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대순에게 일본인 대학생 얘기를 하며,
"지금 내게 히로시마 원폭투하 사건을 어떻게 생각하느냐
묻고 있는데, 말은 알아들었지만, 어떻게 대답해야
좋을지 모르겠어." 하며, 멈칫거렸다.
그러자 당신은 내가 당신의 질문을 알아듣지 못한 줄 알고,
"...히로시마 쾅~...."
의성어까지 동원해가면서 내 대답을 기다렸다.
난 영어를 할 수 없어, 대신 친구 대순에게 대답했다.
"그야 좀 안되긴 했지만, 나이스 아냐?"
당신은 '나이스'란 말을 알아들었는지
이내 경악스런 표정을 지으며 연거퍼 물었다.
"나이스? 나이스?"
난 아무말도 하지 않았고,
당신은 착잡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더니
저만치 서 있는 또래의 학생에게로 걸어갔다.
우리의 만남은 그것이 전부였다.
그후 십여 년이 지나, 나는 삼십대가 되었고,
의학자인 '나가이 다카(께?)시'라는 일본인이 쓴
'묵주알'과 '영원한 것을' 이란
책을 읽게 되었다.
나가이 다카시의 착하고 어진 아내는 바로 그날,
원폭 속에 한 순간 한 줌 재로 사라지고 말았다.
집도 절도 다 사라지고, 형체를 알아볼 수 없는 그녀의 곁엔
그녀가 쥐고 있던 묵주알만이 시신의 주인공을 알려주고 있었을 뿐이다.
나는 그 책을 읽으며 비로소 당신의 질문을 떠올렸다.
그리곤 말할 수 없는 아픔과 미안함을 느꼈다.
그래, 그날, 원폭 투하로 히로시마 나가사끼가 쑥밭이 되던 날,
거기엔 징용갔던 수 많은 조선인과
무고한 일본인들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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