 식탁 위 갓스탠드의 불을 환히 밝히고 나를 위해 찻물을 끓이기 시작했다. 실컷 울고 난 뒤에 만나는 또 하나의 나는 울고 있던 그녀보다 사뭇 풋풋해 보였다.(16.2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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