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가 흐르는 상자

[스크랩] 이병률 끌림 중에서

tlsdkssk 2017. 8. 1. 15:27

 

'열정 이라는 말'

 

열정이란 말은 한 철 태양이 머물다 지나간 들판의 냄새가 있고, 이른 새벽 푸석푸석한 이마를 쓸어 올리며

무언가를 끼적이는 청년의 눈빛이 스며 있고, 언제인지 모르지만

언젠가는 타고 떠날 수 있는 보너스 항공권 한 장에 들어 있는 울렁거림이 있다.

열정은 그런 것이다. 그걸 모르면 숨이 막힐 것 같은 어둠에 놓여 있는 상태가 되고,

그걸 갖지 아니하면 신발을 신지 않은 채 낯선 도시에 떨어진 그 암담함과 다르지 않다.

 

사랑의 열정이 그러했고 청춘의 열정이 그러했고 먼 곳을 향한 열정이 그러했듯

가지고 있는 자와 가지고 있지 않는 자가 확여히 구분되는 그런 것.

이를테면 열정은 강 하나를 사이에 두고 건넌 자와 건너지 않은 자로 비유되고 구분되는 것이 아니라,

강물에 몸을 던져 물살을 타고 먼 길을 떠난 자와 아직 채 강물에 발을 담그지 않은 자, 그 둘로 비유 된다

열정은 건너는 것이 아니라, 몸을 맡겨 흐르는 것이다.


 

 

당신에게

 

청춘을 가만 두라. 흘러가는 대로. 혹은 그냥 닥치는 그대로.

청춘에 있어서만큼 사용법이란 없다. 파도처럼 닥치면 온몸으로 받을 것이며 비갠 뒤의 푸른 하늘처럼

눈이 시리면 그냥 거기다 온 몸을 푹 담그면 그만이다.

주저하면 청춘이 아니다. 생각의 벽 안쪽에 갖혀 지내는 것도 청춘이 아니다.

괜히 자기 자신을 탓하거나 그도 아니면 남을 탓하는 것도 청춘의 임무가 아니다.

청춘은 운동장이다. 눈길 줄 데가 많은 변화가이며 마음 들떠 어쩔 줄 모르는 소풍 날이다.

가끔, 나의 청춘을 돌아볼 때마다 여전히 가슴 두근거리는 이유는 아무거나 낙서를 해도 괜찮은 도화지,

그것도 끝도 없이 펼쳐진 거대한 도화지가 떠올려져서다. 누군들 그렇지 않을까.

어디서부터 어떻게 어질러야 할지를 모르는 하얀 도화지 앞에서의 두근거림이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순결한 감정이며 동시에 인생에 있어 몇 번 안 되는 기회일테니 말이다.

하지만 청춘은 방해 받는 것 투성이다.

'하지 말라'는 말들을 귀에 딱지가 앉을 정도로 들어야 함으로 느낄수도, 만날 수도, 가질 수도 없게 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느껴야 하는 것, 만나야 하는 것, 사력을 다해 가져야 하는 것.

그래서 반드시 행복해야 하는 것, 그것이 청춘이다.

 

하지만 대부분 우리가 자신이 가지고 있는 걸 잘 느끼지 못하는 것처럼 청춘도 가볍게 여기기 쉽다.

그렇기 때문에 가볍게 소비되고 말며 그것이 얼마나 소중하고 아름다운 것이며 사랑스러운 것인지를 모른다.

 

청춘은 한 뼘 차이인지도 모른다. 그 사람과 내가 맞지 않았던 것도, 그 사람과 내가 인연으로 스치지 못했던 것도

그 한 뼘 차이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

청춘의 모두는 한 뼘과 연관되어 있으며 겨우, 그 한 뼘 때문에 대부분의 결과는 좋지 않다.

그러므로 지금까지의 모든 청춘은 실패했다. 세상 선배들의 모든 청춘이 그랬다.

하지만 그건 청춘이 실패를 겪을까봐 아무것도 저질러보지 못한 이들의 후회일뿐.

실패를 겪으며 창피할까봐, 그 실패로 인해 또 다시 막막해질까봐 매순간 뒷걸음질을 했기 때문이다.

돌이켜보면 무엇이든 어느때건 가능 한 일 투성이었다는 것을, 그것이 얼마나 멋진 일이었던가를 세상 모든 선배들은 몰랐다.

