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

영성의 대가/ 십자가의 성 요한

tlsdkssk 2014. 6. 20. 04:40

영성의 대가들

 
십자가의 성 요한(John of the Cross)

 

 

 

 

십자가의 성 요한(1542-1591)은 아빌라의 성녀 데레사와 함께 가르멜 영성학파를 든든히 지탱시켜 주는 두 개의 기둥 역할을 하고 있다. 같은 시대의 유사한 상황에서 생활했던 그들은 생애, 활동 및 가르침에 있어서 매우 밀접한 관계 중에 있으며 상호 협력자였다. 십자가의 요한은 그의 공적만큼 널리 알려져 있지 않았고 그의 저서도 그리 많이 읽혀지지 않았다. 그 이유는 그가 완덕의 길에 진보되어 있는 사람들을 위해서 글을 썼으며, 초탈과 정화에 대한 그의 가르침이 일반 그리스도인들에게 너무 고차원적이기 때문이다. 그가 쓰는 언어들 또한 매우 미묘하고 형이상학적이어서 일반적으로 이해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의 가르침과 저서들 그리고 영성을 고찰하기에 앞서 그의 생애를 살펴보기로 한다. 


 


 


1. 생애

 

요한 데 예빼스(Juan de Yepes : 십자가의 요한의 속명)는 1542년 스페인의 아빌라 근처의 조그만 마을 폰티베로스에서 아버지 곤잘로 예뻬스와 어머니 카타리나 사이의 3형제중 막내로 태어났다. 요한이 일곱 살 되던 해, 직조업을 하던 아버지가 병고에 시달리다가 세상을 떠났다. 그로 인해 경제 형편이 어려워진 가정에서 어린 요한은 극도로 가난한 삶을 경험했다. 그의 아버지는 부유한 가문출신이었지만 가난한 어머니와의 결혼을 반대하는 집안의 권고를 따르지 않았고, 안정되고 평안한 삶을 포기하여 충실과 희생의 영웅적인 사랑을 선택하였다. 어린 요한은 어머니와의 결혼을 위해 물질적 부유와 가문의 사회적 명성 등을 버렷던 아버지의 사랑의 결단에 대한 이야기를 자랑스러운 마음으로 들으면서 성장했다. 이로써 요한은 사랑의 우선적인 가치에 대해서 배우게 되었는데 그것이 훗날 하느님과의 합일을 위한 사랑의 영성의 바탕을 이루게 했을 것임에 틀림없다.

 

요한이 아홉 살 되던 1551년에 온 가족은 고향을 떠나 무역도시인 메디나 델 캄포로 이사하였다. 그곳에서 극빈자들을 위한 기술학교에 들어가 목공, 재봉, 미장 등 기술과 함께 기초교육을 받았다. 또한 그는 성당의 여러 봉사 업무와 미사 중 복사할 책임을 맡아 수행하면서 좋은 신심을 키웠다. 그 후 요한은 이 도시의 한 자선 병원에서 간호사로 일하게 되는데 환자들을 돌보는 일 뿐 아니라 그들을 위한 구호금을 모으기 위해 구걸을 하기도 했다. 인격적, 신앙적 형성을 위해 중요한 청소년 시기에 요한은 육체적•심리적•영적으로 고통받고 있던 많은 환자들과 주변 사람들을 만나고 함께 지내면서 소중하고 유익한 체험들을 하였다. 그들과의 관계 안에서 그는 고통을 겪으시는 하느님, 기뻐하시는 하느님을 발견하게 되었고 그분을 가까이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한편 충실하게 일하며 진지하게 생활하던 요한에게 병원장 알바레즈가 체계적으로 공부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 주어 그는 1559년 예수회 수도원에서 경영하는 학교에 입학하였다. 그는 거기에서 4년간 문법, 수사학, 철학, 형이상학 등을 열심히 공부하며 미래교회의 학자로서의 기반을 닦게 되었다. 요한의 직업은 자신과 가족들의 경제적 안정을 위해 큰 도움이 되었다. 그리고 요한을 눈여겨 보며 신임하던 병원장은 그가 사제가 되어 병원의 원목으로 활동해 주길 희망했다. 그러나 그에게 강하게 작용한 수도 성소는 그러한 인간적 안정 대신 가르멜 수도 생활을 선택하게 하였다. 그는 21세 되던 1563년 「성녀 안나 수도원」에 입회하였다. 그는 공동체의 규율을 철저히 준수하며 1년 수련 기간을 지낸 후 1564년 5월 21일에 마티아스의 요한이란 이름으로 수도서원을 하였다.

