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

신 노년을 위하여

tlsdkssk 2016. 2. 15. 1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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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 전문가 고광애의 인류 첫 장수 세대를 위한 新 노년 처세법

현시대를 살고 있는 노인들은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래 산 첫 장수 세대로 기록될 것이다. 그렇다면 이전 세대들과는 다른 방식으로 살아야 하는 건 아닐까. 오늘을 사는 노인들에게 꼭 필요한 솔직하고 현실적인 노년의 삶에 대해 들어봤다.

이 시대 부모 세대만 아는 이야기
우리 사회에서 노인 이야기가 가장 많이 거론되는 곳은 아마도 뉴스일 것이다. 그나마도 노년 빈곤층의 심각성을 말하거나 우리나라가 빠른 속도로 고령화 사회에 진입하는 것을 우려하는 목소리뿐이다. 노인에 대한 현실적인 접근은 부족한 실정. 영화 ‘하녀’, ‘돈의 맛’ 등을 연출한 임상수 감독의 어머니이자 노인 전문가로 활동하고 있는 고광애씨(78)가 펴낸 책은 단번에 눈길을 사로잡는다. 「나이 드는 데도 예의가 필요하다」라는 다소 도전적인 제목으로 우리 사회에서 노인으로 살아간다는 것에 대한 화두를 던졌다.

“2009년 말부터 매달 써오던 칼럼을 엮은 책이에요. 그동안 이곳저곳에 글을 썼는데, 영 반응이 신통찮았거든요(웃음). 근데 이 칼럼은 심심치 않게 반응이 들어오는 거예요. 제과점에서 만난 노부인부터 60년 전 은사까지 ‘어떻게 내 맘하고 그리 똑같으냐’라면서 말이죠. 이제 노인의 ‘진짜 문제’를 논의할 때라는 걸 직감했죠.”

고광애씨의 글은 노인 문제를 뉴스로만 접하는 젊은 세대들에겐 신선한 충격을 줬다. 요즘 젊은 것들은 버르장머리가 없다고 잔소리를 한다거나 노인으로서 얼마나 살기 힘든 세상인지 토로하는 내용으로 가득 찼을 거라는 예상이 보기 좋게 빗나갔다. 대신 70대 여성으로서 느끼는 솔직한 감정들을 담았다. 아직 여성적인 미모와 감성을 지니고 있는 60대 전후에 할머니라는 호칭을 들었을 때 얼마나 불쾌했는지, 운동을 하러 스포츠센터에 가면 ‘아이고, 저 노인네. 천년만년 살려고 저리 기를 쓰고 운동을 하나’ 보네라는 듯 쳐다보는 시선에 얼마나 위축됐는지를 생생한 경험담과 함께 들려준다.

“남녀 차별을 말할 때 여성들에겐 눈에 보이지 않는 유리천장이 있다고 하잖아요. 그런데 우리 노년들에게는 유리벽이 있어요. 사회와 가정에서 눈에 보이는 혹은 보이지 않는 차별과 격리를 당하는 거죠. 심지어 병원에 가면 몇몇 의사들은 노인을 으레 병을 과장하는 꾀병 환자 대하듯 하고요. 세대 간 소통이 안 되다 보니 이런 슬픈 선입견과 편견 속에서 살고 있는 게 노인의 현실이에요.”

하루에 세 끼를 챙겨줘야 하는 남편을 뜻하는 ‘3식이’, 지하철 공짜 세대의 준말 ‘지공세대’까지, 젊은 세대들에겐 생소한 단어지만 노년 세대에게선 많이 쓰이는 말이다. 요즘은 젊은 층이 인터넷 용어를 남발해 의사소통이 안 된다고 한다. 하지만 노년층에서만 쓰는 단어도 만만치 않게 늘어나고 있는 상황. 결국 세대 간 불통을 일으키는 원인이 된다. 또 우리 사회는 노년층에 대해 너무 몰랐고, 노년층은 빠른 시대 변화에도 윗세대와 똑같이 행동했던 것이 세대 간의 간극이 벌어지는 이유가 됐다. 고광애씨는 노년 세대부터 바뀌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노년을 위한 ‘신 처세법’을 적은 것도 바로 그 때문이다.

新 처세법 1 효심총량제를 기억하라
고광애씨는 지난 4월 남편을 먼저 하늘로 떠나보냈다. 그 후로 자식들이 홀로 남은 모친을 챙기는 날들이 늘어났고, 몇 달 전엔 딸이 살고 있는 동네로 이사까지 했다. 그녀는 자꾸만 조바심이 든다며 걱정을 내비쳤다.

