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가 흐르는 상자

[스크랩] 박물지 外 / 윤택수

tlsdkssk 2017. 1. 29. 08:08



 

                                       고른 숨결의 사랑 노래

                                       - 윤택수(1961~2002)


 

                                       당신은 저가 싫다십니다
                                       저가 하는 말이며 짓는 웃음이며
                                       하다못해 낮고 고른 숨결까지도
                                       막무가내 자꾸 싫다십니다
                                       저는 몰래 웁니다
                                       저가 우는 줄 아무도 모릅니다
                                       여기저기 아프고
                                       아픈 자리에
                                       연한 꽃망울이 보풀다가 그쳐도
                                       당신도 그 누구도 여태 모릅니다
                                       머지않아 당신은 시집을 가십니다
                                       축하합니다 저는 여기 있으면서
                                       당신이 쌀 이는 뒤란의 우물가에
                                       보일 듯 말 듯한 허드렛풀 핍니다
                                       마음 시끄러우면 허드렛풀 집니다
                                       저는 당신의 친구입니까
                                       저가 하는 말이며 짓는 웃음이며
                                       하다못해 낮고 고른 숨결까지도
                                       막무가내 자꾸 친구입니까
                                       저는 몰래 웁니다

 

 

 

박물지 4

- 윤택수

 

이것을 먹으라니 이것을 먹고 죽은 뜻이 엎드려 있으라니

입이 심심할 때 한 입 슬쩍 먹어보는 게 아니라

이것을 가지고 연원히 견디라니

난 못 해 난 안 해

세상에 시라소니는 없다 꿀샘 없는 꽃이 없듯이

호랑이는 내버려둬 호랑이가 우리를 내버려두듯이

포수는 협곡과 광야를 지나 북부의 습지에 도착했다

그는 거기에서 벼농사를 짓다가

빙하의 섬으로 건너갔다고도 하고

음유시인으로 죽었다고도 한다

그가 사랑을 잊지 않았다면

사랑의 명령으로 아들을 낳았다면 그 아들이 다시 아들을 낳았다면

그의 자리에는 들꽃 묶음이

 

 

 

 

박물지 7

- 윤택수

 

나는 상황실에서 그와 적의 대화를 받아쓰고 있었다

적이 그에게 물었다 친구는 꿈이 무어냐

그가 느릿느릿 대답했다 나의 꿈은 내 고장의 해변에서

작은 여인과 함께 사는 것이야 친구는 모를지 몰라도

내 고장은 화석과 산협의 단구와 모래톱의 해명을 가지고 있어

읽고 싶은 책을 사게되어 흐믓한 참인데 애잔하게 늙은 아내가

능수조팝나무의 구름을 보러 가자고 할 때까지 산다면

아이들이 백엽상 앞에서 꺾은선그래프를 그리고

나는 울었다 그 꿈이 이루어지리라고

너는 믿느냐

 

 

 

 

    박물지 9

    - 윤택수

 

    무섭도록 책을 읽는 소년이었다는 소문 없이 위인이 된 사람이 있다면 우리는 그 위대함의 질을 의심해 보아야 한다, 강유일

    음악과 나의 의자가 없는 천국은 천국이 아니다, 유종호

    나는 아직 정돈되어 있지 않고 바다는 염분에 젖은 캡슐을 가지고 암초를 공략하며 파도로 원을 그린다, 파블로 네루다

    문을 굳게 걸어 잠그고 금서를 읽는 쾌락을 아는 사람은 안다, 김성탄

    김광규의 아이히 각주 <과자와 맥주>를 네 번째 읽고 있네 <오만과 편견>을 그만큼 읽었던가 <돈키호테>나 <장미의 기적>이라면 한 번 더 볼 용의가 없지 않네 나는 놀고 먹지 않았다 끊임없이 왜 사는지 물었고, 이성복

    나는 원한다 나에게 금지된 것들을, 누구 말이더라 아아 나느 코뿔소다, 김재은

 

