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 한자락

새야, 새야

tlsdkssk 2005. 12. 25. 07:03

어제 모처럼 TV를 시청하다가,

신경숙 원작의 <새야, 새야>를 보았다.

원작과 드라마의 차이가 얼마나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한없이 슬프고도 아름다운

성인 동화를 보는 듯 했다.

화면 처리도 그지없이 아름다웠으나

다만 캐스팅에 있어서는 다소 문제가 있는 듯 했다.

내가 좋아하는 정찬이 큰놈이로 나오는데,

도시적인 그의 이미지는 아무래도 무리가 있어 보였다.

 

큰놈이와 작은 놈이는 벙어리 엄마에게 태어난

벙어리 형제이다. 작은 놈이는 들을 수가 있지만,

그 역시 가족들과 은둔하며 살아온 탓인가 말을 하지 못한다.

그들의 어머니는 어느 날 통증을 일으키며 죽어가면서도,

바로 집 마당에서 구슬 놀이를 하고 있는 아이들에게

한 마디 도움도 청하지 못한 채 죽어간다.   

어린 시절, 생활고를 비관한  아버지는 가족들을 데리고

철길에 누워 동반 자살을 꿰했지만,

한 순간 마음을 바꾼 어머니에 의해,

아버지 혼자만 희생된 비운의 상처를 지니고

살아가는 형제들이었다.

.

 

장성한 큰놈이와 작은 놈이.

어느 날 그 마을에 어여쁜 처녀가 찾아든다.

처녀는 큰놈이에게 연정을 느끼고 결혼하지만,

제한적 대화밖에 할 수 없는 현실에 한계를 느끼며

서커스 단원과 정분이 나 달아난다.

작은 넘이에게도 편지로 정을 나누던

펜팔 여인이 찾아오나, 그가 벙어리임을 확인하는 순간

두말 없이 그를 떠나고 만다.

집나간 아내를 못잊던 큰놈이는 아버지가 그랬듯,

철길에 누워 죽음을 택한다.

 

그 무렵 마을엔 한 미친 여자가 나타난다.

그녀는 만삭의 몸이나, 아이들은 그녀를 볼 때마다

돌팔매질을 한다. 그녀를 보호하고 숨겨주는 존재는

오직 작은 놈이 한 사람.

작은 놈이를 보살펴 오던 이웃 아저씨는

그녀를 쫒아내라고 성화를 하다가

그예 그녀를 멀리 버리고 오나, 그녀는 다시 찾아와

작은놈이가 살고 있는 집 마당에 있는

마른 우물속에 몸올 숨긴다.

돌팔매질을 하는 아이들,

작은 놈이에게 숨겨달라고 애원하는 미친 여인.

작은 놈이는 그녀를 이끌고 눈보라 속을 헤며

어머니의 무덤을 찾아간다.

동토가 된 무덤을 파히치며 작은 놈이는 엄마에게 애원한다.

두 사람을 숨겨 달라고. 숨겨 달라고.

어머니의 무덤을 파헤치는 순간

알 수 없는 환한 빛이 그들을 감싸준다.

마치 안델센의 동화 <성냥팔이 소녀>의

죽음을 보는 듯 하다.

결국 두 사람은 동사하고,  

벚꽃이 난분분하게 훝날리는 꽃무리 속에서

어머니와 형을 만나 웃음 짓는 장면으로 끝난다.  

                   

                         *

 

혹자는 그녀의 소설을 두고 문제의식이 없다고

비판할 지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문학의 본령이란 그런 게 아닌가 싶다.

현실을 고발하고, 추적하고 하는 건 다른 분야가

맡아 할 수도 있지 않은가.

MBC의 PD 수첩. 좀 예리하고 좋은가.

활자가 할 수 없는 시청각으로 메스를 가하며

현실을 추적하고 고발하지 않는가.

문학이란 무엇보다 인간의 정서를 자극해야 한다고 본다.

인간 본연의 아름다움과 슬픔을 파헤쳐주고,

인간의 정신에 환상과 상상의  나래를 펼치게 해줌으로서

메마르고 굳어가는 인간의 마음과 뇌를 말랑거리게 해주고

촉촉한 물기를 제공해야 한다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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