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선 화암에서
황동규
너무 많은 소리로 고요하여
오늘 밤 쉽게 잠들지 못할 것이다
풀벌레들이 쉬지 않고 울어
밤새들이 잠깐씩 끊어 계속 노래하고
바람은 물굽이에서 가끔 짐승 소리를 내고
달은 가다 걸음을 멈출 것이다
누군가 안에서 속삭인다
'네 삶의 모든 것, 고요속의 바스락처럼
바스러지고 있다
자, 들리지?
허나 후회는 말라
부서짐은 앞서 무언가 만들었다는게 아니겠는가?'
환한 달빛 속에서 화암 뼝대들이 대신 화답한다
'만든것은 결국 안 만든 것으로 완성된다
꽃이 지며 자기 생을 완성하듯이
때로 우리도 가슴 언저리를 내놓아
애써 만든 상(像)을 부서뜨린다
허나 부서진 곳 떨어져나가면 또 새로운 상,
쉬지않고 쉴 곳 세상 어느 구석에도 없고,
(나를 향해 가슴 약간씩 돌리며)
아 그대 안에 내장되어 있다'
나는 간신히 말한다, '달을 그만 가게 하자'
언제 부터인가 올빼미가 혼자 울고 있고
여울을 건너며 달이
잔물결에 깔았던 은비늘을 쓸어담는 기척을 낸다
출처 : ♣ 이동활의 음악정원 ♣
글쓴이 : 들풀처럼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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