 

 

 

박물지 14

- 윤택수

크지 않은, 무르지 않은, 발꿈치와 복숭아뼈도 있는

그렇지 직녀의 발은 꽃이야

어떤 남자에게도 보여주지 않은

다수굿이 오므린

그 발이 나를 밟으면

나는 화상을 입으리니

아주 연한 화상

노예의 낙인 같은 나무의 기억

오늘 밤 나를 사다오

 

 

 

 

새를 쏘러 숲에 들다

- 윤택수

 

구절초 띠풀들을 뿌러 뜨리며 갔다

가슴이 약한 예각의 새가 날아갔다

그는 돌 속에 부주의하게 앉아 있다가

내 이마를 탁 때려주며 솟아오르는 것이다

여기까지 오면서

새똥 한 알 발견하지 못했지

총신에 온기가 쌓인다

먹지도 못할 새라며 내심 언짢아하시는

아버지의 말씀이 쟁쟁해오고

숲의 끝을 돌면서

무슨 놈의 새가 깃 스침이 그리 눅눅한지

집으로 돌아가서 책이나 볼 것이었다

 

혼자서 새를 쏘러 나서면

물소리도 적의에 차고 침엽거수도 쿵쿵 위협한다

구름마저 낮다

말과 개와 집요한 추적으로

이내 더러워진다

오늘은 말을 묶고 개를 저버리고

느릿느릿 숲을 옮아가지만

모두가 새들과 한패다

나뭇가지를 휘는 바람과

망자의 날의 박주가리 솜털도 축축하다

공중으로 총구를 잰다

 

새는 어리고

구우면 고엽같이 뼈째 부스러진다

버려진 농막에 엎드려

총탄을 세고

소매에 튄 피를 털어내면

늦은 불면이 온다

직박구리떼가 쳐놓은 그물이

산오이풀의 어둠 속에서 떨고 있으려니

칼로 가슴을 째어 소금을 넣는다

새의 추억의 발목을 끊는다

아 너무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이었다

 

 

 

 

난 당신 아저씨

- 윤택수

 

오늘부터 난 아저씨야

가벼운 가벼운 여름이야

아저씨는 지나가는 아저씨

웃는 아저씨

난 겨울 한강에 서 있던 아저씨가 아니야

난 고개를 숙이고 웃는 아저씨

작은 목로집에 앉아

담배 피우는 아저씨

아름다운 당신 앞에 앉아 맥주를 마시는

난 당신 아저씨야

당신 애인이 아니라 당신 아저씨

이름 없는 아저씨

모자를 쓰고 마포 삼겹살집에 앉아

이룬 것도 잃을 것도 없는 황혼 아저씨

비 아저씨

빗물 고인아스팔트나 바라보는 아저씨

난 당신 아저씨야

어디서 오는 길이냐고 묻지 마

어디로 가는 길이냐고 묻지 마

난 아저씨가 좋아

끄노 아저씨도 있지

프랑스에서 시를 쓰던

기인 벤치에 누워 하늘을 바라보던 아저씨

인생을 반납한 아저씨

난 당신 아저씨야

그 동안의 먹구름도 천둥도 모조리 한강에

버리고 온 아저씨야

 

 

 

 

- 윤택수

 

나는

이 밤에

깊이 감상에 빠지고

제 감동에 겨워 전전긍긍 살아가는

시인이다.