“부모들은 자녀의 효심이 무한대라고 생각하지만, 아니에요. 효심에도 총량이 있다고 봐요. 지금은 애들이 저를 잘 챙기지만요. 언젠간 효심의 총량을 다 쓰고 나면 애들도 지칠 거예요. 우리가 살아갈 날은 점점 늘어나는데 자식들의 총량은 그만큼 늘어나지 않으니 크고 작은 문제가 발생하죠.”

효심총량제는 그녀가 만든 용어로 자식들이 부모 봉양을 기꺼이 할 수 있는 효심의 총량이 정해져 있다는 뜻을 담았다. 문제는 총량을 다 쓰고 난 뒤다. 부모는 아직도 정정한데 자녀가 효심이 남아 있지 않게 된다. 부모의 죽음 앞에서 자녀들이 보이는 태도를 보면 효심의 총량이라는 말이 납득이 간다.

“70세에 돌아가신 아버지의 죽음 앞에서 얼마나 울었는지 몰라요. 반면 93세에 돌아가신 어머니의 죽음 앞에선 덤덤했어요. 아마도 아버지께는 효심을 다 쓰지 못했고 어머니께는 다 썼기 때문이 아닐까요? 아직은 자식들이 효심이 남아 있어 저를 챙긴다고 하지만 그걸 다 쓰고 난 뒤에는 어떻게 될는지…. 그래서인지 자꾸 초조하고 조바심이 생겨요. 90세는 넘기지 말아야 할 텐데, 하고요.”

그녀는 자녀들이 장성해 각자의 가정을 꾸리고 나면 효심의 총량은 좀 더 줄어드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평균수명 100세 시대를 눈앞에 두고 있는 지금, 그녀가 말하는 효심총량제가 의미심장하게 들린다. 즉 효자 없는 장수 시대가 시작됐음을 알리는 게 아닐까. 더 이상 자녀에게 봉양을 강요할 수도, 그렇다고 나무랄 수도 없다. 효심의 총량이 고갈된 자식에게 거는 기대는 깨끗이 접어놓고 노년의 남은 생을 사는 법을 배워야 한다고 강조한다.

“20세 전후가 되면 자식이 부모한테 독립하듯 부모도 자식한테서 독립해야 해요. 인생에 있어 홀로서기가 가장 필요한 시기는 바로 노년기예요. 자녀와 함께 사는 것이 윗세대에는 당연했지만 요즘은 아니에요. 부모를 모시고 산다는 것 하나만으로 효자 소리를 듣는 시대인걸요. 가족 속에서 외로이 사는 것보단 혼자서도 즐거운 노년을 보내는 게 나아요.”

新 처세법 2 자식에게 하는 역효도법을 배워라
자식이 부모에게 잘해주는 것이 효도라면, 반대로 노년을 맞이한 부모가 자식에게 잘해주는 것을 고광애씨는 역효도라고 했다. 단어만 듣고 불쾌감을 느끼는 부모 세대도 있을 것이다. 평생을 허리가 휠 정도로 자식 뒷바라지를 했는데 이제는 눈치까지 보면서 잘해줘야 하냐고 반문하는 이도 있을 터. 그녀가 말하는 역효도란 자식들에게 걱정을 덜 끼치고 부모 봉양 시기를 줄여주거나 안 받는 것을 말한다.

“자식들이 부모 속 썩여가며 자라오던 것보다 부모가 다 늙어서 건강, 경제, 돌봄 등으로 자식들의 허리를 휘게 하는 세월이 훨씬 길어졌어요. 따라서 우리 세대는 역효도를 할 만큼 몸과 마음이 건강해야 해요. 건강을 챙긴다고 주변에서 ‘몇 만 년 살려고 저리도 몸을 위하시나’라는 차가운 눈초리를 던지기도 하지만 그걸 이겨낼 배짱도 필요해요. 내가 아프면 누가 힘든데, 지들이지(웃음).”

그녀가 꼽는 역효도법 중 하나는 죽음을 준비하는 것이다. 죽음을 두려워하거나 걱정하라는 것은 아니다. 어느 날 갑자기 당하는 죽음이 아니라 맞이하는 죽음이 되도록 하라는 의미다. 잘 먹고 잘 사는 웰빙만큼이나 잘 죽는 웰다잉도 중요하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나이가 많은 어른을 앞에 두고 죽음을 말하는 것은 금기시됐다. 하지만 이제 죽음을 회피하는 것이 아니라 본격적으로 웰다잉을 준비해야 하는 시대다.

