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루고 미루던 이비인후과를 다녀왔다.
특별히 아픈 건 아니지만 늘 나를 귀찮게 하던 모종의 증세 때문이었다.
시나브로 진행된 증세라 딱이 언젠가부터였는지도 모르겠지만, 족히 5년은 넘은 것 같다.
목에 가래가 있는 것 같은데 어떤 때는 아주 미약하고 어떤 때는 양이 많아 다소 불편을 느끼곤 했다.
그런 이물감으로 나는 자주 흠흠거렸으며 특히 밤에 자리에 눕고나면 잔기침이 얼마 동안 나오곤 했다.
자다가도 끙끙거리는 내 소리에 잠이 깨곤했는데 근래들어선 그 횟수가 좀 늘었다.
그래도 나는 서울의 공기가 나쁜 탓이려니하며 무심히 지냈다.
한데 요즘 엘리에게 동화책을 읽어줄 때면 부쩍 목이 아프고 목이 쉴 것만 같은 증상이
되풀이 되는 게 수상쩍게 여겨져 오늘 드디어 이비인후과를 찾아갔다.
증상을 말하자 의사는 내시경 검사를 해보지며 코에 무언가를 삽입하더니
얼마 동안 기다리게 했다가 내시경 검사로 들어갔다.
검진 결과 역류성후두염이란다.
사진으로 보니 내 후두엔 무슨 막 같은 것이 손톱눈처럼 생겨 있었다.
의사는 일단 한 달간 약을 복용해보고 낫지 않으면 그 담엔 다시 정밀 검사를 해보자고 한다.
그제서야 좀 겁이 나고 긴장감이 느껴졌다.
문우 중, 오래 전 후두암으로 세상을 떠난 P 선생 생각이 떠올랐다.
늘 건강하고 열심히 살던 분이었다. 약국을 경영하며 한편으론 전각도 하시고 수필도 쓰는
다방면으로 재능이 많은 분이셨는데, 선생은 암에 걸린 친구 병원에 문병 갔다가 친구의 권유로
우연히 검사를 받던 도중 본인도 후두암에 걸려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멀쩡하던 선생의 입원 소식을 들었을 때 얼마나 놀라움이 컸는지 모른다.
어쩌면 목소리를 낼 수 없게 될지 모른다고 하셨을 때 함께 문병을 갔던 문우들은
수술만 성공하면 목소리쯤 못낸다고 무슨 대수냐는 식으로 급조된 위로를 하며
문자로 쓰면 얼마든지 대화가 가능하다고 둘러대었다.
모르긴 해도 나는 후두암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만에 하나 그렇게 진행될 수도 있다는 우려를 하며 내가 목소리를 낼 수 없는 경우를 상상해보니
이건 보통 심각한 일이 아니었다.
전철을 타고 방화동에서 상계동으로 오는 동안 내내 그런 불유쾌한 공상만 했다.
가족이나 친구와도 대화를 제대로 나눌 수 없고, 위험에 처해도 도움을 청할 수 없고,
병원에 가서도 내 증상을 일일히 글자로 써보여야만 하고, 물건을 사거나 고를 때도 내가 사고자 했던 것이나
내 마음에 드는 물건을 설명할 수도 없고, 아파트의 벨이 울려도 누구냐고 물을 수도 없고,
전화는 오직 문자로만 가능하게 되고....
아직 멍쩡한 내 육신에 대해 감사함을 표하며 살아야겠다.
두 눈과 두 귀와 입에게, 팔과 다리에게, 손가락과 발가락에게, 아프지 않은 내 무릎에게.....
모쪼록 별 것 아니기를 바란다.
한달만 약 먹으면 멀쩡해지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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