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팽이를 키운지 일주일이 넘었다.
김치거리로 사온 야채에 붙어 있다가 우리 식구가 된 넘인데,
다행이 화장실 타일에 붙어 있어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나는 첨에 요 녀석을 어항에 넣어주었다.
넘은 한 이틀 어항 유리에 붙어 얌전히 지내더니,
어느날 아침 감쪽같이 사라져 버렸다.
주위를 살피자 거실 중앙쯤에 몸을 길게 빼고 죽은듯 있지 않은가.
.
수분이라곤 없는 거실 바닥을 그 느린 몸으로 기어 밤새껏 움직였을 테니
얼마나 탈진했을까.
일단 어항에 넣어주었다.
넘은 불어터진 우동 가락처럼 몸을 길게 뺀채 시체처럼 둥실 떠 있다.
'죽었나보다!'
그런데 얼마쯤 지나 다시 보니 넘은 어항 유리에 붙어 있다.
'기특한 넘, 여리디 여린 넘이 생명력 하나는 강하네. 좋았어. 네 살 집을 따로 장만해주마.'
난 그 즉시 유리컵에 약간의 물을 담고, 작은 돌 하나를 넣고,
냉장고에 있던 양배추 일을 조금 뜯어 넣고는 달팽이를 옮겨주었다.
녀석은 허기 졌다는 듯 이내 양배추에 붙어 식사를 하기 시작했다.
나는 녀석이 도망가지 못하게 컵 위를 랩으로 막고 구멍을 뚫어주었다.
그러자 녀석은 언제 가사상태에 빠졌던가 싶게 움직임이 활발해졌다.
다음날, 나는 상추와 돌나물을 다시 넣어주었다.
녀석은 싱싱한 야채 내음을 맡은 듯 더듬이를 길게 뺀다.
돌나물은 조금 입만 대보고 구미에 안맞는지 상추만 열심히 먹는다.
컵 둘레엔 녀석이 싸놓은 응아가 몇군데 묻어 있다.
어제 다시 열무를 사왔다.
열무빛이 넘 파래 한 단만 샀다.
빛깔을 보니 비료를 친지 얼마 안된 것 같다.
이런 열무는 맛도 쓴데다 몸에도 유해할 것 같았지만,
혹시나 달팽이가 있지 않을까 해서 사왔다.
내가 키우는 달팽이는 지난번 열무단에 묻혀온 넘이었다.
난 넘이 쓸쓸해 보여 열무단에 달팽이가 없는지 살폈지만,
끝내 찾아내지 못했다.
열무 잎새를 깨끗이 씻어 우선 달팽이님께 진상하였다.
'마마, 오늘은 메뉴가 바뀌었사옵니다. 어서 드시옵소서.'
근데 어찌된 노릇인지 넘은 도통 먹질 않는다.
먹질 않는 정도가 아니라, 도망치려는 기색이 역력하다.
녀석은 그 동안 좁은 컵 안에서도 별 불편없이 사는 듯 보였다.
야채 잎에 붙어 있거나, 바위(?)섬에 붙어 지내며
그 특유의 느리게 사는 즐거움에 젖어 있는 듯 했다.
한데 이번엔 천정인 랩 위로까지 올라와 붙어 있다.
랩만 없었다면 밖으로 나와 버렸을 기세다.
'싫어, 싫어, 나가고 싶단 말야.'
달팽이는 마치 이렇게 외치고 있는 것만 같았다.
이유가 뭔가? 전에 없는 행동을 보이는 이유가 대체 뭔가?
난 이내 그 까닭을 찾아냈다.
모르긴 해도 저 새파라디 새파란 열무 잎새 탓일 게라고.
달팽이의 예민한 감각이 비료 냄새를 감지한 거라고.
내 추측은 어긋나지 않았는지, 열무를 치우고 상치를 넣어주자
다시 활발히 상추를 먹는다.
수필가 손광성님은 달팽이를 일컬어,
'동물이라기 보다는 식물에 가깝다고 묘사했다.
달팽이처럼 여리고 순수하고 조용한 벗이 또 있을까?
난 요즘 달팽이로 인하여 매우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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