 

서원 후 스페인 학문의 중심지인 살라망카로 가게 된 요한은 그곳에서 철학, 신학 등 학문에 전념하였고, 당시 트리엔트 공의회에서 주요 역할을 담당했던 석학들까지 참여하던 신학적 학문의 토론장에서 많은 것을 배우며 하느님을 향한 생활에 열중하였다. 1567년 사제품을 받고 첫 미사를 봉헌하기 위해 「성녀 안나 수도원」에 갔을 때 마침 개혁 수녀원을 창립하러 그곳 메디나에 온 아빌라의 예수의 데레사와 만나게 된다. 요한은 데레사가 초창기의 원 회규 정신으로 되돌아가는 생활로 여자 가르멜 수도회 뿐 아니라 남자 수도회도 개혁하고자 하는 구상을 듣게 되었다. 좀 더 엄격한 수도 규칙을 준수하던 카르투시오회로 옮길 마음을 품고 있던 요한은 데레사의 의도에 공감하며 때를 기다리기로 했고 그 해 11월에 신학 공부를 계속하기 위해 살라망카로 되돌아갔다. 1568년 여름, 예수의 데레사가 발랴도리드에 또 하나의 개혁 수녀원을 세우려 하자 그 여정에 요한 수사도 동참하여 데레사가 작성한 규칙을 따르는 새 생활 양식을 논의하며 몇 주간의 단기 수련을 받았다.

 

1568년 11월 28일 마침내 초기규칙을 지키기로 선언하는 남자 개혁 수도원이 아빌라의 두루엘로에서 창립되었다. 요한은 다른 두 동료와 함께 매우 가난하고 검소한 생활 안에서 더욱 깊은 잠심과 단순성을 지니고 살았다. 그들은 다시 서원을 했으며 때 요한은 그의 이름을 「십자가의 요한」이라 결정하였다. 그들의 주변의 마을에 제한적이나마 사목적 봉사도 하였다. 처음부터 십자가의 요한은 입회자, 수련자들의 양성 업무, 수녀들의 고해성사 및 영적지도 업무에 헌신적이었다.

 

1571년 10월 예수의 데레사가 아빌라의 「강생 수녀원」의 원장으로 임명되자 그녀는 수녀원 규율을 바로잡는 일부터 시작하였고, 십자가의 요한을 수녀원 고해신부로 초빙하였다. 그는 성녀가 원장으로 있던 2년 동안 온화함과 깊은 체험적 지식으로 완덕을 향한 자기부정의 가르침을 펼치며 수녀원의 쇄신과 양성을 도왔다. 성녀가 임기를 마치고 떠난 후에도 그는 몇 년간 더 그 수녀원 곁의 오두막집에 기거하면서 매일 수녀들을 위해 성사 집전 및 영적 지도 업무를 수행해 나갔다.

 

 

 

세고비아 가르멜수도원에서의 성인의 신비체험 그림

 

 

그러나 십자가의 요한을 개혁운동의 선구자로 예의 주시하던 완화파에서는 1577년 12월 2일 수도회의 질서 문란과 장상에 대한 불순종을 주도하며 문제를 야기시킨다는 이유로 요한을 납치, 톨레도의 수도원 골방에 감금하였다. 이 감옥과 같은 곳에서 극도의 모욕과 멸시를 받으며 생활하였다. 거기다가 하느님의 부재감을 체험하면서 그의 영혼은 극적으로 고통스런 번뇌로 신음해야 했다. 한편 그는 하느님께 대해 전혀 다른 형태의 체험을 하게 된다. 그것은 「어두운 정화의 밤」이라고 할 수 있는 것으로서 그의 영혼은 어둔 밤을 거치면서 하느님을 만나게 된 것이다. 그의 감금 생활은 부정적인 것만이 아니었고 오히려 결정적으로 유익한 체험을 하도록 한 계기였다. 그는 거기에서 강렬한 신비 체험을 하였고 영적으로 강화된 사람으로 변화되었으며 영적 및 문학적 작업 활동을 시작할 수 있었던 것이다.

