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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신경숙 소설은 왜 항상 베스트셀러가 될까?

tlsdkssk 2015. 6. 20. 20:10

 "사라지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다만 내 눈에 보이지 않을 뿐이다."  

 

작년말 어떤 모임에서 지인들과 나눈 대화 한 토막-------- 모임끝에 내가 먼저 말문을 연다. 창비에 연재되던 경숙 소설 나왔데, 그래? 얼릉 사야겠다. 단 일초의 망설임도 없이 신경숙 소설이라면 사야겠다는 친구들을 보며, 나는 물었다. 짠순이들이 소설 안 좋아한다면서 왜, 사? 야, 야, 그런 소리 하들마라, 다 안좋아하는 게 아냐, 재미없는 소설을 안좋아하는 거지. 맞아. 우리도 재미있으면 돈주고 사서 읽어. 나, 또 묻는다.  뭐가 재밌는데, 야, <풍금이 있던 자리> 봐라, 그거 남정네들 마음 속에 도사린 풍금, 우리 안에 있는 박하사탕 아니니? 그여자가 음식 만드는 장면, 아기기저귀재는 모습, 우리 어머니는 이렇게 하는 데 그여자는 이렇게 하드라는 그 표현,  그여자가 문을 열고 들어서는 거 같지 않니?  신경숙하면 <외딴방>이지. 햐, 그 시절을 어떻게 그렇게 쓰니, 꼭 이발소그림 보는 거 같지 않니? 뭐니뭐니해도 신경숙은 <깊은 슬픔> , <바이올렛>, <기차난 일곱시에 떠나네> 에서 그리는 그  청승스러운 이루어질수 없는 사랑 아니니? 아냐, 이번에 나온 <엄마를 부탁해>가 제일 좋더라. 난 사람이라는 게 사는게 지긋지긋하다가도 아주 따뜻해져서 사람이 문득 좋아졌어. 야, 우리같은 짠순이도 신경숙 소설을 사는데 을매나 많이 팔렸을까? 나오는 족족 그렇게 잘 팔리니 돈도 많이 벌었겠다, 응?.등등...............공통점은 바로 우리 얘기잖아, 다.     (옆의 신경숙 서재사진은 네이버의 <지식인의 서재>에서 가져옴)

 

이 글은 신경숙 소설의 미학을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불황을 모르는 베스트셀러작가,  신경숙의 문화마게팅, 그 시장논리를 아주 조금만 살펴보고 싶어서다.  신경숙은 1993년 이래 거의 매해 소설집이 나오고 그 때마다 소설의 죽음을 논하는 논자들을 무색케 하면서 베스트작가의 반열에서 내려오지 않는 문화마게킹의 전범이 되었다. 문학과 시장논리의 환상의 결합. 

 

 우리가 다 알다시피 1963년생 신경숙은  22살이 되던 1985년 문예중앙에 <겨울 우화>를  발표하면서 등단한다. 신경숙도 문학의 '외딴방' 시절이 있었다.  문청시절이라 할 수 있는 와신상담의 시간을 거친 후, 1993년 <풍금이 있던 자리>를 발표한다. <풍금이 있던 자리>는  신경숙이란 이름 석자를 독자에게 분명하게 각인시킨다.   그동안 발표된 신경숙의   대표적인 작품들은 1990년 《겨울우화》(고려원) , 1993년 《풍금이 있던 자리》(문학과지성사) , 1994년 《깊은 슬픔》(문학동네) ,1995년 《외딴방》(문학동네) 《아름다운 그늘》(문학동네) ,1996년 《오래 전 집을 떠날 때》(창작과비평사) ,1998년 《강물이 될 때까지》(문학동네) ,1999년 《기차는 7시에 떠나네》(문학과지성사) ,2000년 《딸기밭》(문학과지성사) , 2001년 《바이올렛》(문학동네) , 2002년 《J이야기》(마음산책) , 2003년 《종소리》(문학동네) , 2004년 《아름다운 그늘》(재출간, 문학동네) , 2005년 《감자 먹는 사람들》(재출간, 창작과비평사) ,2006년 《깊은 슬픔》(재출간, 문학동네) , 2007년 《리진》(문학동네), 2008년《엄마를 부탁해》(문학동네) 등이 있다.

 

 결과론적인 추론이지만 거의 매해 한 권이상 소설집이 나왔고, 그때마다 그녀의 소설이 독자들에게 끊임없는 사랑을 받을 수 있었던 씨크릿은 문학의 소통구조라 할 수 있는 <1, 작가-  2.현실- 3.작품- 4.독자> 네 측면에서 환상적인 궁합이 맞아떨어진 결과가 아닌가 싶다. 균형감각, 그렇다.

 

 

 1. 신경숙, 그녀는 이야기꾼 세헤라자드다.