“마치 자신은 죽음과 아무 상관없다는 듯 살던 친구가 있었는데요. 어느 날 갑자기 쓰러져서 꼼짝달싹도 못하게 됐어요. 문병차 갔더니 ‘이제 내가 죽어도 괜찮은 나이인가 보다’라는 거예요. 기가 막히죠. 예전으로 치면 죽을 나이가 한참 지났는데(웃음). 이렇듯 나이를 먹어도 자신이 언젠간 죽는다는 생각을 못해요.”

처음부터 죽음을 준비한다고 생각하면 거창하고 엄숙한 느낌이 든다. 그녀에게 가장 쉬운 방법부터 알려달라고 하자, 살아서 소유했던 것들을 미리 정리하는 것이란다. 예를 들어 유형 재산은 구체적으로 어떻게 분배할 것인지 정해놓는 게 좋다. ‘나 죽고 나면 알아서 나눠 갖겠지’라고 막연한 기대를 갖고 그대로 내버려두면 후에 집안에 큰 혼란을 부추기는 꼴이 된다. 죽음 공부를 시작한 지 20년이 넘어선 고광애씨는 좀 더 멀리 내다보고 준비하고 있다. 그녀는 임종이 다가왔을 때 효과는 없고 고통스럽기만 한 의료 처치를 받지 않겠다는 의향을 법적으로 조치해놓는 사전 의료 의향서를 쓰고 이미 공증까지 마친 상태다.

“임종은 최대한 짧게, 아프지 않게 하는 것이 가장 좋은 죽음이에요. 병을 낫게 하는 것이 아니라 명줄만 늘리는 처치를 거부하겠다는 거죠. 몸에 구멍을 내고 10여 개 넘는 줄과 관을 꽂고 고통스럽게 죽는 것이 과연 본인에게 좋을까요? 마지막을 함께할 가족은 어떻게 받아들일까요? 아직은 우리나라에서 이를 거북스럽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아요. 하지만 아름다운 이별을 위해선 사전 의료 의향서에 대해 모두가 생각해보는 분위기가 만들어졌으면 해요.”

新 처세법 3 현실에 적응하고 계속 배워라
젊은 세대와 노년 세대 간 소통의 부재를 해소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고광애씨는 너무 어렵고 복잡한 문제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하긴 고대 도시국가 시대에도 젊은 세대를 비판하는 글이 나왔으니 참 케케묵은 문제다. 그럼에도 세대 간 물꼬를 틀 수 있는 방법은 있지 않을까. 그녀는 자신의 세대가 젊은이들이 싫어하는 말버릇부터 바꿔야 대화가 될 것이라며 말문을 열었다.

“과거 일 중에 좋은 이야기만 하는 것, 한 이야기를 또 하고 또 하는 버릇, 자기 이야기만 하는 것 이 세 가지를 고쳐야 해요. 물론 쉽지는 않아요. 저도 말은 이렇게 하지만 깜빡하고 실수를 하는걸요(웃음). 먼지 폴폴 나는 과거 이야기를, 그것도 남의 자랑을 재방송으로 들으면 누가 좋아하겠어요?”

왜 노년에 접어들면 했던 말을 반복해서 하는 것인지 그 이유를 넌지시 물어봤다. “우리에겐 과거만 남아 있기 때문”이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젊은 세대들처럼 몇십 년 뒤 미래를 꿈꾸는 것도 힘들고 현재는 별일 없는 지루한 일상이 반복되기 때문에 기댈 곳은 과거뿐이라는 말이다. 노년기에 접어들수록 새로운 것을 배우려 노력해야 하는 이유다. 과거가 아닌 현실에서 적응하고 살기 위해서다. 그녀는 50대에 처음으로 아들 임상수 감독에게 컴퓨터를 배웠다. 더 이상 손으로 글을 쓰는 시대가 아니라는 핀잔을 들으며 제법 혹독한 트레이닝을 받았다. 그 덕에 지금도 현역에서 활발히 활동하고 있으니 참 잘 배웠다 싶다.

“저도 스마트폰은 잘 못하지만 그래도 문자메시지는 주고 받을 수 있거든요. 그런데 참 재밌게도 소위 이 시대 엘리트라고 불리는 대학교수 출신인 제 친구는 스마트폰을 아예 사용하지 못해요. 아니 배우려고 하지도 않아요. 학력 수준이랑 현실에 적응하고 배우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예요. 젊은 애들처럼 빠릿빠릿하게 세상을 배울 수 없더라도 최소한 내 주위에서 일어나는 일은 알아야 해요.”

