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거의가 가슴에 깊은 심연을 품고 살아간다.
심연의 위치나 깊이는 저마다 달라 멋 모르고 들어갔다가
그 못에 발을 헛디디는 낭패를 당하게 된다.
수십년을 사귀어온 친구나 연인의 경우도 예외는 아니어서
혹간 우리를 당혹스럽게 만든다.
무심코 꺼낸 내 말 한마디에 상대의 낯빛이 달라지기도 하고,
반대로 나의 낯빛이 흐려지기도 한다.
심연이란 대체로 그 사람만의 내밀한 아픔이거나, 비밀이거나,
특성이거나 하여 겉으론 도무지 알 수가 없다.
이쯤 되면 그 사람과 많은 게 통한다고, 코드가 맞는다고 판단하며
과속하고 직진하다 보면 어느 지점에선 거의 틀림없이
접촉사고를 일으키거나 심연에 빠져들게 된다.
거리의 신호등처럼 마음의 신호등을 밝혀 놓고
녹색불과 빨간불과 노란불을 수시로 바꿔가며 조절을 할 일이다.
녹색등이 켜졌다고 과속하지 말아야 하는 건
마음의 도로에도 함께 적용되는 일인 것 같다.
도로의 어디엔가 위험 요인이 불쑥 등장할 지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주행과 정지, 빠름과 느림, 근접과 거리, 이런 요인들은
인간의 어느 관계에서도 필요하다고 본다.
아무리 친한 사이라 할지라도 간혹 쉬어줌이 필요하다.
더할 나위 없는 연인 사이라도 근접과 거리를 조절 할 줄 아는
조화의 묘가 필요하다.
이완과 긴장이 우리 육체를 건강히 이끌어가듯,
인간 관계에서도 이 원칙은 예외가 없는 듯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