 

<엄마를 부탁해>를 끝내고, 신경숙은  엄마에 대한 ‘고해성사’로 마음이 지쳤다면서,  하지만 벌써 다음 작품을 구상중이라 한다.  “다음에는 ‘사랑이야기’를 써보고싶어요. 어느날 갑자기 시력을 잃고 앞을 못보게 된 사람의 사랑이야기요.”  나는 그 기사를 읽고 신경숙은 남편이 둘이구나, 하며 웃었다. 남진우씨와 소설!  김현 선생은 <소설은 왜 읽는가> 라는 글에서처럼  독자인 우리는 듣고싶어하는 욕망때문에 소설을 읽고 그녀는 이야기하면서 죽음을 연장을 하는 세헤라쟈드처럼 글을  쓴다. '끊임없이 이야기하고자 하는 욕망, 죽음과 싸우는 세헤라자드' 처럼 그녀는 쓰고 또 쓴다. 그녀 안의 이야기 주머니가 무궁무진한가 보다.  혹은 참으로 고독을 즐기는 작가로구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아무리 사랑하는 사람이 있어도 작품은 둘이 함께 쓸 수 없는 독창적인 세계이기 때문이다.  부지런하다. 그녀가 신작을 발표할 때마다, 이미 그녀는 다음 작품에 대한 구상을 얘기한다. 가차없이 세상으로 자식같은  작픔을 떠나보내고 새로운 작품을 임신한다.  무섭다. 그 무서움이 신경숙은 불황을 모르는 작픔을 쓰는 작가로 만들었을 것이다. 난 여기서 베스트셀러의 씨크릿은 바로 신경숙의 쓰고 또 쓰는 자기 업에 대한 <몰입>에 있다고 본다. 이 소설이 많이 팔리면 무엇무엇을 해야지 하는 마음에서가 아니라, 쓰는 것에 대한 <몰입의 아름다움>이 독자를 끌어당긴다. 스스로 취한 춤만이 청중을 사로잡는다는 아주 평범한 진리를 그녀의 글쓰기에서 본다. 신경숙은 1993년 이래, 거의 매해 소설 내지는 산문집을 냈으니 그녀는 다산의 작가인 셈이다. 그녀에게 소설은 자식이다. 아이가 생기면 낳고, 일년터울의 자식들을 또 낳은 농촌공동체의 풍요와 다산의 신이 아마, 신경숙 그녀에게 접신했나보다, 

 

2.. 신경숙 소설은 편가르기나 현실을 과장하지 않는다.

 

 1995년 <외딴방>이 출간되었을때, 공교롭게도 노태우전대통령은 비자금으로 푸른수의를 입고 구치소라는 외딴방올 들어가던 시기였다.  망각의 천재인 나는 아직도 모 신문 사설을 기억한다. <신경숙의 외딴방과 노태우의 외딴방>이라는 제하의 사설을,  권력을 무상함을 보여주던 바로 그  시절, 그녀는 '붕새가 되어 구만리 창공을  날고 있었다' 1995년은 신경숙에게 아주 특별한 해가 아니었을까?   신경숙의 <외딴방>에서 보여주는 '나'는  농촌공동체의 태생적자아가 산업사회로 입성한 한 자아 파동  자기찾기가 주된이야기다.  백낙청씨가 <리얼리즘의 새로운 지평을 열였다>고 극찬했던 것처럼 그녀의 문학은 <현실의 재현>이 과연 무엇인가를 신경숙식으로 보여준다. 사소설과 허구의 결합 혹은 현실과 허구의 결합에서 그는 흔히 말하는 左도 아니고 右도 아니다.  그녀 안에는 둘이 다 있다. 정직하다.  그러기에 현실을 과장하지도. 이분하지도 않는다. 그냥 양쪽을 다  보여준다. 인간은 선하지도 악하지도 않다는 것을,  그 평가를 독자의 몫으로 돌린다. 자신의 글쓰기를 사진찍기라고 했던 바로 그 상황재현이 독자로 하여금 그녀의 소설을 읽고 모두 한마디씩 하게 끌어당긴다. 와글와글 하게 만든다.  독자와 함께 완성하는 소설이다. 그녀의 소설은 중립지대 비무장 지대, 완충지대다.  연구자가 아니라 소설을 그냥 좋아서 사는 이들은 그 목소리를 좋아한다.  무엇인가 가르치고 계도하려는 선구자적 소설가형이 아닌 그냥 자신의 시선에 들어온 것을 사실처럼 보여주는 그의 사실주의 기법에 독자들은 편안해한다.  그녀의 작품과 격의없는 대화를 주고받게 만든다. 그렇게 신경숙 문학은 독자와 충분한 소통을 이뤄낸다. 보라, 이것을? 이 아니라, 저 시절, 혹은 저것은 어땠어요? 라고 묻는다.   이것은 그의 작품들이 공교롭게도  <문학과지성사> , <문학동네> , <창작과비평>에서 돌아가면서 출간된다는 데에서도 그 묘수를 찾을 수 있겠다.  세 출판사는 알다시피 우리  문학계의 흐름을 좌우하는  지명도가 있는 출판사다.  그럼 출판사 덕으로?  분명 출판사마게팅이 전혀 없지는 않았겟지만, 내 능력으로는 그것까지 분석해낼  능력은 없다. 다만 그녀가 세 출판사를 공평하게 오가며 출간한다는 것이,  세 출판사의 방향성이 다르다는 것을 염두한다면 그녀의 색깔무용론을 짐작할 수 있다 . 공평하게 빵을 나누듯,  색깔을 고집하지 않는 정신, '나누기' 정신이0다.   아군과 적군으로 이분하여 편가르지 않는. 모두가 그녀 편이고, 그녀 역시 모두의 편이면 된다. 우리 모두에게는 좌의 성향도 우의 성향도 다 있다는 것을 그녀는 안다. 그녀의 리얼리즘의 초점은 <너를 있게한 엄마 같은 그를, 그 시간들을 기억해> 에 있는 것이지, 저 때려죽일 놈들 봐라!가 아니다. 작가가 나서서 분노하지 않아도 독자도 알건 다 안다. 독자는 우매한 민중이 아니다. 그녀의 문학은 지난 시간에 대한  은혜갚기 내지는 떠나보내기의 진혼곡이다.  고발의 르뽀가 아니라 이별과 치유의 문학이다. 너를 있게한 그를 기억해! "오늘의 우리들 뒤에 빈껍데기가 되어 서 있는 우리 어머니들이 이루어낸 것들을 어찌 다 헤아릴 수 있을까. 그 가슴 아픈 사랑과 열정과 희생을 복원해보려고 애썼을 뿐이다. 이로 인해 묻혀 있는 어머니들의 인생이 어느 만큼이라도 사회적인 의미를 갖기를 바라는 것은 작가로서의 나의 소박한 희망이다."  <엄마를 부탁해>의 작가 신경숙의 말이다.

