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 한자락

거리의 음악가들

tlsdkssk 2005. 10. 25. 17:51

일터에 가기 위해 화곡역 근방을 지날 때였다.

시간이 늦어 총총 걸음으로 가고 있는데,

어디선가  아일랜드 민요 <아, 목동아>가 들려왔다.

소리에 끌리어 노선을 바꿔 역사 계단을 밟고 내려갔다.

놀랍게도 대합실엔 30여명의 여성들이 고운 화음으로

합창을 하고 있지 않은가.

연령은 4,50대로 보이고, 게중엔 백발이 성성한

할머니도 몇 분 계셨다. 

지휘자는 검은 정장으로 격식을 갖췄지만,

단원들은 하나같이 소박한 평상복 차림이다.

얼마나 아름다운 공연인가.

아무나, 누구든지, 부담없이 감상의 기회를

제공하는 거리의 음악가들. 

 

계절은 바야흐로 가을이 되었다.

머잖아 땅  위엔 녹슨 낙엽이 뒹굴고

스산한 바람이  회색 거리를 맴돌 것을 알기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그 노래 특유의 애잔함 때문이었을까,

그만 코끝이 찡한 게 눈앞이 아물거렸다.

지휘자는 눈을 감고 지휘봉을 흔들고,

반주자는 고개를 이리저리 움직이며 

연주에 취해 있고,

단원들은  아름다운 하모니를 뿜고 있건만,

사람들은 무심히 지나칠 뿐

아무도 그들을 보아주는 이는 없었다.  

무심한 인간들, 손이라도 한 번 흔들어 주면 좋았을 것을.  

 

나 홀로 그들 앞에 붙박힌 듯  서 있었다.

단원들 얼굴을 하나하나 바라보며,

어쩌다 눈길이 마주치면 감사의 웃음을 보내주었다.

마음 같아선 끝까지 다 들어주고

박수라도 보내고 싶었지만,

시간에 쫓겨  마저 듣지 못한 게

얼마나 미안하고 아쉬웠는지 모른다.

공연장은 비록 초라했지만,

그들이야말로 이 삭막한 도심을

적시는 오아시스란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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