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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석부근

tlsdkssk 2016. 5. 11. 0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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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을 걷다] 황석영 단편소설 <입석 부근>의 암벽등반지를 찾아서주봉은 말없이 서 있는데, 소년들은 모두 어디로 갔을까?
민은주 | 승인2015.11.13 10:58
도봉산 주능선에서 살짝 벗어난 곳에 위치한 단독봉우리인 주봉, 60년대를 대표하는 암벽등반지이나 시대에 흐름에 밀려 현재는 등반하는 사람이 거의 없다. 사진=신희수기자

황석영의 데뷔작 <입석 부근>은 독재 치하에 좌절한 청년들이 열망의 대상이자 고통의 근원인 암벽을 등반하며 정신적인 공백과 고립감을 극복하는 과정을 다룬다. 경복고등학교 산악부 출신답게 클라이밍에 대한 묘사가 매우 역동적이고 생생하여 전문암벽등반을 본격적으로 다룬 첫 국내소설로도 알려져 있다. 정확한 등반지명은 나오지 않지만 소설 내에서 묘사된 정경을 보아 도봉산 주봉이 배경이라는 추측이 가능하다.

주봉은 도봉산 주릉 남쪽에 위치한 50m 내외의 아담한 단독 봉우리로 첨예한 크랙과 혹독한 침니가 악명 높은, 60년대 고난이도 암벽등반의 상징 같은 장소였다. 자유등반으로 클라이밍의 흐름이 바뀌면서 지금은 찾는 이가 많이 줄었지만 황석영이 까까머리 고등학생이었던 1962년에는 가장 뜨겁고도 매운 봉우리였을 것이다. 물리적 크기보다 더 거대했던 바위, 소년들이 모두 로프를 풀고 떠나버린 지금도 변함없이 거기 서 있는 ‘주봉’을 올려다본다.

주봉 K크랙 1피치를 시작하고 있다. 사진=신희수기자

‘돌은 모두의 출발점’

열여덟 소년이 쓴 단편소설의 서두다. 꽃도 눈물도 투쟁도 모두 내일을 위해서라며 ‘그날, 아마 우리들은 함께 출발할 것이다’라고 적어놓았다. 등반가의 생생한 언어로 산의 정신적 영역을 질문하는 짧은 소설 <입석 부근>은 고등학교를 자퇴하고 남도를 방랑하던 어느 가출청소년을 등단시켜 대뜸 소설가로 만들었다. 이후 월남, 한국전쟁, 베트남전, 방북, 투옥 등 한국 현대사를 정면으로 뚫고나가며 가장 진보적이고 날선 작가로 활동해온 그의 이름은 황석영. 첫 소설 <입석 부근>에서 주인공 소년은 까마득한 절벽에 매달려 미욱스레 ‘나만의 세계’를 만들어내기 위해 싸운다. 바위를 오를 때처럼 문장에도 목숨을 걸었을까? 평생 그의 소설은 허공을 헤치는 등반가의 손처럼 절실하고 치열했다.

 

지금은 내가 나만의 세계를 만들기 위하여 싸우고 있는 시간이다. 눈에 보이는 세계가 아닌, 가슴 깊숙한 곳 어디선가 들려오는 내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시간인 것이다.

 

K크랙은 과거 4피치로 나눠 등반했으나 현재는 2피치로 등반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테라스 뒤로 광활하게 펼쳐지는 서울의 풍경. 사진=신희수기자

입석 부근이 이쯤일까. 주봉까지 가는 길이 만만치 않다. 도봉탐방지원센터에서 마당바위을 지나 관음암 못 미쳐 경사가 급한 오르막을 치고 오른다. 멀리서는 도도하게 도드라지던 입석이 가까이 갈수록 좀처럼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바람도 없는 평평한 아침, 1시간 30분이 넘어선 어프로치에 일행의 숨소리가 가쁘다. 결국 등산로를 돌아 주능선에서 살짝 빗겨선 주봉을 만난다. 서쪽의 오봉, 남쪽의 우이암, 동북으로는 선인봉, 만장봉, 자운봉에 든든하게 감싸여 수풀 사이에 우뚝 솟아난 봉우리. 작달막하고 당찬 생김새에 쭉 찢어진 크랙이 험상궂다.

