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 한자락

[스크랩] 무셔운 신부님

tlsdkssk 2006. 5. 27. 06:38
일전 예산 신부님께 갔을 때,
신부님은 우리들(3명)에게 덕담처럼 한마디씩 들려주셨다.
작년에 대수술을 두번이나 한 내 대녀이자 조카인 김정숙(콩새가 아님다)에겐
'아프지 말라'
하시더니, 내겐
'안나는 마음대로 살아.'
하셨다.
도둑인 나는 제발이 저려 그 말씀이 예사롭게 들리질 않았다.
신부님은 독심술이 있어, 이미 내 맘을 꿰뚫어보신 게 아닐까.
그래서 내가 이제껏 맘대로 살아온 걸 다 아시곤,
나를 편안하게 해주시기 위해 그런 말씀을 한게 아닐까, 하며
말씀의 저의를 헤아리기에 바빴다.

루도비꼬 신부님은 30대 시절, 나의 오랜 종교적 냉담을
단 한마디로 깨뜨려주신 분이다.
그분에게 했던 고해성사의 힘이었다.
그 때까지 나를 무겁게 억누르던 죄의식을
해방시켜준 분이 바로 루도비꼬 신부님이다.
이번에 내려가 신부님께 고해성사 볼 게 있다고 말씀드렸다.
하지만 쫓기듯 기계적으로 하는 고해는 싫으니 메일로 하겠다고 했다.

요 며칠 신부님과 멜을 주고받으며 45세 이후 무려 13년이나
고해성사(물론 영성체도)를 하지 않았음을 고백했다.
일단 거기까지 말씀 드리고 나머지는 이사 후 상세히 고백하겠다고 했다.
어제 신부님은 한편의 시를 보내오셨다.
나는 조금(아니 많이) 놀랐다.
난 암말도 안했는데, 이미 내가 할 고백의 내용을 어느 정도 꿰고 있는 것 같은
처방을 시를 통해 내리셨기 때문이었다.

옛날에 울 남푠이 차 몰다가 대형 사고를 내어 구치소에 수감된 적이 있었다.
남편은 억울함 땜에 어쩔줄을 몰라하며 나를 힘들게 했다.
그때 신부님이 나와 함께 남편의 면회를 가주셨다.
신부님을 본 남편은
"신부님, 아무 기도도 할 수 없어요."
하며 고개를 숙였다. 그때 신부님 왈
"기도 하지마. 못하면 하느님이 대신 해주실 거야.'
만약 그 때 신부님이,
"그러면 쓰나? 그럴 수록 하느님께 기도 해야지,"
라고 말했다면, 반골 남편은 신부님께 꽥 소리나 질렀을지 모른다.
인간의 눈높이로 내려오신 예수님처럼 그분도 늘 신자들의 눈높이를
맞추시며 접근하셨다.

나는 어제 신부님이 보내오신 시를 4번이나 읽고나서 답장을 썼다.
시가 별로 닿질 않는다고.
그 말은 50%의 진실과 50%의 허위가 담긴 말이었는데,
ㅎㅎㅎ 이것도 신부님은 아실려나?

이따금 나는 이런 생각을 해보곤 한다.
장애인들은 정상인이 갖지 않는 다른 감각이 발달하는 것처럼,
일선에서 물러나 장애인으로 살아가는 그 신부님의 영성은
전보다 더 깊어지고 넓어지셨을지 모르겠다고.
뒤뚱뒤뚱 걷는 걸음,어눌한 말, 감각을 잃은 문자(숫자) 개념속에
살아가시지만, 잃은 것 만큼 달리 채워진 무엇이 분명 있을 거라고....
출처 : 무셔운 신부님
글쓴이 : 애나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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