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 한자락

지옥 산행

tlsdkssk 2005. 12. 12. 22:44

저녁에 병원에 들러 물리치료를 받고 왔다.

지난번 손목 치료 관계로 내 얼굴을 기억하는 의사는

이번엔 웬일로 왔느냐 묻는다.

어제 도봉산에 갔다가 허리를 삐긋했다고 하자,

이 추위에 등산을 했느냐며 놀란다.

영하 8.8도, 체감온도 영하 12도라는 보도가 있었고 보면,

어제 산행은 여러가지로 위험을 무릅쓴 사건이었다.

무지한 자는 용감하다고, 사패산~도봉산 능선이

그리 험악한 줄 알았다면 따라가지 않았을 것이다.

등산 예상 시간이 5시간(중초보 시준)이라기에,

다소 무리가 되겠다 싶지만 가벼운 맘으로 집을 나섰다.

 

산에 오르니 눈이 쌓여 있고, 거의 모든 길이

빙판에 가깝다.

잘 닦여진 길은 문제가 없으나, 협소한 벼랑길을 갈 때는

등골이 오싹하였다.

발을 조금만 잘 못 디뎌도 그냥 굴러 떨어질 판.

두려움에 걸음을 못 떼고 있으려니, 삿갓이란 분이

내 발에 아이젠을 채워준다.   

 

아이젠이란 걸 어제 첨 착용해보았다.

아이젠은 얼음 길을 갈 때는 다소 도움이 되지만,

여간 불편한게 아니었다.

다리 허리에 무리가 오는 건 물론, 신발 발바닥이

평평하질 않으니 돌길에선 고꾸라질 것만 같다.  

내가 불편해 하자, 삿갓은 송구하게도 허리를 굽혀

다시 아이젠을 풀어 준다.

그러다 다시 빙판이 나오면 채워주기를 네댓번. 

나는 허리를 다쳤거니와 추위로 손이 곱아

도저히 아이젠을 만질 수가 없었다.

"저 땜에 고생하시네요."하자,

그 분은

"고생은요? 보람이지요."한다.

ㅎㅎㅎㅎ, 웃읍다. 남녀 사이란 그런 건가? 

만약 내가 그의 와이프였다 해도 그런 말을 했을까?

천만의 만만의 말씀. 어림도 없었겠지. ㅎㅎㅎㅎ

 

도봉산 능선을 따라 걷는 동안은

완존히 곡예사가 된 기분이었다.

얼어 붙은 바위, 뽀족뽀족한 바위를

다리를 쩍쩍 벌려가며

건너 뛰기도 해야하는데, 발을 조금만 헛디뎌도

큰일이 날 판이다.

멀쩡한 몸으로도 힘들 판이건만,

부상당한 허리로 곡예를 하자니

등에서 진땀이 난다. 

 

어제 집으로 돌아온 게 기적같기만 하다.

나는 잠자리에 들면서도, 몇번이나 위험한 산길이

떠올라 오싹오싹하였다.

험준한 겨울 산행은 어제로 끝이다. 

따듯한 봄이 오면 다시 찾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