 

나도 때로는

격시를 쓰고

실망한 사람들이 용기를 얻는

힘찬 시도 쓰고 싶지만

 

적에 의해 가슴에 아픈 못이 박혀

철철 피를 흘려도

개천에 버려져도

나는 장엄하게 죽노라 호언하는

용자도 되고 싶지만

 

이 비 내리는 밤

문을 열고

울음 우는

병신 같은 시인이다

 

개새끼다

나는

 

 

 

 

코스모스

- 윤택수

 

이것은 숫제 감격입니다

백이면 백 천이면 천 날아들다가는

멈춰 서버리는 춤판입니다

어쩌다가 그 속에서 숨이라도 들이켤라치면

잎 진 삼같이 어깨를 들썩이다가

혹은 낮게 낙제 기침하다가

눈썹에 내린 하늘빛이라니 아예 침묵입니다

가만히 들여다보니 아 어디선가

흰 새 새끼들이 날개 치는 소리가 있습니다

여기는 그만 바다입니다

 

 

 

 

시든 꽃

- 윤택수

 

네가 그에게 다가가

처진 가지에 손을 대는 순간

동계를 떨게 하는 열은 향기와

빛이 채염 되는 일방

잘못 슬쩍 치자마자 소리 없이 떨어지는

민간함을 알게 되고

한 사람에게 반한다는 것은

그가 가지는 악습과 병까지도 피하지 않겠다는

일종의 담대함이니

너는 그의 위상을 모르고

그가 서 있는 곳에서

아무런 서성이는 곳에서

아무런 서성이는 자를 발견 못해도

드디어 드디어 겨울이 와

비로소 그의 가지에 손을 얹고

오 흰 눈이로군

지껄여보라

어느 위대한 시대의 명예로운 분전도가

그보다 굳센 소리를 내는가

그의 유물이 콩이라면

너의 오몀된 정맥과

신이 쓰이는 방법으로

노래하라

 

 

 

 

 

출처 : 예향한국
글쓴이 : 목현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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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택수 전집 [새를 쏘러 숲에 들다], [훔친 책 빌린 책 내 책], [벌채상한선] 신간도서 / 아라크네 소식

2016.10.25.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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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택수 전집』(전 3권)


01 - 시집(양장) 새를 쏘러 숲에 들다』


지은이 · 윤택수 판형 · 신국판 변형(129×202)

분야 · 문학 > 시 > 한국 시 발행일 · 2016년 10월 20일

분량 · 208쪽 가격 12,000원 | ISBN 979-11-5774-538-8 04810

메일 · aradione@naver.com | Tel 334-3887(代) Fax 334-2068

| 서울시 마포구 성미산로187 아라크네빌딩 5층(연남동)


02 - 산문집(양장) 『훔친 책 빌린 책 내 책』


지은이 · 윤택수 판형 · 신국판(152*225)

분야 · 문학 > 에세이 > 한국 에세이 발행일 · 2016년 10월 20일

분량 · 296쪽 가격 15,000원 | ISBN 979-11-5774-539-5 04810

메일 · aradione@naver.com | Tel 334-3887(代) Fax 334-2068

| 서울시 마포구 성미산로187 아라크네빌딩 5층(연남동)


03 - 장편소설(양장) 『벌채상한선』


지은이 · 윤택수 판형 · 신국판(152*225)

분야 · 문학 > 소설 > 한국 소설 발행일 · 2016년 10월 20일

분량 · 320쪽 가격 15,000원 | ISBN 979-11-5774-540-1 04810

메일 · aradione@naver.com | Tel 334-3887(代) Fax 334-2068

| 서울시 마포구 성미산로187 아라크네빌딩 5층(연남동)


 




이 책은                                                                                                                                  

 

41세 요절 작가의 감각적인 언어가 묶여

『윤택수 전집』으로 출간되다

 

윤택수.

일반 독자들은 물론이거니와 문단에 발을 걸치고 있는 사람이라도 이 이름은 생소할 것이다. 그는 이른바 ‘등단’이라는 절차를 밟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그는 2002년 9월에 41세로 요절할 때까지 천상 문인으로 살았다.

