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아버진 60세를 다 못 채운 58세에 돌아가셨다.
간경화가 악화 되어 간암으로 돌아가셨다.
평소 건강체였기에 작은 이상을 간과 한 것이 치료를 놓친
계기가 되었다.
대통령의 내과 주치의까지 지낸 저명한 의사가 희망이 없음을
선언했을 때, 우리 가족은 아버지에겐 비밀에 부치고
마음의 각오를 하고 있었다.
어머니는 무멋보다 아버지의 천주교 입교를
가장 큰 문제로 삼으셨다.
당시엔 나도 열성 신자여서 아버지의 세례를 돕고 싶었다.
나는 거의 매일 친정을 찾아가 아버지와 대화를 나누었다.
식도정맥류 파혈로 갑작스런 토혈을 일으킨 이후,
우리는 초 긴장 상태가 되어 아버지의 입교를 권면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아버진 고개를 저으셨다.
"나는 평생 하느님을 모르고 살아온 사람인데, 나 죽게 됐다고
이제와서 하느님을 찾겠느냐?"
한데, 나는 그런 아버지가 좋았다.
아버지는 적어도 염치를 아는 분 같았으니까.
만약 아버지가 나약한 모습을 보이며,
"그래, 얘야, 날 좀 살려 다오. 내 병좀 낫게 해달라고 하느님께 기도드려 다오."
하셨다면, 아버지가 딱하고 측은하게 보였을 것이다.
신심 깊은 어머니는 아버지를 위해 간절히 기도 하셨다.
어머니는 간혹 환상 중에 많은 교우들이
아버지를 위해 기도드리는 소리가 들린다고 하셨다.
그런 일이 있을 즈음이면 어김없이 교우들이 문병을 오곤 했다.
아버진 늘 거울을 곁에 두고 매무세를 단정히 하시며
손님들을 잘 대접해 보내라고 내게 신신 당부하셨다.
그 몇달후, 아버진 심경의 변화를 일으켜 세레를 받으셨다.
그리하여 '바오로'라는 세레명을 지니게 되엇다.
한데 참으로 신기한 일이다.
생전 교회라곤 모르시던 아버지가
셰례를 받으신 이후 더할나위 없는
크리스챤의 모습을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어느 날 아버지는 십자상과 예수님의 상본을
머리맡에 놓아달라고 하셨다.
그리곤 말기 암의 단말마적인 고통이 찾아 올 때면,
주위 사람 신경 쓰지 않도록 입속으로 신음을 삼키셨다.
그러면서(어머니 말씀에 의하면) 이렇게 기도하셨다는 것이다.
"당신은 아무 죄 없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습니다.
저는 죄가 많습니다.
제가 잘 참아 받게 도와 주십시오...."
숨을 거둔 아버지의 얼굴은 아이처럼 평화로워 보였다.
신은 정말 있는가?
내세는 정말 있는가?
기도가 정말 필요한 것인가?
사람들은 신의 문제를 두고 많이 의심하며 방황한다.
그러나 나는 생각한다.
신이 있든 없든,
내세가 있든 없든,
신이 기도를 들으시던 말든,
우리는 기도하고 신을 찾아야 한다고.
왜냐면 그 길만이 미천한 인간을 신의 모습에 가까워지도록 이끄는
끈이 된다고 믿는 까닭이다.
아버지는 기도를 통해 당신 안의 신을 발견한 게 아니었을까.
그리하여 고통은 면해지지 않았지만,
고통의 의미를 새기며 고통에 의연하고
인간적 품위를 지키실 수 있었던 게 아닐까.
나는 아버지 좋아하긴 했으나 존경하진 않았다.
하지만 아버지는 임종에 이르러 나에게
존경스런 모습을 남겨주고 떠나셨다.
오늘 새삼 내 아버지가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