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 한자락

닳아지는 슬픔의 슬픔

tlsdkssk 2005. 12. 24. 15:42

허물어져가는 초가집 한 채.

언제 무너져내릴지 모르는 낡디  낡은 집.

요즘 엄마를 보면 그런 생각이 든다.

자궁암 진단을 받았던 작년까지만 해도

난 엄마가 이대로라도 오래 사시기를 희망했었는데,

엄마도 힘든 방사선 치료를 감내하시며

투병의지를 보였는데,

요즘은 아니다.

엄마는 대놓고 그만 살았으면 좋겠다는 말씀을 자주 하신다.

병원에 가서 아픔을 호소해도, 의사들은 냉담하단다.

다리도, 허리도  견디기 힘들게 아프고, 숨도 차고,

냉도 많아지고, 소변도 자주 나오고, 눈에도 약을 넣어야 하고...

엄마의 온 몸이 병의 전시장인 양 그 영토를 넓혀간다.

미각도 감각을 잃어 엄마는 아주 짠 음식만 맛을 알겠단다.

 

 

엄마는 딸인 내게 아무에게도 털어놓지 못하는

고통을 하소연 하지만,

나는 그저 멀뚱히 듣고만 있을 뿐

그 고통을 나눌 수가 없다.

뿐만 아니라, 나도 점점 엄마의 하소연에

무감각해지고 있음을 느낀다.

엄마에 대한 염려와 슬픔이 닳아진 것일까?

아니, 그건 아닐테지만

마멸되어지는 엄마를 바라보는 내 감정에도

굳은 살이 박혀가고 있는 것만은 사실인 듯 하다. 

나도 언젠가는 자식과 타인 앞에서

엄마의 모습을 재연하게 될 테지.

 

타인의 도움 없이는 침상에서 단 한발자국도

떼지 못한 채, 10여 년 넘는 세월을 살아 오신 

이모님을 떠올릴 적마다

엄마는 이모처럼 살지는 말아야 한다는

말씀을 되풀이 하곤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을 정리하지 못하며 사시는 이모는

엄마에게 있어 늘 연민과 공포를 일으키는 대상이었다.

그래설까, 내가 엄마 집에 가면 엄마는

아픈 허리를 질질 끌며 밥상을 차려주신다.

설겆이도 당신이 하신다.

성탄 전야인 오늘은

닳아진 슬픔에 대한 슬픔이 밀려오는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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