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방 풍경

[스크랩] [문화일보-동화]작은 집 이야기 / 김민령

tlsdkssk 2006. 12. 28. 21:49

작은 집 이야기 / 김민령


나는 작은 집입니다.

나는 아스팔트 길 위에 덩그마니 놓인 아주아주 작은 집이에요. 아스팔트 길 위에 집이 있다니 참 이상하다고요? 암, 그러믄요. 이상할 수밖에요. (‘암, 그러믄.’은 주인 할머니가 자주 쓰는 말투예요. 할머니 손녀 으네가 “할머니, 나 이뻐?” 하고 물으면 할머니는 함박웃음을 웃으며, “암, 그러믄. 그렇구말구.” 하고 대답합니다. 그 말투는 퍽 재미있어서 그 때마다 나도 속으로 ‘암, 그러믄. 그렇구말구.’ 하고 따라해 본답니다.)

아스팔트 길 위에 놓였다고 말했지만 사실대로 말하면, 나는 아스팔트 길 위에 있지는 않아요. 내 앞에서 아스팔트 길이 뚝 끊겨 있으니까요. 그리고 뒤꼍에서 다시 아스팔트 길이 시작됩니다. 나는 온몸으로 아스팔트 길을 가로막고 있는 셈이에요.

“고약한 늙은이 같으니라구. 보상금을 얼마나 챙기려고 이 고집일까?”

“저 할머니가 보통이 아니래요. 여기저기 길이 생길 만한 데다 집을 여러 채 사 두었다잖아요.”

이따금 사람들이 아스팔트 위에 종종종 모여들어서는 팔짱을 낀 채 수군거립니다. 나 때문에 자동차에서 내려 아파트가 있는 언덕 위까지 걸어가야 하기 때문이에요. 어떤 사람들은 발을 쾅쾅 구르다가 침을 퉤 뱉기도 해요. 그러다가 주인 할머니가 나오면 사람들은 갑자기 할 일이 생각났다는 듯이 서둘러 자리를 떠나 버리지요. 밥을 뜸들이는 중이었다거나 읽다 만 책 내용이 너무너무 궁금해졌다든가 하는 이유들이 있겠지요. 암, 그러믄요. 그렇구 말구요.

사람들이 흩어지고 나면 할머니는 바가지로 물을 퍼서는 그 자리에다 획 뿌립니다. 물벼락이나 맞아라, 하고 호통이라도 치는 기세로 말이에요. 하지만 사람들은 이미 다 떠나고 없으니 물만 아깝지 뭐예요.

나는 사실 좀 작고 많이 낡은 집이지만 할머니한테는 할아버지가 남긴 하나뿐인 재산이에요. 할머니는 있는 정성을 다해서 나를 깨끗하게 손보고 다정하게 쓰다듬어 줍니다. 으네가 엎드려 숙제를 하곤 하는 마루는 할머니 손길이 몇 만 번은 닿았을 거예요. 까맣게 길이 잘 들어 얼굴이 들여다보일 정도니까요.

집 둘레에는 자그마한 꽃밭들을 만들었어요. 봄이면 벽을 타고 오르는 호박과 수세미 넝쿨이 간지러워서 얼마나 웃는지 몰라요. 집이 어떻게 웃느냐구요? 모르시는 말씀. 집은 웃기도 하고 울기도 해요. 밖에 나갔다가 돌아왔는데 집안이 썰렁하고 차게 느껴질 때가 있다면 그건 집이 쓸쓸해하고 있기 때문이에요.

그럴 때는 입에다 손을 댔다 뗐다, 댔다 뗐다 하며 아아아아, 하고 우스운 소리를 내면 돼요. 나는 으네가 씩씩한 인디언 소녀처럼 아아아아, 하고 소리를 낼 때가 제일 웃기더라구요. 내가 기분이 좋으면 꽃들도 방실방실 잘도 피어나지요. 오종종한 채송화며 철쭉, 분꽃, 패랭이꽃, 맨드라미 할 것 없이 온갖 꽃들이 다투어 피어나면 할머니와 으네도 자꾸만 배실배실 웃음을 지었고요.

하지만 그건 오래 전 이야기예요. 으네는 이제 좀처럼 인디언 소리를 내지 않아요. 앞뒤로 아스팔트가 놓이면서 할머니와 으네 표정은 자꾸만 어두워져 가고 있어요. 아스팔트는 따뜻한 황톳길을 두껍게 덮어 버린 것처럼 할머니와 으네 얼굴 위에 머물던 웃음도 덮어버렸나 봐요.

