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일 상자를 개봉하면 최상품이 아닌 한
등급에 못미치는 과일들이 섞여있기 마련이다.
게중엔 조금씩 상하여 부식돼가는 것도 있고,
크기가 작거나, 맛이 떨어지는 넘들이 끼어 있다.
살림을 잘 하고 찬찬한 주부는
우선 품질을 따로 분류하고
상할 우려가 있거나 맛없는 것을
먼저 골라 놓고 먹을런지 모른다.
지난 날 우리 엄니가 그러하였다.
난 늘 그 반대였다.
가장 실한 놈, 가장 맛나게 보이는 것부터
먹어치운다. 그 담에는 나머지 가운데
가장 맛난 것을 골라 먹어치우고.
그러다 보면 나중엔 썩거나 못 먹게 되는 과일이
있게 마련인데, 그럴 땐 미련없이 버려버린다.
다소 아까울 때도 있지만, 그래도 후회는 없었다.
난 매일매일 내게 주어진 최상의 과일만 먹은 셈이니까.
물론 때에 따라 예외성을 보이기도 하나
대체로 그러하다는 말이다.
오늘 나는 두 개의 사과를 놓고 고민중이다.
오늘 나는 두 사람을 만나야 하는데,
몸은 하나고 시간은 양쪽을 허락지 않으니 문제다.
그 두 사람을 사과에 비유하면,
하나는 맛난 사과고, 또 하나는 병든 사과다.
맛난 사과는 오늘이 그의 생일인데,
벌써 전에 내가 저녁을 내겠노라는 선약을 해둔 바 있다.
반면 병든 사과는 어제 입원 소식을 알리며
중대한 수술을 앞두고 있다는 말을 전해왔다.
내일 난 제주도로 가고,
제주에 가면 며칠을 있다 와야 하는데,
병든 사과는 그 동안 수술을 하게 될지 모른다.
둘 중 하나만 선택해야하는 나로서는 맛난 사과에
더 마음이 간다.
물론 오전 타임을 쪼개어 병든 사과를 찾아 볼 수도 있겠으나,
그러다간 나까지 병들어 버릴 것 같다.
난 이제 통뼈가 아니다.
서울이란, 거리가 가깝지 않으면 오다가다 몸이 지쳐 버린다.
게다가 난 내일 먼길을 가야하고, 제주 모임에 가서
약간의 연설(?)도 해야하는 모양이니
준비할 것도 있지 않은가.
아니, 아니, 그 보다도 요즘 나야말로
삶의 짐이 넘 무거워 병든 사과가 될 입장이다 보니
우울한 사람들을 만나고 싶지 않다.
실은 요즘 또 다른 병든 사과가 있어 자주 문병하였다.
새벽같이 찾아가 그의 용변 보는 일을 도와주기도 하고,
잣죽이며 깨죽이며 삼계탕을 만들어 주기도 했다.
다행이 그는 우리 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어
알바를 하면서도 짬짬이 문병하는 게 가능하였다.
무엇부터 먹을까?.
선약이 돼 있는 맛난 사과를 먹어야겠지.
그는 요즘 내게 영약같은 존재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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