“비비고 올라가는 거 좋아해요!”

K크랙을 등반 중인 우석주씨. 사진=신희수 기자

우석주(강원대학교 산악부YB)의 목소리가 밝다. 사실 이번 주봉 취재는 함께 등반할 사람을 찾기가 어려웠다. 소설 속 주인공은 18살, 또래의 모델을 구하고 싶었으나 고등학교 산악부도 별로 없는 요즘 직접 확보물을 치며 크랙과 침니를 오르는 전통등반을 나설 학생은 흔하지 않았다. 결국 강원대학교 재학생이자 산악부 YB인 우석주씨와 등반에 집중하고자 현재 ‘즐거운 실직상태(funemployed)’인 전미현씨를 섭외하게 되었다. 최근 말레이시아 등반여행으로 호흡을 맞춘 이들은 낯선 등반지를 찾아나서는 모험에 기꺼이 참여해줬고, 우석주씨는 기말고사기간에 시험공부도 포기하고 주봉 등반에 함께하며 열렬한 관심을 보여줬다.

일행은 모두 주봉등반이 처음이다. “소설 속의 루트가 어디냐?”는 질문에 우물쭈물한다. 사실 ‘입석 부근’의 바윗길을 딱 하나를 지정할 수 없다. 루트뿐만 아니라 봉우리 역시 마찬가지다. 서울의 불빛이 보이는 근교산, T자형 굴뚝 침니 등의 묘사로 주봉이 연상될 뿐, 현실의 어느 봉우리 하나만을 지정해 소설의 배경으로 삼았을 가능성은 낮다. 실제로 소설 후반부의 물때 낀 슬랩은 주봉에서 찾기 어려운 등반구간이다. 다만 서울 인근이며 인수봉이나 선인봉보다는 규모가 작고 멀티피치가 가능한 독립봉이자 60년대 가장 전위적인 등반지인 주봉이 소설배경에 영향을 미쳤으리라 예상해볼 뿐이다. 어차피 ‘입석 부근’의 정확한 등반선을 알 수 없으니 “가고 싶은 길을 찾아가라”고만 주문한다. 소설 속의 주인공 역시 입석에 새로운 길을 개척하며 초등 중이다.

테라스에서 K크랙 2피치로 진입하는 구간은 중간확보물이 없어 주의를 요한다. 사진=신희수 기자

 

싸늘한 바위를 긁어쥐고 끝없이 싸우던 밤이었다. 우리들은 동이 틀 때까지 바위 위에서 어둠과 피로에 대항했었다. 그 보수로 조난 직전의 우리들은 바윗길을 만든 것이다.

 

주봉을 한 바퀴 둘러본 클라이머들이 다 같이 K크랙을 가리킨다. 11m 정도의 깨끗하게 찢어진 침니성 크랙이 인상적인, 주봉의 얼굴마담과도 같은 루트다. 노적봉의 T침니, 선인봉의 남측길과 더불어 60년대에 손에 꼽던 난코스 중 하나였으며, 하켄이나 볼트가 낡아 등반이 저어되는 주봉에서 요즘도 간간히 등반가들이 찾는 루트기도 하다.

서면의 안부에서 무난한 쌍크랙을 따라 6m 남짓을 오르면 반짝반짝 빛나는 새 앵커가 나타난다. 주봉에서 찾기 힘든 믿을만한 고정확보물이지만 지상과의 거리가 워낙 가깝다보니 큰 의미는 없다. 소나무 위의 평탄한 테라스까지 한 번에 올라간다. 대여섯 명은 편안하게 쉴 수 있는 좋은 테라스지만 앵커는 없다. 좌측의 턱을 넘어서면 K크랙 하단에 바로 진입하게 되지만 추락 시 확보자와의 거리가 먼 것이 부담스러워 테라스의 핑거크랙에 캐밍장비를 설치해 앵커를 구축한다. 악우회가 1979년에 발행한 <한국의 암장>의 K크랙 개념도를 보면 30m 남짓의 짧은 코스를 4피치로 나눠 등반했음을 알 수 있다. 그만큼 과격하고 위험한 등반이었다는 뜻이다.