그래서 선배들은 바보처럼 중얼거린다. '십 년만 젊었더라면… 십 년 전으로만 돌이킬 수 있다면…'

하지만 그 십년은 되돌려지지도 않을뿐더러 만약 이미 아무렇게나 지나쳐버린 십년 전으로 되돌아간다 해도

그 청춘을 다시 성공으로 돌이킬 수는 없다. 청춘에 있어서 한번 실패한 사람은 영원히 실패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청춘은 예민하되 청춘은 복잡하지 않다. 그렇다고 대단하지도 않다.

그냥 언뜻언뜻 휩쓸려가는 것이며, 중단할 수 없는 것이며 누구도 막아설 수 없는 것이다.

청춘은 다른 것으로는 안되는 것이다. 다른 것으로는 대신할 수 없는 것이다.

울 일도 많을 것이다. 어쩌면 넘어지는 일도, 억울한 일도 많을 것이다.

청춘이라는 이유로 금세 딛고 일어설 수 있기 때문이다. 차라리 그것이 힘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니 문 앞에 서서 이 문 안에 무엇이 있을지, 무슨 일이 생길 것인지를 고민하면서 시간을 써버리면 안 된다.

그냥 설렘의 기운으로 힘껏 문을 열면 된다. 그때 쏟아지는 봄빛과 봄기운과 봄 햇살을 양팔 벌려 힘껏 껴안을 수 있다면 그것이 청춘이다.

그래서 청춘을 봄이라 한다.


 

 

사랑해라

 

사랑해라. 시간이 없다.

사랑은 자꾸 벽에다가 걸어두지만 말고 만지고, 입고 그리고 얼굴에 문대라.

사랑은 기다려 주지 않으며,

내릴 곳을 몰라 종점까지 가게 된다 할지라도 아무 보상이 없으며

오히려 핑게를 준비하는 당신에게 책임을 물을 것이다.

사랑해라. 정각에 도착한 그 사랑에 늦으면 안 된다.

 

사랑은 그런 의미에서 기차다.

함께 타지 않으면 같은 풍경을 나란히 볼 수 없는 것.

나란히 표를 끊지 않으면 따로 앉을 수 밖에 없는 것.

서로 마음을 확인하지 않았다면 같은 역에 내릴 수도 없는 것.

그 후로 영원히 영영 어긋나고 마는 것.

 

만약 당신이 그리 할 수만 있다면 세상을 이해하는 법을,

우주를 바라보는 방법을 익히게 될 것이다.

그러다 어쩌면, 세상을 껴안다가 문득 그를 껴안고,

당신 자신을 껴안는 착각이 들기도 할 것이다.

그 기분에 울컥해지기도 할 것이다.

그렇게 사랑은 아무런 준비가 돼 있지 않는 당신에게 많은 걸 쏟아놓을 것이다.

한 사람과 한 사람이 만나 세상을 원하는 색으로 물들이는 기적을

당신은 두 눈으로 확인하게 되는 것이다.

 

동전을 듬뿍 넣었는데 아무것도 나오지 않는다 해도 당신 사랑이다.

너무 아끼는 책을 보며 넘기다가,

그만 책장에 찢어져 난감한 상황이 찾아와도 그건 당신의 사랑이다.

누군가 발로 찬 축구공에 많은 하늘이 쨍하고 깨져버린다 해도,

새로 산 옷에서 상표를 떼어내다가 옷 한 귀퉁이가 찢어져버린다 해도

그럴 리 없겠지만 사랑으로 인해 다 휩쓸려 잃는다 해도 당신 사랑이다.

내 것이라는데, 내가 가질 수 있는 것이라는데

다 걸지 않을 이유가 어디 있겠는가.

 

무엇 때문에 난 사랑하지 못하는가, 하고 함부로 생각하지 마라.

그건 당신이 사랑을 '누구나, 언제나 하는 흔한 것' 가운데 하나라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왜 나는, 잘하는 것 하나 없으면서 사랑조차도 못하는가,

하고 자신을 못마땅해 하지마라.

그건 당신이 사랑을 의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사랑은 흔한 것도 의무도 아닌 바로 당신, 자신이다.

 

사랑해라, 그렇지 않으면 지금까지 잃어온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잃게 될 것이다.

사랑해라, 사랑하고 있을 때만 당신은 비로소 당신이며,

아름다운 유일한 한 사람이다.


출처 : 무량공감
글쓴이 : 꽃별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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