고광애씨는 돌아가신 어머니 이야기를 꺼냈다. 언젠가 어머니와 직행버스를 타려고 줄을 서 있었는데 얼마를 기다렸을까. 어머니가 줄의 앞으로 가서 순서를 양보받았는지, 협상을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새치기 아닌 새치기를 했다고. 그 순간 얼마나 창피하고 부끄러웠는지 아직도 얼굴이 화끈거릴 정도다. 요즘에도 이런 부끄러운 순간이 더러 있다. 지하철에서 자리 양보를 안 한다고 젊은이에게 소리치거나 아무렇지 않게 새치기를 하는 노년의 행동 말이다. 그녀의 표현대로 ‘이건 아니올시다’ 싶다.

“젊은 세대들한테 대접을 받으려면 우리가 먼저 염치를 차리고 예의를 지켜야 해요. 예전처럼 어른에게 무조건적인 권위를 부여하는 시대가 아니잖아요. 지금 우리 세대는 가부장적인 윗세대와 베이비부머 세대에 ‘낀 세대’라 이래저래 혼란스러운 것 같아요. 아직 시대가 변했다는 것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도 꽤 있으니까요. 좀 더 시간이 필요한 것 같아요. 우리 모두에게.”

다음 노년 세대에게 전하는 말
20여 년 전만 해도 환갑잔치를 꽤 성대하게 했지만 요즘은 아니다. 찬란한 영광을 함께한 베이비부머 세대들이 속속들이 노년기에 접어들고 있다. 하지만 누가 봐도 노인이라 말하기엔 아직 젊다. 이는 두 가지를 의미한다. 첫 번째는 청년기, 중년기보다 더 긴 노년기를 보내야 하는 세대임을 뜻한다. 두 번째는 그들이 나이 듦에 대한 기준과 사회 분위기를 바꿀 것이라는 것. 첫 장수 세대인 고광애씨는 다음 장수 세대에게 가장 필요한 것으로 정서적 권위라고 말한다.

“다음 세대들은 노후 대비를 참 잘하는 것 같아요. 안정적인 노후 자금은 물론 건강관리를 위해 운동도 꾸준히 하고요. 그런데 간과한 점은 젊었을 때부터 자식들에게 정서적인 권위를 얻어야 한다는 거죠. 그것을 뺀 나머지 권위는 모두 포기하고 내려놓고요.”

부모로서 권위를 내세우고 젊은 세대들 위에 군림하려고 한다면 결과는 뻔하다. 가족 내에서 철저하게 소외되기 쉽다. 그러니 그녀는 모든 권위를 내려놓으라고 충고한다. 게다가 젊은 세대들이 힘들어할 때 찾아오면 마치 아껴뒀던 것을 내보이듯 상담을 해주는 게 정서적 권위를 발휘하는 순간이라 했다. 지금 노년 세대에겐 결코 쉽지 않은 이야기다. 상담보다는 지시, 충고, 명령, 잔소리가 더 익숙하기 때문이다.

“사실 저도 어떻게 정서적인 권위를 만들어야 하는지 잘 몰라요. 그냥 명령권자 역할을 내려놓았을 뿐이죠. 우리야 먹고살기 급급했고, 어떻게 해야 아이를 잘 키우는가에 대한 방식이 지금과 전혀 달랐으니까요. 그래도 베이비부머 세대들은 우리 때보다 자식을 위하면서 잘 키운 세대니까 정서적 권위를 쌓는 것에 대한 답을 금방 찾지 않을까요? 이미 완성됐을 수도 있고요.”

지금 노년 세대가 첫 장수 세대의 포문을 열었다. 이제 다음 세대는 어떻게 청년과 노년을 잘 어울리게 해 하나의 구성원으로 살 수 있는지에 대한 고민을 해야 할 때다. 외국에 비하면 우리는 노인 공경 구호도, 대우도 훌륭하다. 하지만 노인들을 한곳에 잘 모셔만 놓았지 소통할 생각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 그녀의 지적이다. 노인들을 잘 모시면서 동시에 잘 모시지 않는다는 말이다. 과연 한곳에 모셔놓는 것이 옳은 건지, 아니면 분리를 해야 하는 것인지 생각해봐야 한다고 고광애씨는 세상에 묵직한 화두를 던졌다. 그렇다고 해서 답을 찾는 문제를 다음 세대에게 떠넘기려는 것이 아니다. 노년기를 맞이할 수 있는 우리 모두 해결책을 찾자는 뜻으로 먼저 손을 내미는 어른 세대의 ‘예의’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