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사적으로 [돈 키호테]는 ‘최초의 근대 소설’로 평가된다. 기사를 선망하는 주인공이 시대착오적인 행동으로 비웃음만
산다는 내용만 보아도 알 수 있듯이, 시대적으로는 중세에서 근대로의 이행을, 사조적으로는 낭만주의에서 사실주의로의
이행을 보여주는 작품으로 평가된다. 나아가 이 소설은 독특하고 파격적인 서술 방식으로도 유명하다. 제1부에서는 이야기
도중에 갑자기 저자가 개입하더니, 이 작품은 사실 자기가 어느 아랍인 작가의 책을 번역한 것에 불과하다고 주장한다.
제2부에서는 아예 주인공들까지 합세하여 ‘[돈 키호테]라는 소설’을 놓고 왈가왈부하는 대목이 나오는데, 일각에서는 이를
현대적인 ‘메타 픽션’의 선구적인 사례로도 설명한다.
실제로 돈 키호테의 광기는 오히려 과거보다 현대의 개념으로 더 잘 설명될 수 있다. 비유하자면 그는 이 세상을 상대로
일종의 ‘코스프레,’ 또는 ‘게임’을 하는 셈이다. 사람들은 그를 ‘광인’으로 여기지만, 종종 건전한 판단을 내리는가 하면 정말
위험한 상황에선 몸을 사리는 그의 모습을 보면 꼭 그렇지도 않다. 어쩌면 그는 이 세상을 무대로 자기만의 ‘놀이’를 하는
사람이며, 워낙 진지하게 몰입하기 때문에 도리어 ‘광인,’ 또는 요즘 식으로 ‘폐인’ 취급을 받는 것이 아닐까. 이처럼 ‘놀이’를
통해 또 다른 자아상을 실현한다는 점에서 돈 키호테는 현대인과 무척이나 비슷하다. 처음에는 유머 소설로 간주되던
[돈 키호테]는 18세기와 19세기를 거치며 이상과 현실의 갈등, 인간의 실존적 고뇌 같은 무거운 주제를 담은 작품으로 해석
되었다. 하지만 서머셋 몸의 지적은 세월이 흐르면서 우리가 세르반테스의 애초 의도에서 점점더 멀어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돈 키호테의 (...) 갖가지 불행을 목격하고 (...) 웃음을 터트리지 않으면 안 되지만, (...) 우리는 그 사람과 같은 시대 사람들
처럼 웃지 못한다. 우리는 지나치게 신경이 예민하고 섬세해졌기 때문에, 그를 바보처럼 비웃고 놀리는 농담이 때로는
잔인하게 느껴져서 즐길 수가 없기 때문이다.”(김정진 옮김)
세르반테스와 인간의 또 다른 '전형' 돈 키호테의 영향력

셰익스피어의 희곡이 인간의 수많은 ‘전형’을 그려낸 것처럼, 세르반테스의 돈 키호테 역시 또 다른 ‘전형’을 만들어냈다.
에스파냐 사람의 기질을 집약한 인물로 평가되는 돈 키호테는 또한 16세기의 전성기 이후 강대국의 지위에서 격하된 에스
파냐의 상처 입은 자존심을 상징하게 되었다. 특히 20세기 초에는 돈 키호테 같은 불굴의 의지를 발휘해 새로이 도약하자고
역설하는 민족주의적 주장도 나왔다. 미겔 데 우나무노가 [생의 비극적 의미](1913)에서 돈 키호테를 가리켜 에스파냐의
구세주라고 격찬한 것이며, 오르테가 이 가세트가 [돈 키호테의 성찰](1914)에서 풍차를 향해 돌진하는 돈 키호테의 기개를
예찬한 것이 대표적이다. 러시아의 작가 이반 투르게네프는 [햄릿과 돈 키호테](1860)라는 유명한 강연에서 ‘햄릿형
인간’과 ‘돈 키호테형 인간’을 구분했다. “이 세상에는 햄릿형의 인간이 존재하며, 이런 유형의 인간은 뛰어난 지각력과 (...)
깊은 통찰력을 지녔습니다. 그러나 (...) 햄릿형의 인간은 이 세상과 민중에 대하여 기여하는 바가 하나도 없으며, 실천력의
결여로 인해 비난을 받습니다. 반면 절반쯤 광인이라고 할 수 있는 돈 키호테형의 인간은 하나의 목표만을 추구하며 (...)
그런 까닭에 이 유형의 인물만이 인류 역사 발전에 기여하여, 민중을 이끌어나갈 수 있는 것입니다.”(이철 옮김)
[돈 키호테]는 문학 이외의 다른 예술 분야에서도 큰 영향력을 발휘했다. 미술 작품으로는 무엇보다도 구스타브 도레의
유명한 삽화를 빼놓을 수 없다(단테의 [신곡], 셰익스피어의 작품집, 그리고 성서 삽화와 함께 그의 대표작으로 손꼽힌다).
오노레 도미에, 파블로 피카소, 살바도르 달리 같은 화가들도 이 유명한 소설을 소재로 한 작품을 남겼다. 음악 분야에서는
헨리 퍼셀, 게오르크 필립 텔레만, 펠릭스 멘델스존, 쥘 마스네, 모리스 라벨,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등등 저명한 음악가들이
저마다 [돈키호테]에서 소재를 취한 작품을 남긴 바 있다. 현대에 나타난 [돈키호테]의 각색 작품 가운데 특히 주목할 만한
것으로는, 우리나라에서도 [뮤지컬 돈 키호테]라는 제목으로 소개된 [라 만차의 사나이](1964)가 있다. 데일 와서만의
희곡에 미치 리와 조 대리언이 작사 작곡한 노래를 덧붙여 만든 뮤지컬로, 세르반테스의 감옥 생활과 [돈 키호테]의 줄거리
를 교묘하게 접목시킨 액자 형식으로 이루어져 있다. 극중에서 세르반테스/돈 키호테가 부르는 ‘불가능한 꿈’이라는 제목의
노래가 특히 유명하며, 토니상 5개 부문을 석권하고 1972년에는 피터 오툴과 소피아 로렌 주연의 영화로도 제작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