그가 하숙하는 방에는 바닥에서부터 천장까지 벽을 돌아가며 책들이 쌓여 있었는데, 대부분 초판에서 운명을 다하는 책들이었다. 누군가 그에게 “그런 책들은 뭐하러 사느냐? 읽기는 하느냐?” 하고 물으니 “좋은 책들은 읽지 않더라도 사야 해. 그래야 그 출판사에서 또 좋은 책을 내지”라는 답변을 했다. 그는 월급의 반 이상을 책을 사는 데 썼다. 




시집 한 권, 산문집 한 권, 그리고

13년 만에 발견된 또 다른 장편소설


그는 중학교 국어교사로 첫 사회생활을 시작했으나 몇 년 지나지 않아 사직하고는 용접공, 원양어선 선원, 잡지사와 출판사 편집장, 학원 강사 등 다채로운 직업을 전전했다. 이러한 경험들은 그가 나중에 쓴 글에 그대로 투영된다. 

결혼을 하지 않아 아이도 없이 요절한 그는 다행스럽게도 유고를 남겼다. 그의 유고는 2003년에 시집『새를 쏘러 숲에 들다』와 산문집『훔친 책 빌린 책 내 책』두 권으로 독자들과 만난다. 

그의 유고집을 통해 시를 접한 장석주 시인은 “그 시집을 읽다가 사유의 약동과 상상력의 비범함에 놀랐다”며 감탄했고, 김서령 칼럼니스트는 “나의 희망은 카프카가 되는 것도 아니고 루쉰이 되는 것도 아니고 박경리가 되는 것도 아니다. 그저 윤택수만큼만 쓰고 싶다”고 찬사를 발했다.

그리고 사후 13년 만에, 그의 또 다른 장편소설 유고가 발견되었다. 이에, 앞서 나왔던 시집과 산문집에 새로운 장편소설을 더해 ‘윤택수 전집’으로 다시 발간한다. 




시집은                                                                                                                                  


우리말의 결을 아름답게 수놓은 채

110여 편의 시를 남기고 떠나다

 

마흔을 갓 넘긴 젊은 나이에 우리 곁을 떠나 한 줌 재로 돌아간 시인이 있다. 죽는 날까지 문학과 함께했지만, 문단에 기웃거린 바가 없어 이른바 등단이라는 과정도 거치지 않은 사람. 그럼에도 그는 천생의 시인이었다. 예민한 감수성과 신선한 감각으로 우리말의 결을 아름답게 수놓았다. 그가 남긴 110여 편의 아름다운 시는 그의 독특한 문학성을 유감없이 보여 준다.




고립과 모험으로 가득 찬 시 쓰기

시를 쓴다는 것은 먹을 수 없는 새를 쏘는 기술이다


『새를 쏘러 숲에 들다』는 윤택수의 첫 시집이자 유고 시집이다. 그는 이 시집 속에 들어 있는 110여 편의 시를 통해 독특한 시 세계를 창조해 내고 있다. 그 세계는 현실 속에 지어졌지만 현실과는 아주 다른 세상이다. 겨울이면 눈으로 막혀 고립되는 마을, 울새가 광천 근처에서 지저귀고 야생 딸기와 특이 식물들이 우거지는 그 세계에서 시인은 이상주의자 영웅이다. 그러나 그는 또한 고립된 상태이기도 하다. 따라서 그의 노래는 슬프고 아름다운 동시에 수많은 상징에 둘러싸여 있어 조금은 난해한 경향도 띠고 있다.


구절초 띠풀들을 부러뜨리며 갔다 

가슴이 약한 예각의 새가 날아갔다 

그는 돌 속에 부주의하게 앉아 있다가 

내 이마를 탁 때려 주며 솟아오르는 것이다 

여기까지 오면서 

새똥 한 알 발견하지 못했지 

총신에 온기가 쌓인다 

먹지도 못할 새라며 내심 언짢아하시는 아버지의 말씀이 쟁쟁해 오고 

숲의 끝을 돌면서 

무슨 놈의 새가 깃 스침이 그리 눅눅한지 

집으로 돌아가서 책이나 볼 것이었다

 