 

십자가의 요한은 1578년 여름 밤 감금된지 9개월만에 톨레도 수도원 탈출을 성공한다. 이 후 안달루치아의 「갈바리오」수도원 원장으로 임명되었고 「가르멜의 산길」과 「영혼의 노래」를 집필하게 된다. 1579년엔 그가 바에자의 신학원장으로 임명되어 그곳에서 2년간을 지냈는데 그는 맨발의 가르멜 회원들이 생활의 중심인 묵상기도를 성실히 해야 할 것과 전례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1588년 십자가의 요한은 총회에서 수석자문 및 세고비아 수도원장으로 임명되어 고향 카스틸리야 지방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1590년, 1591년 6월 등의 총회에서 그는 수도회 자문회에 수녀회가 예속되는 것과 총장이 수도 공동체에 대하여 지나친 법률적 조치를 취하는 점에 반대하였던 이유로 모든 직책에서 해임되어 평수사로 돌아가게 되었다. 1591년 9월초 그는 열병으로 눕게 되었고 자신을 반대하는 이들의 모욕과 멸시 속에서 고통을 당하였다. 일생 동안 자기의 십자가를 기꺼이 지고 주님을 충실히 따르던 십자가의 요한은 같은 해 12월 14일 주님의 부르심을 받고 이 세상을 떠났다.

 

그는 1675년 1월 15일 교황 클레멘스 10세에 의해 시복되었고 1726년 12월 27일 교황 베네딕도 13세에 의해 시성되었다. 그리고 1926년 8월 24일 교황 비오 11세는 십자가의 성 요한을 「교회박사」로 추앙하며 선포하였다.

                                                                                                                            [가톨릭신문, 2000년 6월 18일]

 

 

 

아빌라의 성녀 테레사와 십자가의 성 요한


 

2. 저서들

 

십자가의 성 요한은 자신이 겪은 하느님 사랑의 체험을 시적인 언어로 묘사하였다. 그리고 그 시들을 신학적 반성을 통해 해설하면서 기록하였다. 그것이 그가 남긴 유명한 저서들로서 교의적 및 영성적으로 풍요로운 가치를 지닌다. 「영혼의 성」, 「가르멜 산길」, 「어둔밤」, 「사랑의 불길」 등 작품 외에 서간들과 시, 「잠언과 권고」, 「영적 경계」 등 소품들이 있다. 대부분의 작품들은 하느님을 찾는 이들의 요구에 따라 영적 지도를 위하여 쓰여졌다.

 

성인은 사랑이신 하느님과의 완전한 일치인 성성(聖性) 또는 완덕에 나아가고자 하는 이들에게 자신이 체험을 통해 깨달았으며 또한 걸어가고 있는 길을 글을 통해 설명하면서 안내하고자 한 것이다.

 

1) ‘가르멜의 산길’ - 하느님과의 합일위해 걸어야할 십자가의 길 제시

「가르멜의 산길」과 「어둔 밤」은 같은 시(詩)를 기초로 해서 해설하고 있기 때문에 분리될 수 없을 만큼 서로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 그러나 「가르멜의 산길」이 영혼이 하느님과의 일치를 해나가는 데 있어 능동적 측면에서 영적 진보를 고찰하는 데 비해서 「어둔 밤」은 수동적 측면에서 영적 진보를 다룬다.

 

「가르멜의 산길」은 영혼이 은총의 도움으로 하느님과의 합일에 이르기 위하여 걸어야 할 십자가의 좁은 길을 제시하며 그에 이르는 방법을 세 권으로 구성하여 설명하고 있다. 제1권에서는 인간의 노력에 따른 능동적 정화로서 감성의 정화와 영의 정화를 다룬다. 제1권의 12장까지는 「감각의 맛」에 대한 고행의 필요성을 역설한다. 즉 영혼이 하느님께 나아가는 데 인간적인 감수성을 제거해야 한다는 것이다. 제13장에 이르러서는 감성의 능동적 밤에 관해 말한다. 이것은 영성 생활의 초보자에게 절대적으로 필요한 감성적 고행에 관한 것이다. 여기에 고행의 근본적인 지침들이 종합되어 있다.

