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터에 가기 위해 화곡역 근방을 지날 때였다.
시간이 늦어 총총 걸음으로 가고 있는데,
어디선가 아일랜드 민요 <아, 목동아>가 들려왔다.
소리에 끌리어 노선을 바꿔 역사 계단을 밟고 내려갔다.
놀랍게도 대합실엔 30여명의 여성들이 고운 화음으로
합창을 하고 있지 않은가.
연령은 4,50대로 보이고, 게중엔 백발이 성성한
할머니도 몇 분 계셨다.
지휘자는 검은 정장으로 격식을 갖췄지만,
단원들은 하나같이 소박한 평상복 차림이다.
얼마나 아름다운 공연인가.
아무나, 누구든지, 부담없이 감상의 기회를
제공하는 거리의 음악가들.
계절은 바야흐로 가을이 되었다.
머잖아 땅 위엔 녹슨 낙엽이 뒹굴고
스산한 바람이 회색 거리를 맴돌 것을 알기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그 노래 특유의 애잔함 때문이었을까,
그만 코끝이 찡한 게 눈앞이 아물거렸다.
지휘자는 눈을 감고 지휘봉을 흔들고,
반주자는 고개를 이리저리 움직이며
연주에 취해 있고,
단원들은 아름다운 하모니를 뿜고 있건만,
사람들은 무심히 지나칠 뿐
아무도 그들을 보아주는 이는 없었다.
무심한 인간들, 손이라도 한 번 흔들어 주면 좋았을 것을.
나 홀로 그들 앞에 붙박힌 듯 서 있었다.
단원들 얼굴을 하나하나 바라보며,
어쩌다 눈길이 마주치면 감사의 웃음을 보내주었다.
마음 같아선 끝까지 다 들어주고
박수라도 보내고 싶었지만,
시간에 쫓겨 마저 듣지 못한 게
얼마나 미안하고 아쉬웠는지 모른다.
공연장은 비록 초라했지만,
그들이야말로 이 삭막한 도심을
적시는 오아시스란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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