 

 

3. 신경숙 소설은 소멸할 운명에 처한 것들의 '이름'을 불러준다.

 소설을 읽는 것은 대리충족이다.  현실이 주는 상처와 상실의 보상이다. 어떤 소설도 상처를 다루지 않는 소설은 없다. 상처가 소설을 낳는다해도 과언이 아니다. 상처와 대리충촉의  교직,  예컨데, 신경숙 소설의 분위기는 사라지는 것들, 그 뒷모습에 대한 만가가 구성지다. 그녀의 소설 주인공처럼 우리 모두 기억의 창고에는  슬픈로망이 있다. 그것을  끄집어내 제대로 이별시킨다. 해후를 고집하는 그리움이란 이름의 집착이 아니다. 사람에 대한 예의 이별예식이다.  인물들과 그런  동일시의 체험을 갖고 있는 우리는 맞아, 맞아 라며 우리 안의 비극들을 꺼내 함께 떠나보낸다.  신경숙 소설의 그런 무늬를 그녀의 허즈인 남진우씨는 <외딴방>에서  '처연한 아름다움. '눈부신 연민'이라고 평했는데, 나는  <엄마를 부탁해>의 신화인 <피에타리즘Pietaism>이라고 신경숙 소설의 슬픈로망을  명명하겠다. <리진>에서도 마찬가지다. 사랑는 언제나 상처와 함께 있다, 죽음 이나 껍데기의 운명에 처해진 다,  그 사라짐과 여전히 남아있음에 대해,  몸을 감춘 것들이 모두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있던 것은 결코 사라지지 않고 배회한다.  사라진 것들이 남아 있는 것들에 말을 건네는 소리를 그녀는 집요하게 듣고, 대꾸한다. 안 들려요, 더 크게 말해봐요, 라고.. 망각의 강을 건너는 베르테르의 이름을 부른다.   구획되고  분절된 시간이 아니라 과거가 현재에 말을 거는 시간의 영속과 순환이다. 고리를 짜르는 것이 아니라 뒷모습을 그린다.  미래보다는 그녀의 소설에선 프로스트의 소설처럼 과거의 이름을 더 천천히 불러준다.  오늘, 너의 기쁨을 떠 받드는 것이 무엇이더냐? 고 묻는 것이다.  나나 그나 거기의 슬픔이 있었다는 것을 상기시킨다. 은혜의 문학이다. 갚음의 문학이다.  신경숙 소설의 사랑은 대부분  비극적인 표면을 싸는 연민의 달콤함이 녹아있다. 외딴방에서 나오는 <은재언니>는  실패한 사랑 이야기의 전설이다. 우리 모두는 가슴에도 슬픈 사랑 한 두개씩은  묻혀 있다. '은재언니는 내게 육체로 남아있다' 고 작가가 고백하듯, 우리에게 육체로 남아 있는 사랑(상처)들이 있다. 신경숙 소설을 읽으면서 우리는 기억과 망각속에 여전히 육체의 한부분으로 남아있는 실패한 사랑, 소멸하는 것들의 '이름'을 불러준다. 김춘수의 <꽃>과 같다. 내가 너의 뒷모습을 불러주기 전에는 너는 다만 쓰라린 상처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너의 이름을 불러주었을때, 너는 나에게 히야신스가 되었다, 이다.  현실에서 이름을 얻지 못한 것들이 그녀의 소설을 읽으면서 마땅한 이름을 얻는다. 씻김굿이다. 또 < 바이올렛>등에서 나오는 상처에 대한 보고서는 상처받은 우리 자아를 위무하는 것은 고백을 끌어내는 들어주는 귀라고 말한다, 고백이 치유다.  은재언니에게, 은서에게 말하라고 한다, 안들려 더 크게 말해 봐...우리 모두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고 말하고 싶다. 털어놓아도 후회되지 않는 대나무 숲이 필요하다. 신경숙의 리얼리즘은  고발이 아니라 고백에 있다. 야,  그까짓거 때문에 우냐? 상처받냐?  죽어 버리냐? 라고 지나칠 약한 것들의 숨결을 듣고, 들려준다, 역사가 복원해주지 못하는 것을 소설은 할 수 있다. 소설의 존재이유다. 구천을 맴도는 기억의 유령들에게 밥을 차려준다.  약한 것들의 이름, 이루지 못한 슬픈 사랑에서도 모두 꽃이 핀다는 것을 이르집어준다. 우리는 그 상실과 부재로 인해 오늘을 산다는 것을, 그것이 현대를 배경으로 하든  조선을 배경으로 하든, 도시든, 농촌이든 상관업이 상처와 죽음에서 신화의 꽃을 피운다. 죽음과 상처에 영생을 부여하는 힘, 씻김굿,  이루지 못하고 떠나버린 '사랑'이지만  지금은 '히야신스'가 피어나겠지라고... 지난 사랑을 전송한다.