커다란 트럭이 들락날락하고 무시무시한 롤러차가 아스팔트 위를 굴러다닐 때 할머니는 으네가 집에서 한 발자국도 나가서는 안 된다고 했어요. 트럭들이 덜컹덜컹 지나가면 너무 작은 집인 나는 휘청휘청 흔들릴 수밖에 없었어요. 으네를 폭 감싸안고 누워 있는 할머니도 자꾸만 덜덜 떨었어요. 내가 방정맞게 자꾸만 떨었기 때문이었을까요, 아니면 할머니 마음 속에서 쾅쾅 무거운 바윗돌이 떨어졌기 때문이었을까요.

무거운 엔진 소리가 뚝 그친 어느 날 아침, 할머니와 으네는 빠꼼히 문을 열고 오랜만에 밖으로 나왔어요. 할머니와 으네가 오가던 길은 사라지고 새카만 아스팔트가 끝도 없이 펼쳐져 있었어요. 나는 이미 아스팔트가 깔리는 모양을 처음부터 끝까지 다 봤는데도 할머니와 으네가 아무 말도 없이 아스팔트만 바라보고 있는 모습에 자꾸만 가슴이 캄캄해져 왔어요. 누가 내 마음에도 두꺼운 아스팔트를 깔아버린 것처럼 말이에요. 아스팔트는 햇빛을 아무리 받아도 빛나지 않았고, 비가 아무리 내려도 받아마실 줄 몰랐어요. 무엇보다도 아스팔트는 으네를 주눅들게 해 버렸지요.

“할머니, 우리 이사 안 가?”

“가긴 어딜 가. 여기가 우리 집인데.”

으네와 할머니는 이제 좀처럼 웃질 않아요.

할머니가 일하러 나간 뒤에 으네가 신주머니를 달랑거리며 학교에서 돌아왔어요. 아스팔트가 워낙 두껍게 깔려서 마당은 아스팔트보다 두 뼘은 낮을 거예요. 아스팔트가 생긴 뒤에는 내가 이렇게 낮은 곳에 있었나 하고 궁금해질 지경이지요. 으네는 아스팔트 위에서 마당으로 깡총 뛰어내린 다음, 마루 위에 책가방을 놓고 수돗가로 갔어요. 고무 대야 안에는 수도꼭지에서 방울방울 떨어진 물들이 한가득 담겨 있었어요. 으네는 바가지를 들고는 물을 하나 가득 퍼 올렸지요. 목이 말랐던 나는 가슴을 한껏 부풀려 물 마실 준비를 했어요.

으네는 자기 키만큼 자란 토란밭으로 가서 물장난을 하기 시작했어요. 바가지에 담긴 물을 조막손으로 퍼서는 토란잎 위에다 뿌리는 거예요. 그러면 토란잎은 고맙습니다, 하는 것처럼 고개를 꾸벅 숙여서 물을 떨쳐 버리지요.

으네가 하는 짓을 쳐다보느라 나는 아스팔트 위에 사내아이 하나가 와 있는 걸 뒤늦게 알아챘어요. 머리카락이 까맣고 뺨은 통통하지만 호리호리하니 키가 큰 아이였어요.

“여기는 시골이야?”

아이가 물었어요. 으네는 사내아이를 무섭게 노려보았어요.

“여기가 시골이야?”

궁금한 건 못 참는 성격인가 봐요.

“느이 집도 시골이냐? 어째서 여기가 시골이냐?”

“시골같이 생겼는데…….”

으네는 후딱 바가지에 물을 푸더니 사내아이 발치에다 확 끼얹었어요.

“앗, 차거!”

사내아이는 팔짝 뛰어서 물을 피하더니 그 길로 가 버렸어요.

으네는 그 자리에 쭈그리고 앉아서 조금 울었어요. 사내아이가 시골이냐고 물어서 몹시 분했던가 봐요. 그 애도 참, 웃기지 뭐예요. 이렇게 양쪽으로 아파트가 잔뜩 들어서고 시커먼 아스팔트까지 깔렸는데 시골이라니, 말이 되나요? 물론 얼마 전까지는 온통 파밭에 배추밭이었지만 지금은 아니니까요.