이 책의 제2권은 「이성(理性)의 밤」에 대하여 그리고 제3권은 「기억의 밤」과 「의지의 밤」에 대하여 다룬다.

 

2) ‘어둔 밤’ - 신앙인들의 영적변화 그 주도권은 하느님께 있어

이 책은 「가르멜의 산길」의 후속편으로서 같은 시를 기초로 하여 영성적 현실의 다른 측면을 다루고 있다. 이 작품의 주안점은 하느님께 나아가는 신앙인들에게 영적 변화가 일어나는데 그 주도권은 하느님이 가지고 계시다는 것이다. 하느님께서 친히 영혼 안에 업적을 이루시는 것이다. 그러나 하느님의 주도권은 은총에 대한 인간의 응답 자세인 노력을 또한 요구하며 그것을 전제한다.

 

「어둔 밤」의 해설은 「가르멜의 산길」의 첫 부분에 있는 욕망에 대한 연구를 덧붙이면서 영성 생활의 초보자들이 범하기 쉬운 7가지 죄를 서술하면서 시작한다. 저자는 여기서 죄란 덕을 거스르는 행위라는 것을 시적으로 표현하며 논하고 있다. 「어둔 밤」의 서문 전체는 죄의 잘못을 깨닫는 영혼들이 밤을 정화시키는 시련을 원하도록 유도하고 있다. 이 책의 제1권 8장은 「가르멜의 산길」 제1권 13장에서처럼 이중적인 정화 즉 감각의 정화와 영의 정화를 다룬다.

 

시에 묘사된 상징을 실현하는 진정한 밤은 바로 영의 밤이다. 감각의 밤의 영성적 가치는 다만 진정된 밤을 준비하는 과정일 뿐이다. 영의 밤이야말로 인간의 참다운 사랑의 변화를 위한 구성 요소이다. 영의 밤은 하느님을 관상하고 사랑하는 가운데 온전한 정화와 쇄신의 완성을 가져다준다.

 

3) ‘영혼의 노래’ - 하느님과 일치 위한 그리스도 역할 고찰

이 작품은 톨레도 수도원에서 연금생활 중 하느님의 부재를 뼈 속 깊이 느끼며 매우 어두운 밤을 체험한 저자가 내부에서 북받치는 하느님에 대한 사랑을 성서 「아가」의 형태를 빌어 시적 언어로 표현한 것이다. 이 작품은 성인의 저서 중 영적 가르침의 핵심을 이루는 것으로서 영혼의 능동적이며 수동적인 정화의 종착점을 보여준다. 이 책의 첫 부분은 깊은 밤, 고뇌와 고통의 밤, 그러나 동시에 영혼이 아침의 여명을 향해 진보해 나가는 밤을 묘사하고 있다. 그것은 「어둔 밤」에서 이야기한 고통의 일부를 상기시키면서 아울러 응답이 있어야 함을 강조한다.

 

저자는 이 책에서 영혼 안에 하느님의 현존, 고통의 긍정적인 면, 하느님과의 일치를 위한 그리스도의 역할 등을 논하면서 영혼의 영적 진보의 과정을 밝히고 있다. 영적 진보는 하느님과의 일치 과정으로서 그것은 그분께 대한 사랑의 질과 비례한다. 완전한 일치는 영적 결혼이며 이 일치가 영성 생활에 결정적 역할을 한다. 세례성사의 생활은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느님을 언제나 보다 깊이 사랑하도록 요구한다.

