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

스콧 니어링 자서전

tlsdkssk 2018. 10. 28. 11:22

스콧 니어링 자서전

2007 06/26뉴스메이커 730호


우리 시대에 필요한 의인 한 사람

오늘의 한국은 가히 유토피아다. 서유럽에 비교해도 뒤지지 않는 복지가 실현되는 나라다. 그 하나의 예가 서민들에게 무이자로 돈을 주겠다고 선전하는 개과천선한 사채업자들이다. 전 세계에서 유례가 없는 일이다. 얼굴이 널리 알려진 배우들이 날마다 텔레비전에 나와 “무이자, 무이자”라고 외친다. 차기 대통령이 될 사람들에 따르면 대한민국 경제성장률은 7%에, 그리고 국민소득은 곧 3만 달러에 이를 것이다. 대한민국의 현재는 물론이고, 미래 전망도 장밋빛이다. 일부 서민 사이에서 “힘들다”는 얘기가 없지 않지만, 사회 전체로 보면 돈은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차고 넘친다. 넘치는 사회적 부는 부동산으로, 주식으로, 펀드로, 그림으로, 투자대상을 찾아 거침없이 흘러간다.

한 지역 주민들이 어린 돼지를 찢어 죽이는 일을 퍼포먼스라고 태연자약하게 저지를 정도로 사람들은 거침없이 담대하다. 산 생명의 사지를 찢는 이 후안무치한 용맹성은 어디에서 왔는가. 넘치는 돈이 지금 대한민국의 자신감과 용맹성의 근원이다. 한·미 FTA(자유무역협정) 체결로 빚은 피해 따위는 아무것도 아니다. 대한민국 건국 이래 이런 태평성대가 언제 있었던가. 어디를 가나 풍악이 울리고, 어디를 가나 먹고 마시는 일이 넘쳐난다. 놀다 병나고 먹다 탈 나는 사람이 부지기수다. 넘치는 돈이 불러온 이 풍요를 감당하는 데서 사람들의 피로가 생겨난다.

이 태평성대는 뭔가 수상하다. 사람들은 이 태평성대가 쭉 이어지려면 대를 위해 소를 희생하는 것쯤은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의심할 여지없이 대한민국의 태평성대는 작은 것들의 희생 위에 세워져 있다. 대한민국은 속도와 효용성을 최고의 도덕가치로 섬기는 시장경제주의라는 광풍에 휩싸였다. 소수자들의 목소리는 미풍과 같아서 이 광풍에 가려진다. 노숙자, 장애인, 양심적 병역거부자, 채식주의자, 성적 소수자, 근본적 생태주의자, 녹색평론, 작은것이 아름답다, 독립영화…. 이들은 질풍노도로 달려가는 대한민국이라는 수레 앞을 감히 막아서는 사마귀들이다. 소수자에 대한 배려가 없는 한국사회는 이 사마귀들을 바퀴로 무자비하게 짓이긴다. 내가 이 태평성대를 흔쾌한 마음으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까닭이 여기 있다. 모든 이를 위한 성장과 잔치가 아니다. 오직 그들만을 위한 성장, 그들만의 잔치라는 의심이 간다. 여기저기 도덕적 해이와 부패에서 나오는 악취가 난다.

우리 시대에 필요한 의인 한 사람을 생각한다. 그는 미국의 소수 권력층에 속하는 집안에서 인생을 시작했으나 모든 기득권을 포기한다. 그는 반전 논문을 쓰고 스파이 혐의로 연방법정에 피고로 섰으나 무죄판결을 받았으며 강연을 통해 평화를 얘기한 평화주의자였다. 그럼에도 그는 동시대인들에게 위험분자로 낙인찍히고, 교수와 공직을 박탈당한다. 강연은 취소되고, 감옥에 갇혔으며, 그가 쓴 책은 재판에 부쳐지고, 신문사들은 그의 저서에 대한 유료광고 게재조차 거절했다.

그가 무기를 들고 폭력을 선동했을까? 그는 무기를 손에 쥔 적이 없으며 다만 책을 읽고 사유한 학자며 정직한 언어를 구사하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광기에 사로잡힌 국가와 기득권 세력은 그를 사회와 체재를 파괴할 수 있는 과격인물로 배척하고 철저하게 고립시켰다. 그가 모두 미친 사회에서 오직 저 혼자 제 정신을 갖고 “이성의 목소리”를 냈기 때문이다. “사람은 대중의 생활습관, 도덕기준을 따라야 하는가, 아니면 자신의 규범을 만들어가야 하는가? 자신의 규범에 따라 살고 그것을 지키면서 그에 반대되는 사회에 대항하여 거슬러 나아갈 것인가, 아니면 무저항의 길을 따를 것인가?” 누구나 세상을 변화시키며 살 것인지, 아니면 주어진 현실과 타협하고 살 것인지를 선택해야 한다. 물론 그는 자신의 규범에 따라 세상을 변화하는 데 저를 바치고 그에 반대하는 사회에 맞서 거슬러 나아가는 길을 선택한다. 그의 이름은 스콧 니어링(1883~ 1983)이다.