저녁에 할머니가 돌아오셨을 때 으네는 아무 이야기도 하지 않았어요. 사내애가 와서 물을 끼얹었다는 이야기도, 쭈그려 앉은 채 울었다는 이야기도요. 그 대신 입을 꾹 다물고 공책에 일기나 끄적거릴 뿐이었어요. 어쩐 일인지 할머니도 ‘우리 으네가 어찌 이리 조용한고?’ 하고 장난을 걸거나 으네의 엉덩이를 토닥이지 않았어요. 아스팔트가 깔린 후로 슬퍼보이는 건 할머니 쪽이 더했어요. 이사가자고 조르는 으네 때문이었는지도 몰라요.

으네와 할머니가 김치찌개에다가 밥을 먹을 때 마당으로 아주머니 두 분이 내려섰어요. 으네와 할머니는 방 안에 있으니까 바깥에 무슨 일이 있는지는 알 수 없었고요. 나는 크헉, 하고 숨을 멈추고는 아주머니들을 뚫어져라 쳐다봤어요.

“계세요? 할머니, 안에 계세요?”

할머니는 먹던 상을 윗목으로 물리고는 아주머니들을 방 안으로 들였어요. 으네는 주춤주춤 무릎걸음으로 한쪽으로 물러났고요.

“시청에서 오셨나?”

할머니는 금세라도 싸울 것처럼 큰 목소리를 냈어요. 그러자 으네가 할머니 옆으로 얼른 다가앉았어요. 할머니는 시청에서 나온 사람들하고 늘상 싸우지만 으네는 그렇게밖에 도울 수가 없는 거예요. 작은 몸을 할머니한테 딱 붙이고 조금이라도 커 보이게 하는 거예요. 조그만 물고기들은 큰 물고기를 만나면 서로서로 뭉쳐서 훨씬 커보이게 한대요. 으네가 언젠가 할머니한테 들려준 얘기예요.

“저희는 아파트 부녀회에서 왔어요. 무슨 사정인지 모르겠지만, 저희도 무작정 기다릴 수만은 없지 않겠어요? 이 집 때문에 아파트 진입 도로를 이용하지 못하고 저 뒤쪽으로 돌아다니니까요.”

“할머니, 시내로 출퇴근하는 사람들은 이 길로 나가야 시간을 절약할 수 있어요. 또 저희 아파트 같은 경우는 이 길이 뚫려야 집값도 오를 테고…….”

키가 큰 아주머니는 아주 공손했어요. 시청에서 나온 남자어른들과는 아주 달랐어요. 으네도 조금은 마음이 놓이는지 표정이 누그러졌어요. 하지만 할머니는 아니에요.

“집값이오? 아주머니, 말씀 한 번 잘했소. 아주머니들 집값 때문에 내가 나 살던 집에서 쫓겨나야 한단 말이오?”

“보상금을 바라시는 거라면…….”

“보상금 같은 건 바라지도 않소. 그저 다른 곳에 누워 잘 곳만 있으면 이런 시커먼 길 한복판에서 누가 살겠소. 무작정 이렇게 앞뒤로 길을 내버리고, 나한테는 그냥 언제 나갈 거냐고만 물어 보는데 내가 내 집 버리고, 저 어린 것하고 어딜 가야 쓰겠소? 그냥 눈 앞에서 사라져 주면 시원하겠소?”

아주머니들은 아무 말도 못하고 방바닥만 쳐다보다가 슬그머니 일어나서 가 버렸어요. 으네와 할머니는 먹다 밀어둔 상을 끌어다가 다시 숟가락질을 시작했지요. 아주 조용한 저녁상이었어요.

나는 원래 오른쪽 도시에 들어가는 주소를 갖고 있었어요. 예전에 옹기종기 많은 집들이 모인 다정한 마을이었을 때 여기는 오른쪽 도시의 작은 마을이었어요. 그런데 왼쪽 도시에 신도시라나 뭐라나, 커다란 아파트들이 들어서기 시작하면서 우리 마을도 변하기 시작했어요. 그러더니 왼쪽 도시에서 넓은 길을 내기로 했지요.

하지만 그 위에 내가 버티고 있었던 거예요. 오른쪽 도시는 왼쪽 도시한테, 너희가 내는 길이니까 너희가 알아서 해라, 했고, 왼쪽 도시는 오른쪽 도시한테 너희 시에 속해 있으니까 너희가 알아서 옮겨가도록 해라, 라고 미루기만 했어요. 그러는 중에 끝끝내 아스팔트가 불쑥 깔리게 된 것이에요. 사람들은 일단 아스팔트를 깔아 버리면 할머니와 으네가 어디로든, 어떻게든 가 버릴 거라고 생각한 모양이에요. 하지만 할머니와 으네가 어디로 갈 수 있겠어요.

