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혜의 골방

[스크랩] 삶의 끄트머리

tlsdkssk 2010. 4. 30. 17:11
 

                    

           삶의 끄트머리


                                                                                                          민 혜

                                                                                                  


  요즘 친정어머니를 보면 삶과 죽음이 한 눈에 보인다. 살아 있는 듯 죽은 목숨 같고, 죽어 있는 듯 산목숨 같다. 어떤 날은 삶이 더 많이 보이고, 또 어떤 날은 죽음이 더 많이 보인다. 그 둘이 동일선상에서 동거를 하며 밀고 당기고를 하는 것 같다.

 

  어머니 연세 올해로 여든셋이다. 평균수명이 늘어났다곤 하나 얼추 삶의 끄트머리에 와 계시다. 4년 전 자궁암 선고를 받고 용케도 이겨내셨지만 암의 퇴출과 더불어 또 다른 질환들이 몰려왔다. 방사선 치료의 후유증인지 어차피 진행될 수밖에 없는 노환인지 모르겠으나, 치아도 빠져나가고 전에 없던 요실금 증세도 생기고 골다공증으로 척추가 세 군데나 부서지는 둥 마치 수명 다 한 흙집 무너지듯 무너지고 있는 중이다. 예전 같았으면 자리보존이나 하고 계셨을 터. 하지만 이제 의술이 좋아져 어머닌 시멘트 시술로 골절된 뼈를 접합시키고 최신 개발된 뼈 생성 주사를 맞고 사신다.    

 

입버릇처럼 이젠 더 살고 싶은 마음이 없다고 자못 담담해하는 어머니다. 그러면서도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못내 드러내고 만다.

  “어제 밤엔 내가 죽는 줄만 알았다. 내가 죽었다가 살아왔나봐. 갑자기 곧 죽을 것처럼 두렵고 불안해지고 숨이 턱에 닿는 거여. 그래 내가 막 소릴 지르며 예수, 마리아를 부르며 도와달라고 했단다.” 

  무슨 도움을 청했을까. 살려달라고? 아니면 영혼의 구원을 청하는 단발마의 외침? 당시의 상황이 되살아난 듯 어머니 표정엔 공포가 그득하고 눈물마저 그렁거린다. 나는 속으로 공황장애일거라고 생각한다.

 

  홀로 된 환자 언니와 단둘이 살고 있는 어머니는 늘 걱정이 많다. 특히 척추 골절로 운신이 제한되자 삶에 대한 좌절과 두려움이 더 많아졌다. 정신과 의사인 친구에게 상황을 전하니 약을 내어준다. 곧 죽을 것처럼 힘들고 괴롭더라도 그 증상 때문에 죽는 일은 없으니 다시 그런 일이 생기면 약을 드시면 진정된다고. 나는 어머니께 약을 전하며 조금은 호들갑을 떤다.

  “엄마, 그게 공황장애라는 건데요, 곧 죽을 것처럼 힘들어도 그 걸로는 절대, 절대 죽지는 않는다니 걱정하지 마세요.”

 

  어머닌 계면쩍으신 듯 내가 언제 죽는 걸 무서워했느냐며 거듭 삶에 대한 미련이 없음을 강조한다. 멀리 있는 죽음엔 초연할 수 있어도 가까이 있는 죽음은 물리치려 하는 게 인간일 테지.

  죽음을 초탈한 듯한 이런 날은 어머니에게 삶이 더 많이 보이는 날이다. 몸의 컨디션이 좀 나아지면 어머니는 금세 다시 활기에 차서 삶에의 의지를 다지고 용기를 되찾는 듯 보인다. 햇볕 쨍쨍한 창밖을 내다보다가, 옷으로 가득한 옷장 문을 열어보며 입을 옷이 하나도 없다고도 하신다. 내 엄마라서 그런지 그 욕망이 추하지만은 않다. 욕망이야말로 삶을 지탱시키는 에너지가 아니겠는가. 그럴 때면 나도 마음이 바뀌어 어머니가 보다 오래 사셨으면 싶다. 고통이 극심한 날이면 그만 고통을 접고 영면하시기를 그리도 바랐던 나였건만.

 

  얼마 전 J 선생님의 이메일을 받았다. 간암으로 투병중인 여든아홉의 선생은 최근 자제에 대한 서운한 심경을 피력해 오셨다.

  ‘아들은 내가 힘들어해서 그런지 나이도 있으니 암의 뿌리가 남아 있다 해도 건강관리만 잘 하면 천수를 누린다고 합니다. 그 말이 속으로 섭섭했어요. 끝까지 투병해보자는 말보다 못합니다.’

그 자제가 얼마나 효자인지는 나도 잘 안다. 말씀은 못 드렸지만 실은 나 역시도 그 자제와 같은 심정이었다. 친정어머니만 보더라도 암을 죽이기 위해 인체는 또 얼마나 시달리고 상하고 망가졌는가. 생로병사라 하였으니 이 병을 물리쳐도 또 다른 병이 찾아든다. 결국 사람은 병으로 죽는다.

 

  J 선생이 아시면 펄쩍 뛰실지 모르나 메일을 받던 날 나는 이상하게 마음 한구석이 슬프고 서운하고 허전했다. ‘내일 죽는다 해도 이제 별로 놀라지 않지만, 집안으로 새어든 휘엉청 밝은 달빛엔 그만 깜짝 놀라곤 한다.’는 말씀으로 내 감동을 자아내었던 선생의 말을 선연히 기억하고 있기 때문일까. 하긴 그때만 해도 선생은 삶의 끄트머리에 서계시지 않았다. 노령이라곤 하나 차라리 청년에 가깝다고 할 지경이었으니…. 

 

  금년에 타계한 소설가 박경리 선생은 폐종양에도 불구하고 즐기던 담배를 끊지 않았다고 한다. 노령을 이유로 수술도 받지 않았다. 그이는 병마와 싸우기보다는 친구로 지낸 건지 모른다. 죽음에 초연했던 박경리 선생이 진정 부럽다.

 

  요즘 노인들은 ‘구구팔팔이삼사!’ 하며 건배를 한다지만, ‘구구팔팔’ 인생을 다 살고 나면 백이십수를 다시 소망하게 되지 않을까. 나는 혼자 ‘칠칠팔팔이삼사!’라고 외친다. 참으로 그 나이까지만 살고 싶다. 아직 내가 팔팔(?)한 때문이리라.   < 13매 >

  


 

출처 : 장미와 미꾸라지
글쓴이 : 애나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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