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가 흐르는 상자

명시 감상 (1)

tlsdkssk 2008. 7. 13. 00:27

名 詩 鑑 賞 (一)

 

내 아내 ․ 2

서 정 주

 

내가 함부로 다루어서

고장나 잠긴 소리만 하는

헌 피아노만 같은 내 아내여.

거기에서 어떻게 무슨 재주로

으크크 으크크 같은

그런 웃음소리 같은 것도 빚어내는가?

참 신비하게는

간이 잘 맞는 내 아내여

 

** 해설 : 시도 많이 써보고 이런저런 세상살이 다 겪고 난 다음에는 달관이 이루어지는 것인지 이제는 미당이 시를 아주 쉽게 쓰는 것 같다.

우리 동양의 조강지처, 부모, 그것을 새삼 어여삐 여기는 심정에서 작자는 이 작품을 쓴 것이리라.

‘으크크 으크크 같은’은 우리가 웃기는 해도 어딘가 너무하는 느낌이 있지만 어쨌든 유우머러스한 시다.

 

모란이 피기까지는

金 永 郞 1935년

모란이 피기까지는

나는 아직 나의 봄을 기다리고 있을 테요.

모란이 뚝뚝 떨어져버린 날

나는 비로소 봄을 여읜 설움에 잠길 테요.

오월 어느 날 그 하루 무덥던 날

떨어져 누운 꽃잎마저 시들어 버리고는

천지에 모란은 자취도 없어지고

뻗쳐오르던 내 보람 서운케 무너졌느니

모란이 지고 말면 그뿐, 내 한 해는 다 가고 말아

삼백 예순 날 하냥 섭섭해 우옵내다.

모란이 피기까지는

나는 아직 기다리고 있을 테요, 찬란한 슬픔의

봄을.

 

歸 家

이 준 영

귤이 한 무더기에

천원이요, 천원 ―

별이 한 무더기에

천원이요, 천원―

남대문 시장 입구의

과일 행상들 앞

오늘따라

<귤>을 사라는 소리가

<별>을 사라는 소리로 들린다.

아직 난청(難廳)은 아닌데―

 

땅을 쳐다보고 거닐다가

오랜만에 남산 타워 위

별들이 얼굴을 내미는

저녁하늘을 올려다 본

탓일까

귤 사라는 소리가

별 사라는 소리로 들림은―

 

그래서 종이봉지에

두어 아름 별을 사들고

바로 집으로 돌아왔다.

 

그날의 퇴근 길 대포는

생략한 채--

 

**해설 : 일정한 기일을 앞둔, 청탁에 의한 시작(詩作)은

자칫 꾸밈이 가미되는 作爲的인 시가 되기 쉽다.

그에 반해 <귀가>는 인스피레이션이라 하면 좀 거창하지만 어떤 예기치 않았던 모멘트에 의한 순수한 발상의 소품(小品)이다.

아끼는 작품 중의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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