K크랙은 레이백도 가능하나 왼발과 왼손을 크랙에 넣고 재밍 및 암바로 올라가는 것이 일반적이다.사진=신희수 기자

K크랙은 두세 명이 설 수 있는 테라스에서 얇은 크랙으로 시작해 어깨와 발이 들어가는 반침니로 이어진다. 캐밍장비가 없던 시절엔 추락 시 큰 사고로 이어지는 위험한 구간이었고 확보물을 치고 오르는 지금도 여전히 만만치 않은 구간이다. 우석주씨가 하단은 스테밍으로, 중단부터는 왼팔과 왼발을 크랙에 넣고 재밍과 암바로 돌파한다. 가지고 온 캐머롯 3~4호 2개와 5, 6호를 크랙에 모두 설치해 하네스가 가뿐하다. 깔끔하게 자유등반에 성공한 그가 평평한 정상에서 숨을 몰아쉰다. 75년 전 처음 사람의 손이 닿았던 K크랙은 여전히 야수처럼 사나운 이빨을 가진 길이다. 심지어 지금처럼 최신 암벽화와 유능한 캐밍장비가 없었던 시절에는 말 그대로 삶과 죽음 사이에 갈라진 크랙이었을 것이다.

 

안락한 때에 위험스럽던 날의 기억을 불러일으킨다면 진지하고 충실하게 살아갈 수가 있을 것이다. 남의 피값으로 살고 있다는 것은, 또 우리가 그런 행위들을 자기의 안락을 위해서 은근히 기대하고 있다는 것은 얼마나 참지 못할 일인가.

 

주봉 정상에서 서면안부까지는 60m 로프 한 동으로 하강이 가능하다. 사진=신희수 기자

<입석 부근>의 흥미로운 점은 60년대 고등학교 산악부원들의 장비와 등반방식이 생생하게 묘사된다는 것이다. 로크해머, 피톤, 하켄, 셰미륙, “앵커 바짝”이라는 에코도 낯설고 재미있다. 무엇보다도 당시 등반에 임하든 18살 소년들의 태도가 매우 인상적이다. 소설 속에는 바윗길을 개척하다가 죽어간 친구들에 대한 설명이 있다. 제삼피치를 개척하다가 거꾸로 박힌 친구, 트래버스 횡단 중에 떨어져 암벽 위에 안면을 벗겨져 죽은 친구, 눈사태에 깔려 죽고 얼어 죽은 친구들, 암벽등반이 일종의 주말 레저스포츠가 되어버린 오늘날에는 과장과 허세처럼 느껴지는 대목이다.

주봉 정상의 우석주, 전미현씨. 사진=신희수 기자

그러나 대한민국에서 최초로 암벽등반사고로 인한 사망자가 나온 곳이 바로 주봉이며 사망자는 당시 고등학생이었다. 1939년 양정고 노정환은 주봉의 전면침니코스를 프리솔로로 오르다가 추락하여 사망한 것이다. 이후에도 고교산악부는 활발한 활동을 이어갔으며 장비와 경험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상태에서 열정이 앞서 각종 자주적 조난에 마주치게 되었다. 당시의 사고사례를 보면 1954년 만장봉에서 경기고 산악부원 진해웅이 조난사한 이후 1958년 양정고의 최모군이 백운대에서 추락사, 1959년에는 경기고 임문웅이 확보 중에 추락사하는 등 고등학교 산악부원들의 사망사고가 적지 않았다. 특히 임문웅의 경우는 바로 주봉 K크랙에서 일어난 사고로 카라비너도 없이 직접 확보를 보다가 선등자의 추락으로 끌려 내려가 사망한 것이다. 소설처럼 모든 고등학생 클라이머가 줄줄이 죽어나가지는 않았더라도 이들에게 ‘죽음’은 등반에 있어서 감당해야할 일부분이었다. 그들은 정말 흰 광목 위로 죽은 친구의 헐벗은 발가락을 내려보다가 “다음 토요일엔 북벽을 해치워야해, 늦지 말어!”라고 인사하며 헤어졌을 지도 모른다.