 

4. 신경숙 소설은 독자와 동행한다.

소설의 서술자는 중요하다.  서술자는 독자와의 소통의 다리이기에 그렇다. 신경숙 소설의 서술자는 공통적으로 목소리가 어늘하다. 멈칫 멈칫 거린다. 웅변가가 아니다. 어눌하지만 장황하지지 않게,  동시에 모두를 말할 줄 안다. 어눌하면서 야무지다.  아마, 이것이 그 무엇보다 신경숙 소설이 독자의 곁에 가까이 있는 이유가 아닐까 싶다. 그녀가 와산상담시절 방송이란 매체에서 일한 경험의 노하우가 아닐까 싶기도 하다. 소통하고 싶으면  보폭을 같이하라는 것, 천천히 걸으면서 산보를 하듯 일상에 녹아있는 것들, 마음의 깊은 곳에 앙금으로 가라앉았던 것들을 들추어 내, 생의 이면에 우두커니 웅크리고 있던 이야기를 펼친다.... 실존주의를 말하지 않는 실존이다. 물론  신경숙 소설의 서술자는 목소리가 따뜻하기만 한  것이 아니라 분명하기도 하다. 그 목소리가 우리는 모두 낯설음과 익숙함 사이에 거처하며, 하지 못한 말이 더 많은 말을 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분명하다는 것은 평가가 아니라 상황재현이다. 시선이다다.  평가는 독자의 몫이다. 이글을 쓰기 위해 신경숙의  소설 가운데 내가 가장 좋아하는 <외딴방>을 다시 읽다가 큰 소리로 웃다 찡해진 대목 같은 것이 바로 그것일 것이다. 음...  한여름에 서른일곱개의 방 가운데 하나인 그들의 방에, 하필 시골에서 외사촌 오빠까지 합세해 네 명이 자야했던 어느 날밤의 이야기다. 내가 바로 그 방에 같이 누워있는 듯한 숨막힘이 느겼지는 순간.... 잠을 자던 큰 오빠가 벌떡 일어나 ' 너 당장 시골로 내려가라' 고 외사촌오빠에게 말한다....내가 하고싶은 말을 오빠가 한다. '나'라는  서술자는 동시에 오빠도 외사촌도, 새벽에 밥도 먹지 않고 시골로 내려간 외사촌오빠도 그 모두를 동시에 바라본다.   '나'는 세사람을 다 보아버렸으니 할 수 없이 그 상황을 견디지 못하고 부엌바닥에 쪼그리고 앉아 술을 마신다. 평가가 아니라 상황만 사진찍듯 재현한다. 그런 '나'를 통해 그들 시대의 한 단면이 흑백사진처럼 재현된다. 박정희 대통령이 서거하고 세상이 갑자기 무서워 아침국거리를 준비하지 않은 '나'가 칼과 소쿠리을 들고 새벽에 창문 앞밭(배추밭)으로 가는 장면, 공장의 검은 분진이 이슬처럼 내려앉은 그 배추를 몰래 뽑아오는 장면에서... 나도 떨린다. 서술자는 이들을 보라고 말하지 않는다.  어차피 배추밭주인이 쏙아버릴 배추하나 뽑아오면서 떨려하는 이들을 재현하고 서술자는 뒤로 슬그머니 물러난다. 저 혼자 떠들어대지 않는다. 그럼, 독자인 나는  그 장면을 읽다 웃다, 끝내 눈물이 핑 돌아, 으이구 이 망할놈의 세상아, 하게 된다.   독자가 할말을 서술자가 가로채지 않는다.  끌어들임, 소설에서 듣던 서술자의 그 목소리가 신경숙씨의 실제 목소리와 너무나 똑 같아 놀랐던 적이 있을 정도로, 신경숙 소설을 끌고 가는 서술자는 대부분 일인칭 '나'이지만 삼인칭을 넘나드는 "나'라는 것이 놀랍다. 엄마처럼 품이큰 일인칭 '나'는 모든 인물들을 다  보여주면서, 끌어 가면서, 끌어 안으면서, 한 명도 함부로 내치지 않고 동행한다. 독자와 그 보폭을 같이하면서.  연설이나 주제넘은 교설 따위는 없다.