                                                                          -「새를 쏘러 숲에 들다」부분


그의 작품 세계는 매우 이국적인 풍물과 소재로 이루어져 있다. 이는 그의 왕성한 지적 호기심과 다양한 독서 체험에 의해 얻어진 것이다. 그는 대학교를 졸업한 이후 타계하기까지 10여 년 동안 중학교 교사, 출판사와 잡지사 편집장, 학원 강사 등의 직업은 물론 인문학도 출신답지 않게 용접공 생활을 하거나 원양어선 어부로 일한 적도 있다. 그는 그렇듯 다양한 삶의 체험에서 우러나온 이야기들을 모더니즘적인 요소와 버무려 훌륭한 시를 빚어내고 있다.


하느님 당신은 용접공이십니다

찢어진 둑들을 때우시고 비인 가슴들을 때워 주소서

우리의 욕심을 태우소서

아멘 청춘들아

아멘 아멘 용접공들아

선생께서는 어디로 가려시는가

명일의 명일 하늘빛 트인 그날이 오면

그해 여름의 울산은

침몰하라 침몰하라 누구라도 공평하게 소리치며

맑은 빛 하나씩의 작은 우산을 펼쳐 쓰고 일하러 갈거나 그럴거나


                                                                                            -「별곡 3」부분


그에게 시를 쓰는 일이란 새를 쏘는 일과 같았다. 그런데 그 새는 ‘먹지도 못할 새’라고 시인은 말하고 있다. 여기서 우리는 한 가지 사실을 유추해 볼 수 있다. 새를 잡는다는 행위는 시인에게 중요한 목표이면서도 세상의 합리적 기준으로는 별 용도가 없는 행위일 수 있다. 마치 별로 돈이 안 되지만 평생 집중해야 하는 목표인 시 쓰기와 마찬가지인 것이다.

시인이 할 수 있는 일이란 말하는 일뿐이다. 그런데 ‘정치에 관한 말, 분배에 관한 말, 절망에 관한 말’을 하면 세상을 지배하는 자들이 그 말에 노한다. 그렇다면 말을 다루는 기술이란 시인의 말대로 ‘먹을 수 없는 새를 쏘는 기술’이나 마찬가지인 것이다. 여기에 시인의 딜레마가 있다.


말을 다루는 기술은 먹을 수 없는 새를 쏘는 기술이다

나는 말과 침묵을 버무린다

나는 불안하고 가냘픈 것들을 노래한다

일에 지친 자와 일이 없어 지루한 자에게 질문한다

나는 입을 다문다

                                                          -「재난과 기아」부분


그렇다면 그는 무엇 때문에 시를 쓴 것일까. 시의 존재 의미는 생명이 짧고 아름다운 것들, 약하고 불안정한 것들에 대한 애정을 우리에게 다시 한 번 불러일으키는 데에 있기 때문이다. 그가 이 삭막하고 복잡한 세상에 태어나 조용하고 겸손하게 살면서 가냘프고 불안정한 것들에 대해 110여 편의 시를 남기고 갔다는 것은 그러한 의미를 갖는 것이다.





추천사                                                                                                                                    


혈연이나 학연으로 이어진 이들을 뺀다면 시인 윤택수를 아는 사람은 드물 테다. 그는 중학교 국어 교사, 용접공, 원양어선 선원 등을 전전하며 시 110편을 쓰고 41세에 요절한다. 죽은 뒤 벗들이『새를 쏘러 숲에 들다』라는 유고 시집을 펴냈는데, 그 시집을 읽다가 사유의 약동과 상상력의 비범함에 놀랐다.

장석주(시인)


그는 천생의 시인이었다. 예민한 감수성과 신선한 감각으로 우리말의 결을 아름답게 수놓은 시인.... 그는 기성의 어느 시인과도 닮지 않은 그만의 독특한 언어 표현과 감수성으로 완강하고 고집스러운 세계를 보여 준다. 

