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방 풍경

동 심

tlsdkssk 2008. 5. 14. 23:18

동 심(童 心)

5월5일 어린이날. 대학 동창회에서 산행모임 개최한다는 연락이 왔다. 낙성대 역에서 버스 타고 관악캠퍼스 잔디 광장에 내리란다.

10시에 도착하니 단과대학 별로 천막이 처져 있다. ‘63년 입학, 22회, 이름’등을 쓰니 물, 초코파이, 기념 타올이 들어있는 비닐봉지 준다.

부인과 함께 다정하게 오르는 동문도 있고, 손주들 손잡고 오르는 가족단위 팀도 있다.

12시에 도시락 준다니 산행시간 넉넉한데, 목표지점 정한 곳 없어 오르다가 바위에 걸터앉아 숲을 관찰한다. 청설모가 나무 오르내리며, 하늘 다람쥐가 나무 사이를 날고, 새들이 지저귄다. 공기 참으로 맑다. 모자에 떨어지는 새똥을 나무젓가락에 찍어 발 옆을 기어 다니는 벌레에게 준다.

계곡에 물소리 졸졸졸… 아이들이 “할아버지 올챙이 잡아주세요.”한다. 쪼그리고 앉아서 보니 와~ 올챙이다! 어릴 때 논에서 잡았던 추억이 몇 십 년을 건너 뛰어 온다. 올챙이 잡기 내기를 했었지. 잡은 놈들은 플라스틱 병이 없고, 유리병도 귀해서 바가지에 담았다. 내기에서 이기면 “꿀밤 맞을래? 손목 맞을래?”한 다음 이긴 올챙이 숫자만큼 때렸다.

잡으려니 내 손아귀에 들어 있다가 오므리면 빠져나간다. 겨우 2마리 잡았지만 대견하다는 생각 든다. 아이들은 많이 잡아 비닐봉지를 찾는다. 초코파이 담긴 채로 주니 고맙단다.

일어서는데 어이쿠! 미끄러졌다. 신발에 물이 묻었으니 미끄러울 수밖에… 하지만 난 왜 이리 잘 미끄러질까? 키가 커서 안정성이 덜 해서 그런가? 매일 새벽에 108배도 잘 하는데… 동심에 젖었으니 호사가 아닌가. 미끄러져도 좋다!

옆에 수염이 긴 노인이 앉아 있다가 “천천히 움직이세요.”한다. 하긴 우리는 시간 밖에 남는 게 없지. 손목이 아프다. 오른 손이다. 며칠 전 면접 본 회사에서 골프 처야 한다고 했고, 8년 동안 안 쳤으니 인도어에 가서 연습도 해야겠는데 야단났다.

도시락 먹고 버스 타러 가는데 막 출발한다. 앉아서 기다리느니 걷자. 요즘 내 건강의 비결은 걷는 것 아닌가. 낙성대 터널 안에 중학생이 자전거를 눕혀놓고 앉아 있다. 도와달란다. 바퀴를 굴리는 체인이 궤도를 이탈해 있다. 무리하게 고치려는데 터널 안에 매연이 있어 기침이 난다. “얘야 자전거를 밖으로 들어내어 천천히 고치자. 내가 해 볼게.” 차근차근하니 금방 걸린다. “아저씨! 고맙습니다.”한다. 아저씨라고? 도랑 치고 가제 잡았구나. 하하하.

전철 타고 집으로 오는 도중에 손목이 약간 이상하다. 하긴 3년 전 청계산 매봉에서 얼음 감춰진 낙엽 밟다가 미끄러져 갈비 1대 골절, 1대 금 갔을 때도 자고 나서 아침에 못 일어났었지.

아침에 병원 가는데 역시 온 몸이 예사롭지 않다. 집사람은 “할배가 올챙이 잡다니 주제파악을 하세요!”했다. 사진 찍고 검사하더니 “뼈에는 이상 없습니다. 인대가 파열 됐으니 한 달 동안은 골프 등 손목 쓰는 운동 삼가세요.”하며 손목 보호대를 채워 준다.

오늘 성령강림 대축일 미사에 참례하니 비둘기 모양으로 접은 색종이를 준다. 펴보니 ‘두려움’이다. 슬기, 평화, 온유 등 해마다 성령이 주는 은사 받아왔지만 올해는 ‘두려움’이라니… 허긴 ‘안전 불감증’ 환자라는 소리 들을 정도로 겁 없이 살고 있으니 두려움 갖고 살아야겠다.

하지만 며칠 있다가 올챙이 잡으러 관악산에 또 가련다. 늙은 인생이 좋은 게 무언가? 어릴 때의 아름다운 추억을 떠올리며 시간 여행을 하는 게 아닐까. 동심에 젖어 사는 행복한 노인이 되자.

두려움 갖고 동심에 젖어서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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