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험한 사랑
김 세형
앞마당 반쯤 허물어진 흙 담장 구석에
늙은 맨드라미 꽃 하나
뜨거운 태양에 얼굴이 그을린 채
벌을 서듯 해종일 고개를 떨구고 서 있다
그 꼴을 양지바른 툇마루에 앉아
무관심한 척 몰래 바라보다가
왠지 갑자기 울컥해져
오랜만에 바가지로 물을 듬뿍 퍼다
맨드라미꽃의 마른 발부리에 부어주었다
그러자 고개 숙이고 혼자 풀이 죽은 채로
내 눈치만 힐끗힐끗 보며 속내로만
끙끙 속앓이를 하던 늙은 맨드라미꽃이
내가 언제 그랬냐는 듯, 금방
내 앞에서 빠끔히 얼굴을 들어보이곤
비로도 같은 검붉은 웃음을 보이는 것이었다
얼마 후,
맨드라미 발부리 근처 홍건이 고인 물 위엔
불에 탄 씨앗 같은 것들이 새까맣게 떠다니고 있었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갑작스런 폭우에 익사한,
개미떼들이었다.
출처 : 위험한 사랑
글쓴이 : 가을 원글보기
메모 :
'詩가 흐르는 상자'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크랩] 우표 한 장 붙여서 / 천양희 (0) | 2009.07.25 |
---|---|
[스크랩] 지진 / 신달자 (0) | 2009.07.20 |
[스크랩] 완전한 이별 (0) | 2009.07.02 |
[스크랩] 꽃을 사랑하는 법 (0) | 2009.07.02 |
[스크랩] 홀로서기 / 서 정윤 (0) | 2009.07.0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