 

신경숙 소설이 1993년 이래 출간되는 것 모두  베스트셀러가 되는 씨크릿을 네 가지 면에서 바라본다. 독자는 소비자다. 소비자가 필요하지 않으면 구매하지 않는다. 독자가 무엇을 원할까?  불황에도 불구하고 돈이 아깝지 않은 재미있는 이야기다. 그럼  가장 재밌는 이야기는 무엇인가? 내 안에 내가 하고픈 바로  그 이야기다. 내가 하고픈 내 이야길 신경숙이 대신 해 준다. 그녀는 소설로 말한다. 늘 곁에 있을거에요.  난 항상 당신 곁에 있어요, 느끼세요,라며  동행한다.  그것이 신경숙 소설을 베스트셀러가 되게하는 씨크릿이라고, 진단해 본다. 사라지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다만 내 눈에 보이지 않을 뿐이다.    

 

 

 

 

<풍금이 있던 자리>에서-------- 

 

그 여자...... 그 여자 얘길 당신에게 해야겠어요.(중략) 텃밭이 어디니? 그 여자가 제게 다가와 제 어깨를 매만지며 물었어요. 여자는 어느덧 부엌에서 소쿠리를 들고 나와 제 앞에 서 있었지요. 저는 그 여자의 화사함에 이끌려 고무신을 꿰신고, 그 여자를 뒤세우고는 텃밭으로 난 샛문을 향했습니다. 그 여자에게서는 그때껏 제가 맡아 본 적이 없는 은은한 향내가 났습니다. 그 여자가 움직일 때마다 그 향내는 그 여자에게서 조금 빠져나와 제게 스미곤 했습니다. 그게 왜 그리 저를 어지럽게 하던 지요. 텃밭으로 가는 길에 물을 길어 나르던 장성 댁을 만났는데, 장성 댁은 물동이를 내려놓고까지 그 여자와 나를 쳐다봤어요, 샐쭉한 표정으로. 그 여자는 잔 배추와 잔 배추들 사이를 헤집고 다니며 소쿠리에 잔 배추를 뽑았습니다. 텃밭 한 켠에 심겨진 푸르른 조선파도 뽑아 담았습니다. 여자는 새각시처럼 뉴똥 저고리를 입고 있어서, 배추를 뽑을 때는 배춧잎같이, 파를 뽑을 때는 팟잎같이 파랗게 고왔습니다. 텃밭 지기 노랑나비도 그 여자 머리 위에 내려앉으니 날개를 바꿔 단은 듯했어요. 텃밭에 들어갔다 나오자 여자의 흰코 고무신에 흙이 얼룩졌지만, 여자는 아무래도 상관없는 듯 제 손을 이끌고 다시 샛문을 통해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렇게 우리 집으로 불쑥 들어온 그 여자가 맨 먼저 한 일은 김치를 담그는 일이었어요. 저는 영문도 모르고 김치 담그는 그 여자 곁에서 잔심부름을 해주었어요. 생강 껍질도 벗겨 주고, 마늘도 짓찧어 주었으며, 우물에서 소금에 절인 배추를 씻을 때는 두레박질도 해주었지요. 그 여자는 아무래도 그런 일이 서툰 듯했어요. 어머니께서는 한눈을 파시면서도 단숨에 척척 해내는 무생채 써는 일은 특히 말이에요. 어머니의 도마질 소리는 깍둑깍둑깍둑...... 경쾌했지만, 그 여자의 도마질 소리는 깍...... 뚝...... 깍...... 뚝...... 이었어요. 그렇게 그 여자는 파란 페인트칠이 벗겨진 대문을 통해 우리 집으로 들어왔고, 대신 그 대문으로 어머니께서 자취를 감췄습니다. 안방 아기 그네에 백일이 겨우 지난 막냇동생까지 남겨 두고. 여자는 힘들게 김치를 담가서 저녁 밥상을 차려 내놓았지만, 우리 형제들은 아무도 수저를 들지 못했습니다. (중략)그 여자는 우리 집에 살기 시작한 지 열흘만에 큰오빠만 빼고 모두를 끌어안아 버렸어요. 백일이 갓 지난 울 줄밖에 모르던 그네 속의 막냇동생까지요. 그 여자의 손이 닿아 제일 먼저 화사해진 게 아기 그네였습니다. 어머니께서 그네 밑에 깔아 놓으셨던 떨어진 아버지 내복을 그 여자는 맨 먼저 걷어 냈어요. 그러고는 어디서 났는지, 잔 꽃이 아른아른한 병아리색 작은 요를 깔았어요. 그네 하면 어린애의 울음소리와 그 낡은 내복이 생각났었는데, 그 여자는 뽀송한 기저귀가 옆에 있는 환한 병아리색 이미지로 바꿔 놓은 거예요. 그 여자는 아이를 울리지 않았어요. 처음에 어머니 젖이 아니라, 느닷없이 우유병이 들어오자, 칭얼칭얼 대는 것도 잘 해결했죠. 그 여자는 서슴없이 자신의 젖을 꺼내 아이에게 물렸다가 아이가 빈 젖임을 막 알려는 참에 살며시 젖병 꼭지를 밀어 넣었어요. 그러면 어린애는 손가락을 그 여자의 젖 위에 얹어 놓고 꼼지락거리면서 순하게 그 젖병 꼭지를 빨았습니다. 