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영(가명)이는,
내가 일하는 <* * *의 집>에 살고 있는 막내로,
초등학교 5학년이다.
추석을 맞아 다른 애들은 모두 자기 집이나 친척 집으로
명절을 쇠러 갔는데, 미영이만은 갈 곳이 없어
수녀님과 지냈다.
오늘 들르니, 미영인 자기 몸피만한 핑크색
곰 인형을 안고 있다.
원장 수녀님이 주신 추석 선물이란다.
미영인 은근 슬쩍 제 자랑을 하고 싶었는지,
거실에 있는 피아노를 두드리기 시작했다.
<엘리제를 위하여>, <은파>, <아드린느를 위한 발라드>
<로미오와 줄리엣 주제곡>......
예닐곱 곡쯤을 쉴새 없이 연주하는데,
박자와 음정이 간혹 틀리고, 모든 곡들을 첫 부분
몇 소절씩만 연주하였다.
"듣기 좋다. 마저 다 치렴." 하자, 미영인
그것밖에 못친다며 발뺌을 한다.
마침 우리 둘 뿐이기에 미영이에게 말을 건네보았다.
"미영인 이담에 뭐가 되는 게 꿈이냐?"
미영이가 대답했다.
"저는요, 피아니스트가 되고 싶어요.
체육 선생님도 되고 싶고,
음악 선생님도 되고 싶고,
모든 노래를 다 부르는 가수도 되고 싶고....
근데 초등학교 선생님이 되고 싶어요.
전 공부 하는 거 싫으니까요."
나는 혼자 쿡쿡 웃었다.
초등학교 선생은 공부 못해도 되는 줄 아나 보지.
미영이,
그의 부모는 필시 순하고 덕스러우라고
**이라 이름지었으리라.
하지만 그 애는 조금도 순하지 않고,
덕스러움과는 더더욱 거리가 멀다.
하기야 아이에게 무슨 덕스러움까지 기대할까만,
그 애는 영악한 구석이 있어 선뜻 정이 가지 않는다.
웃을 때 덧니를 드러내는 모습을 보면 귀여운 어린애인데,
눈빛은 순간순간 머리를 굴리는 빛이 역력하며,
이미 세상을 다 꿰뚫은 듯 보이기도 한다.
어린이에게 어린이 다움이 사라지면
어딘가 기형적인 느낌이 들게 마련이다.
수녀님이나 사회복지사도,
미영이가 이 집에서 가장 나이 어린애지만,
어른들 머리 꼭대기에서 노는 애라고 귀뜸을 한다.
노동을 하던 아버지는 사망했고,
어머니는 정신질환자라고 했던가.
어린 나이에 받은 상처가 너무 컸을 것 같다.
수녀님은 미영이가 음악을 좋아해서,
피아노 학원을 보내줄 게획도 세워두신 모양이다.
미영이가 제발 피아니스트의
꿈을 버리지 않았으면 좋겠다.
자신의 상처와 아픔을 음악으로 승화하며
연주가의 길을 걷는다면 미영이의 상처는
걸하고도 귀한 밑거름이 될 수 있을 테니까.
미영아,
모쪼록 네 한과 설움을 모두 모두 피아노에 쏟으렴.
피아노를 두둘기며 노래도 부르고,
건반이 무너져라 네 감정도 쏟아내고 말야.
그래, 너 자신일랑은 부수지 말고,
피아노를 원없이 부서대라, 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