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찾아온다.... 채호기
비가 찾아온다
기억을 더듬듯
윗닢에서 아랫닢으로
잎에서 잎으로 튀어 오른다
돌을 디뎌 스며들다가
한 겹 돌의 피부가 될 때까지
비는 구석구석 찾아든다
빗방울 주렴에 굴절되는 산
가슴 안으로 울새 한 마리 재빨리 스며들고
도로 아스팔트 위에
텅 빈 소로 흙 위에
비의 발자국
옥수수 잎, 감자 잎, 상추 잎, 완두콩 잎
위에도 빠짐없이
비의 발자국.
농가 뒤꼍 주인 없는 수돗가
비어 있는 고무 다라이 안에 모여들고,
막혀서 고인 한적한 수로
죽어 있는 검은 물 표면을 소란스럽게 하고,
죽어 있는 검은 날들을 들쑤시며 깨운다.
기억을 소생시키듯
비가 찾아온다.
수면 위에 빛들이 미끄러진다...채호기
수면 위에 빛들이 미끄러진다
사랑의 피부에 미끄러지는 사랑의 말들처럼
수련꽃 무더기 사이로
수많은 물고기들의 비늘처럼 요동치는
수없이 미끄러지는 햇빛들
어떤 애절한 심정이
저렇듯 반짝이며 미끄러지기만 할까?
영원히 만나지 않을 듯
물과 빛은 서로를 섞지 않는데,
푸른 물 위에 수련은 섬광처럼 희다
채호기
1957년 대구 출생. 1988년 《창작과비평》으로 등단.
시집 『지독한 사랑』『슬픈 게이』『밤의 공중전화』『수련』 등.
SAT.16.JULY.2016 정효(JACE)
FOEM:비가 찾아온다.... 채호기
MUSIC :Moldova (Rain Ver)
#Pray For ni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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