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엔 갖가지의 빗소리(비의 연주 소리)가 내 청각에 가득했는데,
오후부턴 西에서 몰아치는 바람이 공포스러울 정도로 몰아치고 있다.
거의 맨살을 다 드러낸 내 옷차림으로 베란다를 얼씬거리는 게 두려울 정도다.
유리창을 꼭꼭 닫았건만 바람이, 광풍이 어느 순간 유리를 깨뜨리고 괴물처럼 내게 달려들 것만 같다.
태풍 불 때마다 써먹던 스카치테잎 X자로 부치기를 하려해도 창문에 근접하는 게 두려워서 못하고 있다.
바람은 여전히 잉잉대고 쉿쉿대고 웅웅대면서 정신없이 괴성을 내지른다.
앞이 툭 트인 내 아파트 창 밖으로 바람은 거칠 것 없다는 듯 사지를 휘두르고 있다.
오늘 밤 깊은 잠을 들기는 다 글렀다.
물도 무섭고 불도 무섭지만, 형체 없는 바람이야말로 가장 두려운 것 같기도 하다.
막을 수도, 잡을 수도 끌 수도 없는 바람, 바람, 바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