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짐 정리를 하다가 초등학교 때 쓴 아들의 일기를 읽어보았다.
1983~1986년 까지의 일기였다.
낡고 빛바랜 종이장이 말해주듯, 20년도 더 된 일기장 속에는
기록되지 않았다면 기억조차 못했을 일들이 말린 꽃처럼 눌려 있었다.
기억컨데, 나는 아들의 일기장 중에서
그나마 글씨가 반듯한 것을 추려 보관해온 것 같다.
아들이 배우던 교과서, 글씨의 변천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노트 등도 보관하고 있었건만,
그것들은 몇 번의 이사를 거치면서 추려지고 8권의 일기만 남았다.
중학교 이후의 일기는 어미 눈에 안 띄도록 본인이 알아서 처리했으니,
내 수중에 남은 것은 이것들이 전부다.
짐 정리로 피곤한 몸도 쉴겸하여 노트를 펼치니, 어미인 내 일기를 훔쳐 본 사연도 적혀 있다.
뜨거운 콩나룰국을 먹으며 "아, 시원해" 하다가 자기도 어른이 되었나보다 하고 생각하는
구절도 엿볼 수 있었다.
내가 아들에게 빨래를 시킨일, 모자가 함께 과자를 만든 일, 매를 때린 일....
30대 적 내 모습도 아들의 일기에 고스란히 숨어 있었다.
언젠가 나는 20년쯤 전에 썼던 내 일기장을 읽으며 눈물지은 적이 있었다.
그것은 새삼 과거를 추억해서가 아니라, 문자(기록)의 위대함에 대한 전율의 눈물이었다.
그랬다, 이미 산화되어 흔적 조차 없는 지난 날들이
문자들로 인해 숨을 쉬며 내게 다가올 때의 그 감동을 나는 도무지 주체할 수 없었다.
요즘도 나는 간혹 컴~에다 일기를 쓰지만, 육필로 쓰는 것에 비할 바가 아니다.
그것은 노트에 쓴 것처럼 세월과 함께 바래지지도 않으며, 삭아지지도 않는다.
지난 세월의 여운도 없고, 늘 현재 처럼 다가온다.
아들의 일기는 더 보관했다가 전해주리라.
배냇옷과, 말린 탯줄과, 처음 신은 아가 신발과 함께 곱게 포장하여.....
<뜨거운 콩나물 국 먹으며 쓴 사연>
<휴지 팔러 오는 할머니를 대접해 보낸 일>
<엄마 일기장을 훔쳐 본 사연>
<손바닥 맞은 얘기와 보온 도시락 사고 좋아한 사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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