다음 날 으네가 학교에서 돌아오는데 전날 찾아왔던 사내애가 또 나타났어요. 이번에는 책가방을 메고 으네 뒤를 졸졸 따라온 거예요. 으네는 다 알면서도 모르는 척, 여느 때처럼 마당으로 폴짝 내려서서 책가방을 두고 바가지를 찾았어요. 토란밭에 물을 주려는 참이지요.

“나도 한 번 해 보면 안 될까?”

“안 돼.”

으네는 퍽 쌀쌀맞았어요. 그리고 늘 하던 대로 바가지에 담긴 물을 손으로 퍼서 토란 잎에다가 주루룩 주루룩 끼얹었지요. 토란은 연방 꾸벅꾸벅 절을 했고요. 사내애는 쌀쌀맞은 으네가 무섭지도 않은지 아예 아스팔트 위에 쭈그리고 앉아서는 구경을 하고 있어요.

“그거 이름이 뭐야?”

으네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어요. 나는 사내애가 방금 말을 하기는 했나, 하고 잠깐 헷갈렸어요.

“이파리 되게 크네. 비올 때 쓰고 다니면 되겠다. 우산나무구나, 우산나무.”

아무리 토란이 키가 크다고 해도 나무라니, 나한테 입이 있다면 ‘에라, 이 맹추! 토란도 몰라?’ 하고 말해 주었을 거예요.

“바보.”

으네가 들릭락말락 작은 소리로 말했어요. 사내애는 벌떡 일어났어요.

“그러니까 이름을 가르쳐 줘야지.”

“토란.”

“토란? 아, 이게 토란나무구나. 그럼 이건?”

“과꽃.”

사내애는 세상에 참 별 걸 다 본다는 듯이 몹시 감탄하는 표정이었어요. 그러고는 자꾸만 고개를 끄덕거렸지요. 꼭 으네한테 물을 받아 마시는 토란잎 같았어요.

“나 한번 해 봐도 돼?”

정말 생고무처럼 질긴 아이예요. 엄마가 그 아이를 키울 때 무엇이든 포기하면 큰일난단다, 하고 입이 닳도록 말했던 걸까요? 잠깐 생각하다가 으네는 바가지를 사내애한테 내밀었어요. 사내애는 으네보다 키가 커서 디딤돌을 딛지 않고도 토란잎에다 물을 뿌릴 수 있었어요. 그런데 토란이 아주 세차게 끄덕끄덕 고개를 숙이자 사내애가 토란에다 대고 꾸벅꾸벅 절을 하지 않겠어요? 토란하고 맞절을 하다니, 정말 우스운 일도 다 있지요. 으네는 저도 모르게 하하, 웃음을 터뜨렸어요.

“내가 어제 시골이냐고 물어서 화났어?”

사내애는 으네의 웃는 얼굴에다 대고 이렇게 물었어요. 으네는 얼굴에서 웃음을 싹 거뒀어요. 그러고는 입을 다물었어요. 나는 조금 걱정이 되었어요. 금방이라도 으네가 바가지에 담긴 물을 사내애한테 퍼부어 버릴 것만 같았으니까요. 나는 그 애가 퍽 마음에 들어서 자주자주 보았으면 하는 마음이 들었어요.

“미안. 난 그냥 재미있으라고 한 말이었는데.”

“하나도 재미없어.”

다행히도 으네 입은 붙어버리지 않은 모양이에요.

“그렇지? 하하. 나도 그렇게 생각했어. 우리 엄마가 늘 말조심하라고 했는데 내가 이 모양이라니까, 하하.”

으네 얼굴이 살짝 펴졌어요. 으네도 나처럼 사내애가 마음에 든 모양이에요. 나는 봄날 호박넝쿨이 벽을 타고 오를 때 느끼는 것처럼 막 간지럽고 설레고 벅찬 마음이 되었어요.

“너 오은혜지? 난 건우야, 박건우. 4학년 2반인데 얼마 전에 전학왔어.”

“알아.”

으네는 심드렁하게 대답했어요. 건우는 잠깐 머뭇거리다가는 곧 으네에게 다가섰어요.

“그런데, 이거 물어봐도 될까?”

“뭐?”

“네 책가방에, 저기 씌어진 글씨 말이야. ‘은혜’라고 써야 하잖아.”