아이는 그 여자 등뒤에서 해사하게 웃었고, 그 여자는 아이를 업고 음식들을 만들었습니다. 도마질만은 무척 서툴렀습니다만, 그 여자는 도마질을 잘하는 어머니 맛하고는 다른 맛의 음식을 만들어 냈습니다. 밥을 한 가지 해내도 그 여자가 한 밥은 표가 났습니다. 어머니의 밥은 한 가지였지요. 보리와 풍금이 있던 자리쌀이 섞인 쌀보리밥이 그것입니다. 어머니께선 미리 보리를 삶아 놓았습니다. 그러면 밥뜸을 안 들여도 되었거든요. 그것도 한꺼번에 며칠 것을 삶아 두셨어요. 논일 밭일에 언제나 어린애가 있던 집이어서 보리 삶는 시간도 아끼셔야 했던 분입니다. 삶아 놓은 보리를 밑에 깔고 한 켠에 쌀을 얹어서 지은 다음에 나중에 밥그릇에 풀 때 서로 섞는 것입니다. 어머니는 언제나 아버지 밥그릇과 큰오빠 밥그릇은 따로 챙겨 두셨다가, 그 두 밥그릇엔 쌀밥이 더 들어가게 섞으셨지요. 그 여자는 보리를 미리 삶아 놓지 않았습니다. 밥을 지을 때마다 그때그때 보리를 먼저 물에 불려 놓았다가 돌확에 갈아 지었습니다. 그리고 알맞을 때에, 밥뜸 불을 밀어 넣어 줘서 밥은 늘 고슬고슬했어요. 그 열흘 중의 어느 날은 보리를 다 빼고 쌀에 수수를 넣은 밥을 지었으며, 또 어느 날은 입에 쏙쏙 들어가기 좋을 만큼의 크기로 만두를 빚어서 밥 대신 만두국을 내오기도 했습니다. 지금도 환하게 생각납니다. 그 여자는 마치 우리 집에 음식을 만들러 온 여자 같았어요. 멥쌀보다 색이 뽀얀 찹쌀로 둥근 경단을 만들어 내놓기도 했으며, 곤로를 마당에 내놓고 진달래 화전을 부쳐 주기도 했어요.  찹쌀로는 그저 시루에 찰떡만 쪄 주셨던 어머니. 그 여자는 어느 날 대추 밤을 썰어 넣어 찹쌀 약식을 해주었죠. 찹쌀의 그 끈기가 그렇게 맛있는 것인 줄 그 여자를 통해 알았습니다. 다듬잇돌에 밀가루를 밀어 칼국수를 만들어 내왔을 때, 그 국물 위에 화려하게 얹힌 고사리와 계란 고명들이 지금도 눈에 환합니다. 어머니가 쑤어 준 풀떼죽하고는 확실히 달랐지요. 맛이야 어떻든 그 폼이 말이에요. 그 여자가 묵었던 그 열흘 동안 도시락을 싸 가는 오빠들이 부러웠습니다. 어머니께서 싸 주시는 도시락 반찬 그릇은 들여다볼 것도 없었지요. 과묵하던 큰오빠까지도 또 염소 똥이야, 할만큼 검정콩 자반이 주를 이루었고, 집에서 담근 단무지, 된장 속에 묻어 놓았던 오이장아찌, 어쩌다 밥물 위에 얹어 쪄 낸 계란찜이었으니까요. 그 여자의 음식 만드는 멋은 특히나 오빠들 도시락에서 이루어졌습니다. 맨밥에 반찬 싸 가는 것이 도시락인 줄만 알았는데, 그 여자는 당근과 오이와 양파를 종종종 썰어서 밥과 함께 볶아서 그 위에 계란 후라이를 얹어 주었습니다. 푸른 콩, 붉은 강낭콩, 검정콩 등을 섞어 설기떡을 만들어서 밥 반쪽 콩설기떡 반쪽을 싸 주기도 했습니다. 아버지께 쇠고기를 사 오라 하여 양념해서 볶고, 시금치도 데쳐서 기름에 볶고, 달걀도 풀어 몽올몽올하게 볶아서, 이 세 가지를 밥 위에 덮어 주기도 했습니다. 꽃밭, 꽃밭을 연상시키더군요. 어느 날은 큰오빠가 무슨 밥을 좋아하느냐고 물어서 주먹밥을 좋아한다 했더니, 다음날 그 여자는 콩을 넣은 주먹밥을 자그만자그만하게 만들었어요. 먹을 때 밥이 손에 달라붙지 않도록 깻잎으로 하나씩 싸서 도시락을 채웠습니다. 온 식구들이 함께 하는 끼니때는 아버지께 혼이 날까 봐 숟가락을 드는 시늉은 했지만, 도시락은 들고 갔다 가도 고스란히 되가지고 오던 큰오빠는 그 날 등교하다 말고 다시 돌아왔습니다. 그러고는 마루 끝에 그 도시락을 팽개치고 달아났어요. 아무래도 그걸 가지고 학교까지 갔다가는 먹고 싶은 유혹을 물리치기가 힘들 거라는 생각이 들었던 거겠죠. 그 여자는 아버지가 술드시고 온 다음날은 밤새 읍에 나갔다가 온 것인지, 싱싱한 소피를 삶아 뚝뚝 잘라 넣은 선 지국을 끓여 내놓았습니다. 그 국물 위에는 어슷어슷 썰어 넣은 생파가 듬뿍 얹혀 있었지요. 그 여자가 부쳐 주던 두릅 적이며, 그 여자가 무쳐 주던 미나리나 물쑥나물 한 접시......아, 그 칡수제비까지 생각나는 걸 보면, 아버지로 하여금 그 여자를 사랑하게 한 게 그 음식들이라고 생각하는가 봅니다, 저는. 국수에 고명을 넣는 그 여자와, 넣지 않는 나의 어머니. 글을 더 쓸 수가 없군요. 바깥에서 아버지께서 우사에 가 보자고 부르십니다. (중략)