 

4) ‘사랑의 산 불꽃’ - 높은 단계의 묵상중에 지은 시를 註解

이 작품은 높은 단계의 묵상 중에 지은 시를 주해한 것으로서 「어둔 밤」이나 「영혼의 노래」와는 내용이나 문체에 있어 매우 다르게 다루고 있다. 십자가의 요한은 영적 딸인 페날로자의 안나를 위해 보름 동안 이 주해를 썼다. 이것은 영적 혼인으로 이루어진 하느님과의 일치의 깊이에 대해 쓴 것이다. 여기서 영혼은 신적 생명에 지속적으로 참여하고 사랑의 본질에 더욱 가까워져 깨끗이 정화되고 안정된 상태에 놓여 있음을 노래한다. 「불꽃」은 영혼의 깊은 곳에서 거행되는 성령의 축제를 뜻한다. 이 때에 영혼은 성령의 도유의 은총을 받게 되고 하느님의 사랑에 깊이 잠기어 영적 혼인에 이른다. 이 작품의 해설 전체 내용은 성령께 대한 찬미가라 할 수 있다.

 

제3장에서는 「눈 먼」 무지한 영성 지도자들의 잘못으로 인해 영혼들이 겪는 위험과 방황을 우려하며 경고한다. 그것은 당시 16세기 스페인의 영성적 난국의 반영이라 할 수 있다.

 

5) 서간들 - 현재 전해지는 것은 32편

십자가의 요한이 쓴 많은 서간들 중 현재 전해지는 것은 32편이다. 그중 25편은 영적 지도를 위해 쓴 것들이다. 서간들의 공통적 특징은 아주 현실적이고 체험적인 면을 잘 나타내고 있는데, 언제나 하느님께 대한 절대적인 신뢰와 그 신뢰 속에서 완전한 포기를 통한 마음의 이야기들을 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의 가르침은 하느님께 대한 사랑의 열망으로 가득 차 있다. 그러면서도 그의 서간들은 문학적으로도 매우 수준 높은 작품들이다.

 

6) 시 - “스페인에서 가장 뛰어난 시인” 평

그가 쓴 시들은 20여 편인데 그 시들은 영성적인 면에서 뿐 아니라 문학적인 가치로도 수준 높은 것이다. 스페인 한림원에서 십자가의 성 요한을 스페인에서 가장 뛰어난 시인의 자리에 설 자격을 주기에 충분하다고 인정하며 칭찬하였던 것이다. 그의 시들은 하느님 체험을 문학적으로 독창성 있게 그리고 조화 있게 표현한다. 후대의 사람들은 그의 시들에서 하느님의 체험을 심리적 및 신학적 측면에서 분석하며 많이 연구해 왔으며 큰 유익을 얻어냈다.

 

7) 기타 소품들

십자가의 요한의 소품들 중 전해지는 것들은 영적 보배라고 할만 한 「잠언과 권고」가 있고 베아스 수녀에게 쓴 「영적 경계」, 프랑소와즈 수녀에게 써 보낸「권고」 그리고 한 수사에게 완덕에 도달하기 위해 준 「조언」등이 있다.

                                                                                                   [가톨릭신문, 2000년 6월 25일]

 

 

성 요한이 그린 '완덕의 산'

 

 

완덕에 도달하기 위해 한 수사에게 해준 조언

(출처: 십자가의 성 요한 소품집)

 

1. 거룩한 형제는 짧은 말로 많은 것을 내게 청했습니다. 그러러면 시간과 종이가 숱하게 필요할 텐데, 그 어느 것도 나는 지니지 못했기에 되도록 간략하게 짧으면서도 많은 뜻을 포함하고 이것을 지키는 이가 높은 완덕에 다다를 수 있는 몇 가지 점(조언)을 써볼까 합니다.   

   참다운 수도자가 되고, 하느님 앞에 자기가 지키겠다고 약속한 신분이 요구하는 의무를 다하여 덕에 진보하며, 성령의 위로와 달가움을 맛보고 싶은 이는 조심에 조심을 거듭하여, 다음 네 가지 권고, 곧 인종忍從, 억제, 덕의 수련, 몸과 정신의 고독을 실천하지 않고선 도저히 거기 도달할 수 없을 것입니다.

  

2. 첫째 권고 - 인종忍從을 지키기에는 마치 수도원 안에 딴 사람이 아무도 없는 듯이 살아야 합니다. 따라서 수도 단체에 생기는 일이나 수사들 한 사람 한 사람에 관한 것에 말과 생각으로 간섭해서는 안 되고 저들의 장점이나 단점 또는 그 성질 등에 관심을 두어서도 안 됩니다. 비록 세상이 무너진다한들, 거기에 정신을 팔거나 상관해서는 안 됩니다. 죽는 이들의 부르짖는 법석에 머리를 돌린 탓으로 소금돌이 된 롯의 아내를 생각하여 영혼의 평화를 보존하기 위해서입니다.

