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사람들, 게으름에 관한 단상
그러나 놀라운 건 아무도 아랑곳하지 않는 다는 것!! 사실 임신 내내 옆집소리가 이렇게 잘 들려오면 우리 집에서 아기가 태어나 울면 어느 정도일까 많이 걱정이 되었는데요. 물론, 아이 우는 소리는 동네가 떠나가라 울려 퍼졌습니다. 아이를 안고 외출을 할 때 만나게 되는 동네 사람들에게 미안하다고 하자, 그들이 더욱 놀라며 대답하더군요. "왜? 아기인데 우는 건 당연하잖아?"
여튼, 이런 소리들에 잠에서 깨면 "이 나라 사람들은 잠도 없나? 부지런하다 부지런해.." 라는 말이 절로 나옵니다.
그러고 보니 이탈리아에 시집온 친구들이 결혼하고 가장 놀란 건 이탈리아 시어머니들의 부지런함이었다고 합니다. 일어나자마자 호텔급의 침대시트 정리. 이탈리아 사람들은 일어나서 다시 자러가기전엔 침대에 눕지 않습니다. 철저한 거실생활을 합니다.
하루에 두세 번 세탁기 돌리기에 점심 전에 대청소, 심지어 설거지를 하고 모든 식기는 닦아서 진열하며.. 빨래한 모든 옷가지들은 다림질합니다. 침대시트는 물론이고..양말까진 이해하지만...팬티에..게다가 수건까지!!! 것도 비대 수건까지!! 그리고 밥을 먹을 때마다 다시 장보기, 식사 때마다 식탁보 갈기
일하는 엄마들은 거의 5시쯤 기상해 침대시트 정리하고 아침 먹고 설거지에 주방정리까지 다하고 출근한다니 이탈리아 여인들이 세상에서 제일 부지런한 거 같다며 다들 혀를 내두릅니다.그리고 아이를 낳고서야 보이기 시작한 이탈리아 엄마들의 지극정성, 한국엄마들도 대단하다지만 이탈리아 엄마들도 그에 못지 않습니다. 제 생각엔 좀 더 유난스러운 거 같네요. 심지어 여행을 가도 아이들 이유식 준비를 위해 점심 시간과 저녁시간엔 다시 숙소로 들어갈 정도에다가 외국에 사는 친구는 이탈리아 물까지 공수해다가 이유식을 만들 정도로 극성스럽기도 합니다. 그리고 음식에 대한 지극정성은 그 아이들이 성인이 되어서도 끊임이 없습니다. 이탈리아 남자들의 "집 밥이 최고"와 "마마보이" 정신이 그냥 나오는 건 아니겠지요?
그럼 남자들은 내내 놀기만 하는가? 또 그런 것도 아니다 싶은 게 주말이면 아이 있는 집들은 항상 아이들과 함께 외출을 하고 요즘같이 무더운 날이면 거의 바다인데 해변에서 보면 물에 있는 건 언제나 아빠와 아이들, 엄마들은 언제나 썬텐입니다.요즘은 걷기 시작한 아들을 데리고 늦은 오후에 항상 놀이터에 갑니다. 이탈리아 놀이터는 벤치가 놀이터 주위로 둘러싸고 있어 엄마들은 벤치에 앉아 다른 엄마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아이들을 보게 됩니다. 그러면 아직 잘 걷지 못하는 아이들은 어김없이 아빠들 차지입니다.
그럼 결국 절약을 위해선 집안의 남자들이 나서야지요. 쉬는 날엔 가구 날라놓고 다음 쉬는 날엔 밤새 조립하고. 그래서 이야기를 나눠보니 다른 집 남자들도 주말이면 여기 수리 저기 수리 바쁩니다. 심지어 날 맞춰 이사한 친구 집 친척집에 품앗이도 가구요.
문득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보니 이탈리아 여자들도 남자들도 참 부지런하구만 되뇌이다가..어? 이탈리아 여행오면 대부분 이들이 하는 말이 "이탈리아 사람들은 조상 잘 만나서 게으르다." 그리고 저도 처음 이탈리아에 살기 시작했을 땐 인터넷 연결에만 1년 가까이 걸리다 보니 정말 이들의 느림은 이해 할 수 없었었는데 결국 8년 넘게 살다보니 집안일이 너무 많은데 어떻게 밖의 일까지 빨리 처리할 수 있으랴…라고 받아들이게 되어버렸습니다.
한국 티브이 프로를 보면 요즘 많이 나오는 내용들이 "집에서 아빠자리가 없다." 라는 걸 보면, 밖의 일에 더 집중을 하다보니... 집 안의 역할에 소홀해지는 경우겠지만.. 이탈리아는 집 안의 일에 더 집중하다보니 밖의 일에 소홀해진다기 보다 덜 급한 건 아닌지요.
8년만에 이탈리아는 드디어 인터넷이 일년에서 보름만에 연결이 되는 엄청난 나라로 도약(....;;)했습니다.
하지만 4개월째 고장난 보일러는 여전히 고쳐지지 않고 있고.. 드디어 다음 주 월요일이면 새보일러가 들어온답니다. 12시부터 2시사이에 사람이 온다니 또 월요일 하루 종일 기다리고 있어야하겠지만이 처리만 되면 이젠 만사 오케이입니다. 4개월쯤 되니까 머리를 감으면 머리가 터질만큼 차가운 물에 샤워하는 것도 거뜬합니다.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니까요.
여전히 욕나오는 일들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나는 이탈리아지만 작년엔 출산을 앞두고 이런 혜택도 받은 적이 있습니다. 이탈리아 의료보험이 만기가 되어 갱신을 하러가는데 이 나라가 서류처리에만 몇 달이 걸리는 터에 출산은 임박해오고 잔뜩 걱정을 안고 관공서에 갔더니 앉은 자리에서 5분도 안되어서 의료보험카드를 갱신해 주었습니다. 늦게 처리될까 걱정했다는 저에게 이탈리아 아저씨는 만삭의 제 배를 보고는 윙크한번 해주시며 걱정을 왜 하냐 축하한다.그리고 악수 한번에 모든 것이 완료되었습니다. 심지어 외국인은 의료보험카드 만들 때 100유로 이상의 돈을 내야하는데 임산부는 무료더군요.
이들에게 인터넷은 당장 필요한게 아니고 보일러는 찬물에 샤워좀 하면 되는 거지만 임산부가 걱정근심하며 의료혜택을 받지 못하는건 큰일인거겠죠.
영화평론가 이동진씨의 [밤은 책이다]를 읽다 보니 이런 구절이 마음을 끕니다."업적이란 새로운 것을 집요하게 시도할 때 가능성이 더 커지는데, 일상은 새로운게 아니라 늘 해오던 익숙한 일들을 반복하는 일입니다. 그러니 하루하루의 삶에서 행복을 발견할 줄 아는 능력과 특별한 성과를 향해 전력질주할 수 있는 능력은 서로 이율배반적이라고 할까요."그래서 미국의 사상가 랠프 에머슨은 "명성과 휴식은 한 지붕 밑에서 살 수 없다"고 했던 것이겠지요.그러니 다시 한번, 업적 대신 일상이 있는 우리의 삶이 얼마나 다행스러운가요.
하지만 세상은 바뀌고 점차 이탈리아 사람들도 세상의 변화에 맞춰나가야겠지만 그들의 융통성 없는 게으름이 오래도록 지속되었으면 하는 것은 저의 욕심이겠죠. 뭐 그닥 세상의 소리에 귀기울이지 않는 이들이라 변한다해도 아주 천천히 이루어지겠지만요.
출처:유로자전거나라 (www.eurobik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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