 

 

 

 

 

 <외딴방>에서------------

 

작별은 상대방의 눈을 자세히 들여다보게 한다. 그리고 새삼 깨닫게 한다. 저이가 저런 모양새의 눈을 갖고 있었던가. 하고. (28쪽)

 

글쓰기란, 그런 것인가. 글을 쓰고 있는 이상 어느 시간도 지난 시간이 아닌 것인가. 떠나온 길이 폭포라도 다시 지느러미를 찢기며 그 폭포를 거슬러 돌아오는 연어처럼, 아픈 시간 속을 현재형으로 역류해 흘러들 수밖에 없는 운명이, 쓰는 자에겐 맡겨진 것인가. 연어는 돌아간다. 뱃구레에 찔린 상처를 간직하고서도 어떻게든 다시 목숨을 걸고 폭포를 거슬러 처음으로 돌아간다. 그래 돌아간다. 지나온 길을 따라, 제 발짝을 더듬으며, 오로지 그 길로. (37쪽)

 

살아있다는 것. 우리가 그 골목에서 간이숙박소 같은 삶을 살았다고 해도, 중요한 것은 살아 있다는 것이야. 일상에 매여 일년을 통화 한번 못 한다고 해도 수첩 속에 오래된 전화번호를 가지고 있다는 것. 내 손을 뻗어 다른 손을 잡을 수 있다는 것. 설령 내가 언니가 이 세상에 존재했었다는 걸 기억하지 못한다고 해도 언니가 이 세상의 어느 공기 속에서 아침마다 눈을 뜨고 숨을 쉬며 악다구니를 쓰며 살아가고 있다면… 나는 내 열 여섯에서 스물까지의 시간과 공간들을 피해오지 않았을 거야. 내가 기억한들, 언제까지나 기억한들… 그런들… 그런 것이 무슨 소용이지? 기억으로 뭘 변화시켜놓을 수 있어? (221쪽)

