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켈란젤로의 사랑
58세 때인 1532년 가을, 미켈란젤로는 로마의 귀족 청년 토마소 디 카발리에리를 만나게 됩니다.
그는 실물 크기의 카발리에리의 초상화를 그려 자기의 애정을 표현했으며, 때로는독수리 모습의 제우스로 변신한 자신이 카발리에리를 상징하는 목동 소년 게니메데를 하늘로 낚아채는 그림을 그려 보내기도 했습니다.
카발리에리도 미켈란젤로를 매우 존경했으며, 미켈란젤로로 하여금 성 베드로 대성당과 둥근 기둥의 목조 조형을 완성시킬 수 있도록 격려해주기도 했습니다.
1534년 9월 그는 로마에서 17세 연하인 빅토리아 코론나(Vittoria Colonna)를 처음 알게 됩니다.
당시 그녀는 47세이고 그는 64세였습니다.
그녀는 파리아노의 영주 파브릿치오 콜론나의 딸로 수도 생활을 하던 페스카라 후작의 미망인이었습니다.
우아한 자태, 생기 넘치는 짙은 초록색의 아름다운 두 눈, 상기된 두 볼을 간직한 그녀의 모습은 그야말로 성녀 그 자체였던 것입니다.
그녀가 1541년 로마를 떠나 베테르보 수녀원으로 들어가 버린 후에도 그는 수녀원까지 자주 찾아가고 서로 순결하고 깊은 사랑에 가득 찬 편지를 주고받았다고 합니다.
그녀의 사랑은 미켈란젤로로 하여금 예술에다 신앙의 세계를 반영하도록 했으며, 시적 천재로 비약하게 하는 데 크게 기여합니다.
그녀는 <영적 소네트>를 쓸 때마다 한 편씩 그에게 보내주고, 그는 그녀의 시에서 위안에 찬 따스함과 새로운 생명을 찾아내곤 했으며, 그도 이런 시도 지어 그녀에게 전합니다.
내가 달아날 길을 찾아내듯이
나의 자유로운 정신이 그 마지막 여정에서
결코 오류의 포로가 되지 않도록
내가 완전히 눈 먼 장님이 되지 않도록
나의 경외하는 여주인인 당신 앞에
이 백지를 펴 보이겠습니다.
아무쪼록 당신은 신성한 필치로
내가 걸어가야 할 길을 가르쳐 주기 바랍니다.
그녀는 1544년에 로마로 돌아와 성 안나 수녀원에서 살다가 1547년 2월 숨을 거둡니다.
그는 그녀를 위해 소네트를 지어 그녀의 영전에 바치고, 그로부터 몇 년 동안 마치 넋 나간 사람처럼 지냈습니다.
나를 이토록 슬프게 하는 이여!
그대가 이 세상 나의 눈앞에서 모습을 감추었을 때
자연은 회한에 잠기고 사람들은 눈물에 젖었다네.
그러나 죽음이여,
태양 속의 빛을 지웠다고 자랑하지 말라.
그녀는 이 땅 위와 하늘 위에,
여러 성인들 사이에 다시 살아 있나니!
사악한 죽음은 그녀의 미덕을 지우고
혼의 아름다움을 가졌다고 여길지니!
그러나, 그녀가 남긴 것은
그녀 생전보다 더욱 빛나고 있나니!
죽음에 의해 그녀는 아직 갖지 못했던 천국을 얻었나니!
미켈란제로가 코론나를 사랑하게 된 것은 용모는 뛰어나지 않았으나 지성미있는 다정다감한 매혹적 화술 때문이였다고 합니다.
코론나는 너무 신앙이 두터운 나머지 이단에도 가담했다가 반동으로 몰려 처형을 면하려고 교우를 밀고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녀는 죄책감, 그리고 성욕으로 인한 고뇌 등을 잊고 평안을 얻으려고 미케란제로와 마음의 사랑을 나누었던 것이라고 평해지고 있습니다.
그는 제자들 중에서 1503년부터 율리우스 2세 묘의 조각 일을 도와왔던 프란체스코 다마들레를 특히 사랑하였습니다.
그런데 그보다 제자가 먼저 세상을 떠나 버리자, 제자의 가난을 염려하여 2천 에퀴나 되는 거액을 주고 위로하고, 너무도 슬퍼 조카에게 이런 편지 구절을 써서 보냅니다.
"그와 함께 죽었더라면 좋았을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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