 

우리의 작업은 모험이 아니며, 산과 나를 합쳐지게 하려는 사랑에서 비롯되어야 한다. 사람들은 내려다보기 위해서 위로 오르는 법이다. 우리들의 목적은 오르는 과정뿐이며, 도달했을 때엔 출발점에 되돌아가고 싶어지는 것이었다.

 

K크랙을 오르는 전미현씨. 후등이거나 근력이 좋은 경우는 레이백으로 등반할 수도 있다. 사진=신희수 기자

K크랙은 짧다. 2인 1조로 나눠 한 팀에 1시간이 채 걸리지 않는다. 다른 루트를 골라본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T오버행이라 불리는 천정코스이지만 하켄과 볼트가 너무 노후하여 엄두가 나지 않는다. 등반의 흔적이 거의 없는 북면에서 K크랙 좌측의 핑거크랙으로 시작해 페이스를 트레버스하여 변형천장길 크랙을 오르는 라인을 긋는다. 개념도를 찾아보니 서북면하켄길이다. 하켄길이라고 하기에는 믿을만한 확보물이 보이지 않지만 크랙에 캐밍장비를 설치하며 등반할 수 있을 것 같아 일단 붙어보기로 한다.

서북면하켄길을 등반하는 이정훈씨. 사진=신희수 기자

서북면하켄길은 이정훈(소심산악회)씨 스윙으로 등반하기로 하고 기자가 먼저 1피치를 오른다. 오랫동안 방치되어 거미줄과 흙이 가득한 핑거크랙을 따라 5m 정도를 전진한 후 오버행에서 우측 K크랙으로 돌았다가 다시 크랙에 진입한다. 쭉 이어지는 크랙을 14m쯤 오르니 새 볼트 하나가 반짝반짝 빛난다. 2피치는 반들반들한 페이스를 트레버스하는 동작으로 시작한다. 링볼트와 노후한 스테인리스 볼트가 하나씩 있으나 둘 다 전혀 믿음이 가지 않는다. 이정훈씨가 신중하게 페이스를 넘어 핸드크랙에 붙는다. 까다로운 크랙에 볼트나 하켄은 역시 믿을 수가 없지만 다행히 캐밍 설치가 가능하다. 1, 2피치 모두 체감난이도는 5.10급 정도이다. 이후 완만하지만 이끼가 시퍼렇게 돋아난 3피치를 오르면 다시 주봉 정상이다. 낮지만 오르기 힘들고, 위험하지만 개운한 장소다.

인공등반이 유행하던 60년대 이후 주봉을 찾는 클라이머들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 사진=신희수 기자

피톤에 로프를 넣고 하강을 준비하는 도중 조용하던 하늘이 요란한 헬기소리에 덮인다. 헬기는 선인봉 방향으로 날아가고 수풀은 마구 뒤엉켜 부자연스럽게 흔들린다. 누군가 이 산에서 몸을 다친 모양이다. 아무리 안전한 취미생활이라고 떠들어도 등반은 여전히 피를 흘리고 생명을 떨어뜨릴 각오를 필요로 한다. 주봉은 여기 그대로 서 있건만 이 바위를 찾는 소년들이 어디론가 사라진 이유도 그 각오가 낡아 헤졌기 때문일까. <입석 부근>은 이렇게 끝난다. 내 마음 속에서는 어둠 가운데 우뚝 서 있는 또 하나의 거대한 바위가 생겨나고 있었다.

 

Information

도봉산 주봉

주봉(柱峰)은 도봉산 포대 능선을 따라 우이동 쪽으로 내려 가다보면 도봉동 방향으로 우뚝 솟아있는 기둥 바위이다. 바위의 생김새가 마치 기둥처럼 독립된 봉우리로 우뚝 서 있다는 데서 명칭이 유래하였다. 기둥 바위라고도 불린다. 절리면이 잘 발달한 수직 암봉으로 거대한 바위 여러 개가 포개져 있다.