   이것은 아주 엄중하게 지켜야 하는 것이, 이렇게 하면 많은 죄와 불완전을 벗어나고 영혼의 평화와 고요를 간직하며 하느님과 사람들 앞에 장족의 진보를 거두기 때문입니다. 이 점에 크게 조심해야 합니다. 이것은 아주 중요하니 숱한 수도자들이 이것을 지키지 않았기에 자기 나름대로의 덕행과 신심 행위로 덕을 보기는커녕 뒷걸음쳐서 악에서 악으로 굴러 떨어졌습니다.

 

3. 둘째 권고 - 억제를 실천하여 진보하기 위해서는 다음 진리를 진지하게 마음에 되새겨야 합니다. 즉, 그대가 수도원에 온 것은 오로지 여기서 단련되고 수련을 쌓기 위해서이고, 건물 안에 놓여 지기 전에 닦이고 새겨져야 할 돌 같은 것이라는 것, 그러기에 수도원의 모든 이는 그대를 새기고 닦기 위해 하느님이 거기 두신 직공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어떤 이는 그대가 듣기 싫어하는 말로써 단련시킬 것이고, 어떤 이들은 거슬리고 싫은 일을 하여 그 행위로써, 또 어떤 이들은 그 행동거지로 성가시게 굴며 싫증을 주는 그 성격으로써, 또 어떤 이들은 털끝만큼도 그대롤 존중할 줄 모르고 사랑하지도 않는다고 그대에게 느끼게 하고 생각하게 함으로써 단련시킬 것입니다.

   우리가 수도원에 온 것은 이렇게 온갖 억제와 성가심으로 닦이어 하늘에 맞갖게 되기 위함임을 깨닫고, 하느님 사랑으로 침묵하면서 내적 인내로써 참아 견디어야 합니다. 만일 이런 뜻이 없다면야 아예 수도 생활에 들어올 턱이 없으니 말입니다. 차라리 세속에 남아서 즐거움과 명예와 신용과 안락을 찾고 있었더라면 좋았을 것을.

 

4. 그리고 자기의 의무를 다하고 참다운 겸손과 내적 고요와 성령 안에서 기쁨을 얻어 누리는 데에는 이 둘째 권고가 수도자에게 절대로 필요한 것입니다. 이것을 실천하지 않을진대 그는 수도자 될 줄도 모르고 무엇 때문에 수도원에 들어왔는지조차 모르는 것입니다. 또 그리스도를 찾을 줄도 모르고 자신을 찾고 있을 따름이며, 제 영혼의 평화도 얻지 못하는가 하면 죄를 버릴 수도 없어 자주 마음이 어지러워질 것입니다. 왜냐하면 수도 생활에는 반드시 이런 기회가 부족하지 않고 하느님도 이런 것이 없기를 원하지 않으십니다. 하느님이 이 생활에로 불러 주심은 금이 불과 망치로 맑아지듯 우리들을 시험하여 말끔히 씻으시기 위함이니 인간이나 악마가 주는 시련과 유혹, 고뇌와 비탄의 불이 없어지지 않아야 합니다. 그리고 수도자는 언제나 이것을 하느님의 뜻에 합치면서 참아 나가도록 힘쓰고 이런 것에서 자기를 수련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 지기를 원하지 않은 탓으로 시련 중에 하느님을 기쁘시게 해드리지 못하고 이 때문에 수도원에 들어왔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기에 형제들을 참아 줄 줄 모르고 마침내 결산의 날이 오면 얼굴을 붉히고 당황할 것입니다.

 

5.  셋째 권고 - 덕행을 수련하기 위해서는 남들이 어떻게 여길까 일체 생각하지 말고 오로지 하느님만을 위해서 순명을 실천하고 수도 생활의 모든 행동에 착실해야 합니다. 속아 넘어가지 않기 위해 맡은 일의 좋고 하찮음으로 보지 말고 단지 하느님을 위해서 한다는 이유만을 보고 하느님께 봉사한다는 한 가지 목적을 갖고 해야 합니다.