윤형근(시인)


시인은 110여 편의 작품을 통해 독특한 시 세계를 창조해 내었다. 그 세계는 현실 속에 지어졌지만 현실과는 아주 다른 세상이다. 겨울이면 눈으로 막혀 고립되는 마을, 울새가 광천 근처에서 지저귀고 야생 딸기와 특이 식물들이 우거지는 세계.... 그의 노래는 슬프고 아름답다.

양애경(시인·문학평론가)





산문집은                                                                                                                               


40여 년을 살다 홀연 세상을

떠난 이가 남긴 아름다운 산문집

 

“나의 희망은 카프카가 되는 것도 아니고 루쉰이 되는 것도 아니고 박경리가 되는 것도 아니다. 그저 윤택수만큼만 쓰고 싶다. 아니 어쩌면 윤택수가 카프카보다 더 진지하고 자기 완성적인 글을 썼다고 나는 생각한다.”


- 김서령(칼럼니스트)


『훔친 책 빌린 책 내 책』은 고독하고 아름답게 40여 년을 살다 간 윤택수 작가의 유고 산문집이다. 우리말에 대한 애정으로 가득 찬 그의 글을 읽다 보면 어느 순간 눈앞이 밝아오는 느낌이 든다.


청미래덩굴. 새미래에서는 명과나무라고 했다. 새미래에는 ‘빨갛고 동그란 게 뭔가?’라는 수수께끼가 있었다. ‘뭔가’를 ‘멍가’라고 발음했다. ‘빨갛고 동그란 게 멍가?’ ㅝ가 ㅓ로 변하는 것은 단모음화이고 ㄴ이 ㅇ으로 변하는 것은 자음동화이니, 수수께끼로서의 모호성에도 완연하게 부합하지 않는가. ‘빨갛고 동그란 게 멍가?’ 그러면 우리는 입술을 빨갛고 동그랗게 만들어서 대답하곤 했다. 명과, 명과, 명과라고. 이 음성률音聲律이 주는 쾌감 때문에도 우리는 잊을 만하면 시침을 떼고서 묻곤 했다. ‘빨갛고 동그란 게 멍가? 빨갛고 동그란 게 멍가?’

― 「꽃들, 나무들」중에서




고향 마을에 얽힌 이야기들, 그리고 글을 쓴다는 것


1부「박물지」에 실린 글들은 지은이의 고향 마을에 얽힌 이야기들이다. 유년 시절의 친구들과 가족, 마을 사람들을 현대로 다시 불러내어 잔잔한 감동을 얽어 놓는다. 글 속에는 갖가지 고유 식물과 옛 이야기들이 들어 있어 우리 것에 대한 지은이의 애정을 볼 수가 있다. 또한 지은이는 이 글들을 통해 잃어버린 고향 마을에 대한 향수를 일으키는 것과 동시에 글을 쓴다는 것은 무엇인가에 대한 잔잔한 물음과 대답을 들려준다.


감자의 둥긂, 쟁기의 버팀과 휨, 헛간의 으스름. 나는 그러한 산문을 쓰려고 한다. 감자와 쟁기와 헛간은 두런두런 지껄인다. 욕심 부리지 말라는 것이다. 나는 광고 카피, 삐라 문구, 정신분석의 열쇠어 들보다 더 자재적自在的인 산문을 쓰려고 한다. 그들은 또 두런거린다. … 내 마음을 잘 아는 감자와 쟁기와 헛간은 한 마을에 있다.

― 「산문」중에서





책에 얽힌 이야기들


2부「훔친 책 빌린 책 내 책」은 책에 얽힌 이야기들이다. 지은이는 다채로운 생활을 하며 체험한 일들과 다방면의 독서를 통해 얻은 이야기들을 얽어 산문 문학의 진수를 보여 준다. 세상을 넓고 깊게 살려 했던 한 인문주의자의 일면을 엿볼 수 있는 글들이다. 몇몇의 글에서는 번역가와 작가들에 대한 분석도 들어 있는데, 지은이의 독서 편력을 볼 수 있는 글이라는 점에서 흥미가 진진하다.