스콧 니어링은 타고난 비순응주의자로, 반자본주의, 친사회주의, 반전, 친평화의 길을 걸어간 반전운동가, 평화주의자, 저술가, 채식주의자다. 헬렌 니어링이 쓴 ‘아름다운 삶, 사랑 그리고 마무리’라는 감동적인 책에서 그를 처음 알았다. 헬렌 니어링은 그의 아내다. 저의 기득권과 행복이 아니라 다수의 행복, 다수의 사회복지, 공동의 가치, 공동 선을 드높이는 일에 관심을 가졌던 스콧 니어링은 “간소하고 질서 있는 생활을 할 것. 미리 계획을 세울 것. 일관성을 유지할 것. 꼭 필요하지 않은 일을 멀리할 것. 되도록 마음이 흐트러지지 않도록 할 것. 그날 그날 자연과 사람 사이의 가치 있는 만남을 이루어가고, 노동으로 생계를 세울 것. 자료를 모으고 체계를 세울 것. 연구에 온 힘을 쏟고 방향성을 지킬 것. 쓰고 강연하며 가르칠 것. 계급투쟁 운동과 긴밀한 접촉을 유지할 것. 원초적이고 우주적인 힘에 대한 이해를 넓힐 것. 계속해서 배우고 익혀 점차 통일되고 원만하며, 균형 잡힌 인격체를 완성할 것”을 인생 목표로 삼고 자기 길을 걸어간다.

그는 한 시대의 도덕적·윤리적 지표가 될 만한 삶의 궤적을 남겼다. 그를 만든 것은 어머니, 친할아버지, 대학교 은사인 사이먼 넬슨 패튼 교수다. 부유한 가정의 한 남자아이를 20세기 초 산업사회로 이동한 미국사회에서 하층민의 분배와 평등, 자유에 관심을 가진 진보적 사상의 인물로 자라도록 만든 것은 그들만이 아니다. 톨스토이와 자기 희생, 소크라테스와 이성의 법칙, 부처와 살생하지 말라는 가르침, 소로와 간소한 생활, 마르크스·엥겔스와 착취에 대한 저항, 간디와 노자의 비폭력, 빅토르 위고와 인도주의, 예수와 사회봉사, 공자가 취한 중용의 도, 리처드 바크의 우주의식, 월트 휘트먼과 자연주의, 벨라미와 공상적 이상주의자들, 올리브 슈라이너와 우화 작가들, 버크의 질서의식, 로맹 롤랑의 장 크리스토프 등이 크든 작든 영향을 미쳤다. 스콧은 그들에게서 영감을 얻고 기꺼이 그들이 앞서 간 길을 따라 걸은 것이다.

진정으로 충만하고 보람 있는 삶을 누리고자 하는 사람에게 ‘스콧 니어링의 자서전’을 꼭 읽어보도록 권한다. 그의 삶에는 목적이 있고, 그 목적을 향한 열정과 실천력이 있었다. 그는 우리 하나하나가 “인류 전체의 일부이자 당대 사회적·자연적 환경의 일부”임을 자각한다. 우리가 변한다면 세계 역시 변할 수밖에 없다. 헬렌 니어링과 결혼한 뒤 버몬트주의 숲속으로 들어가 기꺼이 단순하고, 검약하고, 가난한 시골생활을 자발적으로 선택한 스콧은 시골생활이 “미친 세상에서 제 정신을 갖고 사는 삶의 한 예이자 본보기”라고 말한다. 아울러 시골생활은 “비정상적인 정치”와 “문명의 유혹과 천박함“에서 벗어날 수 있는 대안이자 피난처이고, 이 “험난한 세상에서 자존심과 품위를 지키며 온전한 정신으로 살아갈 길”이다. 스콧 니어링은 시골생활이 현자나 성숙한 인간이 제 이상과 취향을 추구하며 살 수 있는 유일한 삶의 방식이라고 굳게 믿었다.

그는 돈을 버는 데 쓰는 시간을 최소화한다. 모든 계획과 목표를 고려해서 필요한 현금액수를 정한 뒤 그 액수를 벌 만큼만 환금작물을 생산했다. 그리고 목표을 채우면 다음 해 예산을 세울 때까지 일을 그친다. 그렇게 얻은 귀한 시간은 명상과 휴식, 책읽기와 여행 등을 하며 삶을 의미 있게 보내는 데 보탠다.

그는 100세를 살고, 품위와 존엄이 있는 방식의 죽음을 맞았다. 그는 일체의 생명을 연장하려는 의학적 배려, 고통을 줄이려는 진통제, 마취제의 도움도 물리치고, 물과 음식조차 끊고, 온전한 몸과 마음으로 죽음을 평화롭게 맞았다. 가히 마음의 푯대로 삼을 만한 성자(聖者)다. 스콧은 어떻게 살아야 잘 사는 것인지에 대한 진지한 숙고로 우리를 이끈다. 지금 대한민국에 필요한 딱 한 사람은 스콧 니어링과 같은 의인이다.

〈장석주 시인·문학평론가〉











 

 

다음검색



'살며 사랑하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안락사  (0) 2018.10.29
존엄사 택한 명지휘자 에드워드 다운스   (0) 2018.10.29
스콧 니어링의 죽음은  (0) 2018.10.28
스콧 니어링  (0) 2018.10.28
정치적 성향과 뇌  (0) 2018.10.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