 

6.  이것을 굳게 다짐하고 성실히 실천하여 재빨리 덕을 쌓으려면 언제나 쉬운 것보다 어려운 것을, 부드럽고 수월한 것보다 거친 것을, 일이 안겨주는 즐거움과 마음에 드는 것보다 오히려 괴롭고 싫은 것에 마음을 쓰고, 가벼운 십자가(짐)를 골라서는 안 됩니다. 하느님을 위해서 짊어질 때는 그 짐이 크면 클수록 더욱 가볍습니다. 편리하고 편안한 것은 언제나 형제들이 먼저 하도록 내어주고 끝자리에 있어야 합니다. 더구나 진심으로 이렇게 해야 하고 영성 생활에서 가장 위대하게 되는 길이 바로 이것입니다. 하느님이 복음 안에 말씀하셨듯이, 즉 qui se humiliat exaltabitur, 즉 스스로를 낮추는 이는 높아질 것이다(루카 14, 14)

 

7.  넷째 권고 - 고독을 실천하려면 세속 것은 이미 끝났다고 보아야 합니다. 마지못해 이런 일에 손을 쓰게 될 때에는 마치 없는 것처럼 이탈로서 행동해야 합니다.

 

8.  수도원 바깥 사정은 온통 생각지 말아야 할 것이, 하느님은 거기서 우리를 빼내시어 벗어나게 해주셨기 때문입니다. 제삼자가 할 수 있는 일을 자기가 해서는 안 될 것이, 아무도 보지 않고 아무에게도 보이지 않기를 원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하느님께서 모든 이가 말한 그 무익한 한 마디도 보고를 요구하신다면, 하물며 온 생애를 고스란히 하느님께 바친 수도자에게는 심판 날에 그 모든 말의 보고서가 어떻겠는지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9.  이렇게 말한대서 자기가 맡은 소임과 순명이 명하는 모든 것을 힘껏 조심을 다해서 완수하지 말라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아무런 잘못이 없게 하라는 것입니다. 잘못은 하느님도 순명도 원하지 않으니 말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기도에 머물러 있고 육체적인 일을 할 동안에도 기도를 버려서는 안 됩니다. 먹든 마시든 말을 하는 혹은 바깥사람들과 교섭을 하든 그 밖에 모든 일에 하느님을 찾고, 마음의 애정을 그분께 쏟아야 합니다. 이것은 내적 고독을 지키는 데 반드시 필요하고, 이 고독은 영혼이 하느님 밖의 딴 생각에 머물지 말고 또 이 짧고도 가련한 인생의 지나가버리는 것들을 오로지 잊어버리기를 요구합니다. 어떻게 하면 하느님을 보다 더 잘 섬겨 우리 회의 의무를 한층 더 충실히 다할 수 있을까 하는 것밖에는 아무 것도 알려고 들지 말아야 합니다.

 

10.  만일 형제가 이 네 가지 권고를 조심조심 잘 지키면 짧은 시일에 완전하게 될 것이고, 이 네 가지는 서로 굳게 받쳐주고 있으므로 만일 그 하나가 빠지기만 한다면 다른 점에 있어서 진보하고 수덕한 것마저 잃어버리고 맙니다.

 

 

 

 

성 요한이 그린 십자가에 달린 예수님 

아빌라 엔카프나씨온수녀원 소장

 

 

가톨릭 내의 개혁운동을 지향하던 성요한은 

고난의 십자가를 져야만 했다. 온갖 박해를 받던 그가

오지의 성당에서 기도할 때, 문득 2층 창문 아래로 예수님의 모습이 보였다.

십자가에 달린 모습 그대로 였다. 그는 자신도 모르게

지니고 있던 연필로 그 모습을 그렸다. 

 

살바도르 달리는 성 요한의 스케치에 영감을 얻어

위에 계신 하나님이 바라보는, 십자가에 달린 아들의 모습을 그렸다. 

 

 

 십자가의 그리스도 ; 살바도르 달리 (1951년)

 205 x116cm / 미국 글래스고우 미술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