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 낳던 고통을 잊을만하면 또 애를 낳게 되지.'
젊은 시절, 주위 할머니들에게 종종 들었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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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일에도 몇 차례씩 산에 오르는 등산 매니아와 달리,
나는 고작 한달에 한 두번 대장님 뒤를 따라 산에 오르는 정도다.
어제 바다님은 내 실력이 날로 좋아지는 것 같다고 하셨지만,
삿갓님도 초보가 그 정도면 상당한 체력이라고 비행기를 태우셨지만,
내가 느끼기엔 약간의 지구력이 생겼다는 것 외엔 힘든 건 여전하다.
평소에 별 운동도 안하고 지내다가 가믐에 콩나듯 참석하는
산행이 무어 그리 장족의 발전을 안겨주랴.
어제 산행은 여러 의미에서 힘들었다.
바위에 오르다 허리를 삐고 나니 몸이 목석같은 게
몇곱이나 고통스러웠다.
게다가 날까지 추워 땀이 많은 내 몸은 쉴 때 마다 동태가 되었다.
그런데 이상한다.
힘들다고 신음을 내다가도,
간헐적으로 찾아드는 짜릿한 쾌감이
산행의 맛을 돋구어 주는 게 아닌가.
그 때는 언제 힘들었나 싶게 다리는 가뿐하고,
몸도 날아갈 듯 가벼워진다.
내가 초보다 보니 컨디션의 고른 배분을
아직 잘 못하여 이런 현상이 생기는 게 아닌가 싶다.
출산의 경험이 있는 여성동지들은 알 것이다.
아이를 낳을 때, 견딜 수 없는 산통 가운데서도,
주기적인 무통이 찾아들 때가 있다는 것을.
곧 죽을 것 같은 지옥의 고통을 겪다가도
그때 산모는 아주 잠시 천국같은 휴식을 취한다.
지쳤던 몸인지라 그 짧은 순간에 잠이 쏟아지기도 한다.
하지만 산통은 다시 산모를 고통의 도가니로 몰아 넣는다.
썩 절절한 비유는 아니겠지만
어제의 산행이 내겐 그러하였다.
들머리에 오르는 건 산통의 시작과 같다.
통증은 미약하고 충분히 견딜만 하다.
한데 시간이 갈수록 힘들어지고,
예상치 못했던 사태(허리 삠)까지 빚어지며
참기 힘든 고통이 몰려 온다.
도리켜 보니 몇 차례의 산행 때마다 유사한 일이 빚어졌던 것 같다.
하산때 까지는 고통과 쾌감, 힘듦과 휴식이 교차되며
다시는 산행을 못할 것 같았지만,
일단 산행이 끝나고 나면, 성취감과 보람에 모든 걸 잊고 만다.
그리곤 까페에 등산 일정이 게시되면 나는 또 산을 찾게 된다.
어제의 산행은 난산이었다.
허리를 다치고, 저체온증으로 고생하고, 무릎까지 불편하다.
난산한 산모는 몸조리에 신경을 써야 하며,
때론, '다시는 아이를 낳지 않겠어'라는 극언을 하게도 된다.
다시는 산에 오르지 않겠다고 호들갑을 떨지는 않겠지만,
나는 동토가 돼버린 산이 말랑말랑한 산으로 나를 품어주기 전까진
산에 오르지 않겠다.
간혹 산 내음이 그리우면 홀로 우장산에나 올라 아쉬움을 달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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