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때 집에(혹은 친척집에) 갔던 내 일터의 아이들이
저마다 먹거리를 싸들고 왔다.
과일 봉지며, 꿀이며, 얼음에 채운 생닭이며...
이곳에서 신세지고 있는 걸 조금이라도
갚고자 함이었으리라.
그 광경을 물끄러미 지켜보던 미영이가 혼자말을 한다.
"아, 닭고기 맛있겠다."
내가,
"닭고기가 먹고 싶구나? 했더니,
"전 닭껍질은 안 먹어요." 한다.
"나도 닭껍질은 안먹어." 하며 맞장구를 쳐주자
미영인 기분 좋은 듯 씨익 웃는다.
냉장고엔 먹을 것이 그득하건만,(이곳 아이들 정말 잘 먹인다)
쇠고기와 돼지고기, 햄 등을 제쳐두고
저녁 찬으로 닭찜을 만들어 주었다.
미영이는 닭냄새가 좋은지,
싱크대 주변을 얼씬 거린다.
감자와 당근과 양파를 듬뿍 넣고,
밤까지 까 넣은 닭찜은 내가 보기에도
군침이 돌도록 맛나 보였다.
미영이에게 순 살만 푸짐한 고기점을 주었더니,
그 애 입이 귀밑에 걸린다.
저녁이 가까워 오자 학교 갔던 아이들이
하나 둘씩 몰려 오며,
"아, 맛있는 냄새!" 한다.
하도 속들을 썩여 수녀님께 '대상포진'이란
병까지 안겨준 아이들이건만,
밥 냄새를 맡고 기뻐하는 표정을 보면
어찌 그리 이쁜지...
딸을 길러보지 못한 나로서는 참으로 신선한 체험이다.
그래선가, 이제 그곳 일이 전혀 피곤한 줄을 모르겠다.
오늘은 수녀님과 미영이의 성교육 문제에 대해
의견을 나누다 왔다.
몇가지 질문을 하자, 미영인 아무 것도 모른다는
반응이다. 솔직히 말 하기가 쑥스러웠던 걸까.
울 아들도 5학년 때 학교에서 다 배웠다고 하더구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