한스 에리히 노사크의 예지는 존중할 만하다. 그의 ‘장서 정리법’은 끊임없는 스밈과 짜임의 손길을 거친 정신의 나무이다. 그 흥성거리는 나무의 우듬지를 보며, 10년 후를 생각한다. 봄이 오면 담장에 사위질빵을 붙여 심으리라. 어린순을 따서 아내에게 무쳐 달라고 하면 아내는 웃으리라. 10년 후엔 부전고원으로 식물채집 하러 가리라. 그때쯤이면 아내는 늙으리라. 아내는 바느질을 한다. 그 모습이 그림 같다. 

― 「정오표·겨울 서재·마침표」중에서





추천사                                                                                                                                    



그는 늘 실한 산문을 쓰고 싶어 했다. 주어와 서술어가 따뜻하게 마주 보고 있는 산문, 비유와 윤색과 전고가 자제되어 있는 산문, 무심한 돌처럼 놓였어도 우뚝하고 우묵하여 우르릉우르릉 울리는 산문, 산문이란 이래야 한다는 모델을, 그 도달점을 윤택수에게 배운다. 나의 희망은 카프카가 되는 것도 아니고 루쉰이 되는 것도 아니고 박경리가 되는 것도 아니다. 그저 윤택수만큼만 쓰고 싶다. 아니 어쩌면 윤택수가 카프카보다 더 진지하고 자기 완성적인 글을 썼다고 나는 생각한다.

김서령(칼럼니스트)





장편소설은                                                                                                                           


이전 어디에도 없던 소설, 『벌채상한선』

윤택수의 유고가 새로 발견되었다

 

윤택수 작가는 세상을 떠난 후에야 시집『새를 쏘러 숲에 들다』와 산문집『훔친 책 빌린 책 내 책』을 갖게 됐다. 그리고 이번에 새로운 유고가 발견되었다.『벌채상한선伐採上限線』. 장편 소설이다.


작가가 한 번도 한 번도 가 보지 않았다는 평해平海라는 바닷가 마을을 배경으로, 이기수라는 열일곱 살 소년이 책을 읽고 밥을 먹고 자전거를 타고 편지를 쓰면서 살아 움직이는 이야기다.




불온한 문장이 향연을 벌이다


윤택수 작가는 어느 여름 마포도서관 아현분관 제2열람실 112번 자리에서『벌채상한선』을 썼다. 편의상 장편소설이라고 하지만, 실상 이것은 장르를 구분할 수 없는 글이다. 아니 장르를 구분할 필요가 없는 글이다. 


“문장 사이에서 노루새끼 같은 눈동자가 튀어나오기도 하고, 어깨에 피가 흐르는 소년 하나가 묵묵히 서 있기도 한다. 또한 여러 인물이 등장하고, 여러 사건이 생기지만 사건들끼리 복잡하게 얽히거나 갈등을 만들어 내지도 않는다. 그러면서 각 인물과 사건에서 저자 고유의 빛과 향이 흘러온다”(김서령 칼럼니스트). 한마디로 소설의 정석을 따르지 않는 불온한 문장들이 향연을 벌이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단어 하나하나가 음표이다. 이전 어디에도 없던 악보이다. 단단한 명사와 동사, 달콤한 부사와 형용사, 쓰디쓴 조사들이 두드리고 긁었다. 내게 이 글은 통째로 시였다”(김서령 칼럼니스트)는 평가가 이『벌채상한선』을 가장 잘 정확하게 표현한 것일 게다.