1929년 5월, 임무와 이이야마 다쓰오가 전면침니코스로 주봉을 처음 올랐고 서남면의 삼단벽 역시 이들이 1934년 초등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남면의 빌라길은 빌라산악회가 1973년 초등했으며 60년대 인기 있던 인공등반루트인 천장코스는 초등기록이 남아있지 않다. 천장길 2번째 피치에서 오른쪽 크랙을 오르는 변형천장길은 1963년 한양대산악부가 개척했고 K크랙 좌측에서 시작해 변형천장길 크랙을 오르는 서북면하켄길의 초등자는 알려져 있지 않다. K크랙은 1940년 10월 백령회 회원이었던 양두철, 주형렬, 엄흥섭씨가 초등했다. 주봉에 대한 자료로는 1979년 악우회가 발행한 <한국의 암장>에 실린 개념도가 있다.

 

소설가 황석영

본명은 황수영. 1943년 만주에서 태어나 한국 전쟁으로 피난지를 전전하며 자란 그는 경복고등학교 산악부원으로 활동하며 등반에 빠져들었다. 4·19 혁명 당시 친구 안종길이 경찰의 의해 사망하자 유고 시집을 발간했고 끝내 학교를 자퇴하고 가출생활을 하다가 1962년 <입석 부근>이 사상계의 신인문학상을 수상하며 등단하게 된다. 검정고시로 동국대 철학과를 입학한 이후 한일회담반대시위에 참여했다가 경찰서 유치장에서 만난 일용직 노동자를 따라 전국의 공사판을 떠돈다. 다양한 직업을 섭렵한 이후 해병대에 입대, 베트남전에 참전했으며 이 체험을 바탕으로 한 단편소설 '탑'이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어 본격적인 소설가의 길을 걷게 된다.

<객지>, <한씨연대기>, <삼포 가는 길> 등을 발표하며 한국 근현대사에 밀접한 리얼리즘 문학을 꽃피웠다. 1974년부터 1984년까지 한국일보에 연재한 대하소설 <장길산>은 한국 민중의 저항사라 불리며 오랫동안 사랑받고 있다.

1989년 조선문학예술총동맹'의 초청으로 방북 후 독일 미국 등지에서 체류했으며 북한 방문기 <사람이 살고 있었네>를 신동아와 창작과 비평에 게재했다. 1993년 귀국하여 방북사건으로 5년여를 복역하고 1998년 석방되었다. 이후 장편 <오래된 정원>, <손님>, <심청, 연꽃의 길>, <바리데기>, <개밥바라기별>, <여울목 소리> 등을 발표했다. '무기의 그늘'로 만해문학상을, '오래된 정원'으로 단재상과 이산문학상을, '손님'으로 대산문학상을 수상했다. 중국, 일본, 대만, 프랑스, 미국 등지에서 '장길산', '오래된 정원', '객지', '무기의 그늘', '한씨연대기', '삼포 가는 길' 등이 번역 출간되었다.

 

입석 부근

1962년 사상계 신인문학상 수상작. 네 명의 고등학생으로 구성된 ‘메아리’라는 산악조직이 정상에 조난당한 ‘개미 클럽’을 구조하기 위해 신루트를 개척하는 과정을 그렸다. 등반 중의 상념과 과거 자일파트너와의 등반 및 사고 등이 중첩하는 구조로 주인공 고립감과 방황, 가출, 등반을 통한 자아성찰 등을 다룬다. 또한 주인공의 좌절과 방황의 이유로는 짧은 문장으로 묘사된 4.19의 비극이 있다. ‘기관총 소리, 벚꽃의 흩날림, 검은 교복 위에 흠씬 젖어 흐르던 피, 환희의 거리, 밀려오고 밀려오는 시민들’이라는 표현과 실제 4.19 혁명에서 친구 안종길을 잃고 그 유고시집을 발간했던 작가의 경험을 떠올리면 <입석 부근>에서의 반항적인 소년들이 시대의 고통을 짊어지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황석영은 경복고 산악회 시절 주봉과 우이암 등에서 등반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입석 부근>을 저술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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