 

가슴속에 하지 못한 말들이 하늘로 올라가서 별이 된다고 한 사람은 누구였는지. 조그만 것들은 너무나 많이 모여 있으면 슬퍼 보인다. 자갈이나 모래나 쌀이나 조갑지들. 하늘의 별도 그렇구나. 자갈이나 모래나 쌀이나 조갑지와 다른 점은 저렇게 많은데도 하나하나 반짝반짝 제 빛을 낸다는 것이다. (394쪽)

 

 

 

 

 

 

<엄마를 부탁해>에서-------

 

너는 내가 낳은 첫애 아니냐. 니가 나한티 처음 해보게 한 것이 어디 이뿐이간? 너의 모든 게 나한티는 새세상인디. 너는 내게 뭐든 처음 해보게 했잖어. 배가 그리 부른 것도 처음이었구 젖도 처음 물려봤구. 너를 낳았을 때 내 나이가 꼭 지금 너였다. 눈도 안 뜨고 땀에 젖은 붉은 네 얼굴을 첨 봤을 적에.... 넘들은 첫애 낳구선 다들 놀랍구 기뻤다던디 난 슬펐던 것 같어. 이 갓난애를 내가 낳았나.... 이제 어째야 하나 (..) 고단헐 때면 방으로 들어가서 누워 있는 니 작은 손가락을 펼쳐보군 했어. 발가락도 맨져보고. 그러구 나면 힘이 나곤 했어. 신발을 처음 신길 때 정말 신바람이 났었다. 니가 아장아장 걸어서 나한티 올 땐 어찌나 웃음이 터지는지 금은보화를 내 앞에 쏟아놔도 그같이 웃진 않았을 게다. 학교 보낼 때는 또 어땠게? 네 이름표를 손수건이랑 함께 니 가슴에 달아주는데 왜 내가 의젓해지는 기분이었는지. 니 종아리 굵어지는 거 보는 재미를 어디다 비교하겄니. (..) 봐라, 너 아니믄 이 서울에 내가 언제 와보겄냐.(93~94면)


너를 도시에 데려다주고 다시 시골집으로 돌아가는 밤기차를 탔던 그때의 엄마의 나이가 지금의 네 나이와 같다는 것을 너는 아프게 깨달았다. 한 여자. 태어난 기쁨도 어린 시절도 소녀시절도 꿈도 잊은 채 초경이 시작되기도 전에 결혼을 해 다섯 아이를 낳고 그 자식들이 성장하는 동안 점점 사라진 여인. 자식을 위해서는 그 무엇에 놀라지도 흔들리지도 않은 여인. 일생이 희생으로 점철되다 실종당한 여인. 너는 엄마와 너를 견주어보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엄마는 한 세계 자체였다. 엄마라면 지금의 너처럼 두려움을 피해 이렇게 달아나고 있지 않을 것이다. (275면)

나는 엄마처럼 못사는데 엄마라고 그렇게 살고 싶었을까? 엄마가 옆에 있을 때 왜 나는 이런 생각을 한번도 하지 않았을까. 딸인 내가 이 지경이었는데 엄마는 다른 사람들 앞에서 얼마나 고독했을까. 누구에게도 이해받지 못한 채로 오로지 희생만 해야 했다니 그런 부당한 일이 어떻게 있을 수 있어. 언니. 단 하루만이라도 엄마와 같이 있을 수 있는 날이 우리들에게 올까? 엄마를 이해하며 엄마의 얘기를 들으며 세월의 갈피 어딘가에 파묻혀버렸을 엄마의 꿈을 위로하며 엄마와 함께 보낼 수 있는 시간이 내게 올까? 하루가 아니라 단 몇시간만이라도 그런 시간이 주어진다면 나는 엄마에게 말할 테야. 엄마가 한 모든 일들을, 그걸 해낼 수 있었던 엄마를, 아무도 기억해주지 않는 엄마의 일생을 사랑한다고. 존경한다고.(262면)


이젠 당신을 놔줄 테요. 당신은 내 비밀이었네. 누구라도 나를 생각할 때 짐작조차 못할 당신이 내 인생에 있었네. 아무도 당신이 내 인생에 있었다고 알지 못해도 당신은 급물살 때마다 뗏목을 가져와 내가 그 물을 무사히 건너게 해주는 이였재. 나는 당신이 있어 좋았소. 행복할 때보다 불안할 때 당신을 찾아갈 수 있어서 나는 내 인생을 건너올 수 있었다는 그 말을 하려고 왔소.(..).... 나는 이제 갈라요.(236~37면)

 


 

출처 : 세계를 읽어주는 나뭇잎숨결
글쓴이 : 나뭇잎숨결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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