탐미의 극에 이른 작가, 윤택수의 감각적 소설


‘열일곱 살 잘나가는 청춘 이기수’는 후포고등학교 1학년 학생으로, 검도부 활동을 하고 있으며 검도부 선배 재국을 좋아하는데 현숙희와 이채군 커플의 아들이고 신순임과 이록 부부의 손자이다. 이기수의 친구들인 웅희와 희일과 은서가 각기 한 장씩을 차지하고, 김상기와 황재국과 ‘원추리’에게도 따로 한 장씩이 배당되니 후포고등학교 학생들이 소설의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 거기다 현숙희의 여동생(기수의 이모)인 약사 현승희, 기수의 학원 국어선생이자 나중에 이모부가 되는 성진식, 둘의 맞선 장면, 혼례 장면, 현숙희의 큰 동서(기수의 큰엄마)인 숙희, 희일의 삼촌인 농부 중해, 기수의 조부 이록의 문집인 눌이재집, 온천에 머물던 조모 신순임, 엄마 현숙희가 경영하는 구름빵집, 현숙희를 좋아하는 교사 이성구에게 각기 한 장씩이 배당돼 소설의 몸이 이뤄진다.

각기 따로 놀던 이 소설의 등장인물들은 맨 나중 현성희와 성진식이 혼례를 치르는 날 한자리에 모인다. 그리고 함께 후포 성당 마당에서 국수를 나눠 먹는다.


윤택수 작가는 관습에 얽매이지 않으면서 아들을 낳아 기르고 싶었던 자신의 삶의 방식을 이기수를 통해 보여 주었다. 그리고『벌채상한선』의 각 문장을 통해 예민함의 극한, 탐미의 깊이, 우리말의 음영과 떨림을 탁월하게 포착해 냈다. 

그래서 이 글을 읽는 독자들은 윤택수의 글로 인해 “주변을 둘러싼 식물과 동물과 사물들의 호흡이 펄럭펄럭 들려”올 것이고, “글의 행간에서 상처 입은 들짐승의 눈동자 같은 것을” 볼 것이며, “깨끗하고 반듯한 소년의 뒤태를 보면 반사적으로 가슴이 쓰라”릴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 “우리들 무딘 감수성을 살려 내고 만물을 애틋하게 정화하고 가만가만 생명을 불어넣”게 될 것이다.




추천사                                                                                                                                    



분량이 길지 않았지만 어느 여름 윤택수가 마포도서관 아현분관 제2열람실 112번 자리에서 썼다는 그 소설을 나는 한꺼번에 읽어 치울 수가 없었다. 읽다가 멈추고 처음으로 되돌아가서 다시 읽곤 했다. 이게 소설이라고? 아니 이것은 장르를 구분할 수 없는 글이었다. 장르를 구분할 필요가 없는 글이었다. 문장 사이에서 노루새끼 같은 눈동자가 튀어나오기도 했고 어깨에 피가 흐르는 소년 하나가 묵묵히 서 있기도 했으니 내게 이 글은 통째로 시였다.


김서령(칼럼니스트)



지은이                                                                                                                                     


윤택수

1961년 대전에서 태어나 충남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했다. 충남 홍성의 홍주중학교에서 국어 교사로 근무했으며, 서울에서 몇몇 잡지사와 출판사 편집장을 역임했다. 또한 울산에서 용접공으로도 일했고, 원양어선 선원이 되어 바다로 나가는 등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다. 2000년 8월 학원에서 강의 중 뇌졸중으로 쓰러져 2년간 투병 생활을 했다. 그리고 2002년 9월, 어딘지 알 수 없는 곳으로 마지막 여행을 떠났다. 저서로는 시집『새를 쏘러 숲에 들다』와 산문집『훔친 책 빌린 책 내 책』, 장편소설『벌채상한선』이 있다.



 


새를 쏘러 숲에 들다

작가
윤택수
출판
디오네
발매
2016.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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훔친 책 빌린 책 내 책

작가
윤택수
출판
디오네
발매
2016.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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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채상한선

작가
윤택수
출판
디오네
발매
2016.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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