촌 놈
대학 동창들이 부부동반으로 격월마다 만난다. 모임 이름은 육육회. 남자 여섯, 여자 여섯 모임이다. 서울, 충청도, 경상도, 전라도 각각이다.
식사 하는데 충청도 친구가 “이 나물 이름이 뭐냐?”하기에 내가 말했다. “너는 촌놈이 그것도 모르나?”
“촌놈 아닌 사람이 어디 있냐? …”서울 출신이 나를 보며 말했다.
“나는 태어날 때부터 도회지였고, 시골에선 잠시도 살지 않았다. 시골엔 6.3사태 때 충청도 가서 1시간 동안 보리 베어본 일 밖에 없다.”
‘촌놈의 위상’을 생각해 본다.
‘農者 天下 之 大本’이라 했다. 아무리 산업사회가 중요하고, 부가가치를 많이 창출하는 정보화 사회가 현대사회라 해도 사람이 살아가는데 뿌리인 농업을 제쳐두고 산업을 논할 수는 없는 거다. 창조주의 아드님이 제자들에게 가르친 으뜸 기도(‘주님의 기도’)가 ‘…오늘 저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인 것만 봐도 일용할 양식을 짓는 農者가 大本인 것이다.
모임이 파하고 집에 왔는데 집사람이 나에게 면박을 주었다. 농촌 출신인 친구에게 ‘촌놈’하면 기분이 좋겠느냐고… ‘강원도 감자바위’라서 남에게 싫은 소리 한마디도 못하는 아내인지라 이해를 하려고 했지만 할 말은 해야겠기에 이 글 쓴다.
아내에게 보여주고 그 ‘촌놈’에게도 보여주어 잘 잘못을 따져 보리라.
‘촌놈’을 국어사전에서 찾아보니 ‘촌사람의 속된 말’이라고 나와 있다. 속된 말이라니 지체 높으신 양반이 쓰는 말이 아님이 확실하다. 하지만 나는 ‘촌놈’이 정겨운 우리지방의 사투리라고 말하고 싶다. 꼭 남을 비하하기 위해 “야! 이 촌놈아!”하지 않고, “촌놈이 그것도 모르나?”한 것은 ‘내가 자네 집에 갔을 때 보리 베어본 추억을 정겹게 떠올리려고 한 말’인 것이다.
4살 위인 형님을 만났을 때 ‘촌놈’이 욕인가를 의논해보니 그건 우리사투리 문화로 풀어야 한다며 이런 이야기를 해 주셨다. 제주도에 무전여행을 갔을 때의 일화란다.
“담이 없고 돌멩이로 집 경계만 표시해둔 그곳에는 입구 돌멩이 위에 막대기를 한 개 올려놓으면 ‘옆집에 간다.’ 두 개 올려놓으면 ‘반나절 외출’ 세 개 올려져 있으면 ‘오늘 밤에 안 돌아온다.’ 네 개 올려져 있으면 ‘초상났음’을 뜻 한단다. 얼마나 그 지방 특유의 정겨운 ‘표현’인가…. ‘촌놈’도 정겨운 표현인데 그걸 이해 못하고, ‘촌놈이 출세했네!’의 비아냥거림으로 받아들이면 그건 못 말리니 신경 쓸 필요 없다.”하셨다.
사위를 얻었다. ‘촌놈’이다. 시골에서 농사짓는 집의 5남매 중 막내로 태어나 농사일에 바쁜 부모님 슬하에서 ‘放牧’한 채로 자랐다. 그런데 도회지의 ‘왕자’ ‘공주’는 따라갈 수 없도록 바르게 자랐다. 기본에 충실하고, 다른 사람을 배려하며 산다.
군 복무부터 마치고 와서 공부 열심히 하여 사시에 합격했고, 마라톤은 42,195m 완주를 한다. 늘 감사하며 살고 내가 ‘식사 전 기도’를 바치면 교인이 아닌데도 한참동안 기도한다. 감사의 기도를 바친단다.
아버님은 어릴 때부터 서당에 다니셨고 晝耕夜讀하셨는데, 그걸 보며 자라다 보니 틈 날 때마다 책 읽게 되었단다. 고등학교 다닐 때 ‘사마천의 사기’를 읽었고, 성경도 구약 신약 다 읽었단다. 백혈병으로 일찍 타계한 친구가 꼭 읽어보라던 ‘사기’ 나는 아직 못 읽었는데….
내가 충청도 친구 집 시골에 내려갔을 때 “유-붕이 자~원 방래 하니 불역 낙호아.”하시던 춘부장을 ‘식사 후 기도’ 바칠 때 마다 떠올리며 존경하는데, 바깥사돈도 존경하고 있다. ‘농자천하지대본’임이 분명하다 싶다.
시대에 따라 가치관은 바뀌지만 기초적이고 기본적인 것은 변함이 없는 것이다. 보편타당한 진리는 불변인 것이다.
기본에 충실하고 겉멋 부리기를 싫어하는 사람이 ‘촌놈’의 정의가 아닐까 싶다.
(200자 x 11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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