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 나를 생각한다
글; 김단혜
창문을 연다.
이제야 나는 나를 생각한다.
왜 나는 여기에 있어야 하는가에 대하여
가끔, 긴 호흡으로 누군가를 향해 중얼거리는 것에 대하여.
외로운 날이면 크리스탈 핑크빛 립스틱을 바르고
책의 속살을 만지러 나만의 다락방으로 간다.
앉은뱅이책상을 베고 누워 종일 햇살과 뒹군다.
책꽂이에서 곰팡이 냄새가 나는 책을 펼친다.
글자들이 한 줄로 서서 미끄럼을 타기도 하고
병 속으로 들어가기도 한다. 나는 그 속에 있다.
나는 글자가 되었다가 책이 되었다가 햇살이 되기도 한다.
현란한 벚꽃들의 나부낌.
견딜 수 없음을 막무가내로 버티던 날들이 있었다.
바쁠수록 더 한가롭던 날들.
산다는 것은 이러한 시간들의 기나긴 이어짐일 것이다.
코발트블루의 하늘을 바라보며 ′Anyway′ 로 살았던 하루에 대하여
요트를 사고 싶으면 요트 값을 묻지 말자고 다짐하던 날들에 대하여
포기하지 않기 위해 날개를 퍼덕이는 나에 대해 생각해본다.
내 마음의 창을 맑게 닦아본다.
유월의 언덕에서
김단혜
유월의 숲은
정오의 티 타임이다.
잘 달여진 녹차의
떫어서 개운한 뒷맛처럼
달콤하고 오묘하다.
짧아서 정겨운
내 그림자를 밟으며
오래오래 숲길을 걷고 싶다.
풍경 소리 바람에 날리는
작은 산사의 찻집에서
녹차 한 잔을 마신다.
반영이 아름다운 호수 수면 위로
이팝나무 하얀 꽃잎들이 눈처럼 날린다.
세상사의 분주함을 내려놓고
두 번째 우린 녹차를 입에 대며
안단테, 안단테의 여름 소나타를 듣는다
'詩가 흐르는 상자'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크랩] 시를 읽는다 (0) | 2015.07.20 |
---|---|
[스크랩] 전화 - 마종기 (0) | 2015.07.15 |
셀라비/류근 (0) | 2015.07.08 |
마경덕 시 (0) | 2015.06.15 |
신발론/마경덕 (0) | 2015.06.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