으네가 학교에 입학하던 날, 할머니는 으네 책가방과 신주머니에 ‘오으네’라고 크게 써 주었어요. 멀리서 봐도 으네 책가방과 신주머니인 줄 한눈에 알아볼 수 있게 이따만한 글씨로요. 으네는 아무 말도 없이, 또 아무 표정도 없이 마루 위에 반듯이 놓여 있는 책가방을 바라보았어요.

“공부도 잘한다는 애가 글자를 모를 리는 없고, 일부러 그랬지? 효미는 자기 이름을 꼭 ‘’이라고 쓰더라.”

으네는 학교에 들어가서야 처음으로 글자를 배웠는데 받아쓰기에서 늘 백점만 받았어요. 학년이 올라갈수록 동그라미가 가득 쳐진 시험지를 점점 더 많이 가져왔지요. 할머니는 글씨 읽을 줄을 모르지만 빨간 동그라미들이 잘했다는 뜻이라는 건 아주 잘 알고 있었어요. 아마 으네가 빨간 동그라미들을 많이 모으는 건 다 할머니 때문일 거예요. 할머니가 으네 책가방을 사 놓고 거기에다 ‘오으네’라고 쓰기 위해서 얼마나 많이 연습을 했는지 잘 알고 있으니까요.

건우는 그 뒤로도 종종 놀러 왔어요. 학원 가방을 들고 하루에 세 번쯤 들를 때도 있었지요. 둘은 토란잎에 물을 떨어뜨리고 꾸벅꾸벅 맞절을 하면서 깔깔 웃었고, 싫증이 나면 마루에 나란히 앉아 아무 말도 없이 오래 동안 아스팔트만 바라보기도 했어요. 건우가 그렇게 자주 올 수 있었던 건 그 뒤로 다시는 책가방에 씌어진 ‘오으네’에 대해 묻지 않았기 때문이에요. 나는 그래서 퍽 다행이라고 생각했어요.

어느 날, 으네는 마루에 앉아 할머니를 기다리고 있었어요. 무릎 위에 동화책 한 권을 펼쳐 놓은 채로 기둥에 옆머리를 기대고 조용히 앉아 있었지요. 먼 데서 딸랑딸랑 두부 파는 아저씨의 종소리가 들려왔어요. 아파트 사람들도 종소리를 듣고 두부를 사다 먹는다니, 좀 놀라웠어요. 아파트 사람들은 대부분 자동차를 타고 먼 곳에 있는 엄청 큰 가게로 간다고 하던대요. 역시 으네에게 들은 이야기예요.

귀뚤귀뚤, 떼떼떼떼 풀벌레 우는 소리가 짙어지면 여름이 끝나 간다는 뜻이에요. 주변이 온통 밭이고 논이고, 조용한 마을이었을 적에는 정말 굉장했었어요. 지금은 마당이 전부라서 풀벌레들도 얼마 되지 않을 거예요. 불쌍한 풀벌레들! 나처럼 아스팔트에 둘러싸여 오도가도 못하는 처지가 된 거예요. 그러니까 저렇게 짜랑짜랑 처량하게 우는 거겠죠.

자동차가 한 대 아스팔트 위를 굴러와서는 내 앞쪽에 멈춰 섰어요. 운전석에서 내린 사람들은 나를 무섭게 흘겨보고는 씩씩거리며 아파트 쪽으로 걸음을 옮겼지요.

으네는 그런 일을 하도 여러 번 당해서 이젠 그러든가 말든가 신경도 쓰지 않아요. 그 뒤로도 몇 대의 자동차가 내 앞에 멈추어 섰고 사람들은 똑같이 나를 흘겨보고, 쯧쯧 혀를 찬 다음 아파트 쪽으로 사라졌어요. 참 나, 그 사람들은 지치지도 않나 봐요. 매일매일 그렇게 눈을 옆으로 뜨다가는 아예 가자미눈이 될지도 모른다고요.

마지막으로 아스팔트 위에 나타난 사람은 지난번에 찾아왔던 키다리 아주머니였어요. 아주머니는 자동차에서 내리더니 차 뒷문을 열고 무언가 잔뜩 들어있는 꾸러미를 몇 개 꺼내 들었어요.

“자, 건우! 이제 내려. 여기부터는 걸어가자.”

뒷자리에서 내린 아이는 박건우였어요. 아마 키다리 아주머니의 아들이었던가 봐요. 그러고 보니 호리호리한 게 퍽 많이 닮았어요.

“마침 나와 있었구나.”

키다리 아주머니는 으네를 보자마자 큰소리로 말을 걸었어요. 초저녁 잠이 쏟아져서 가물가물하던 나는 히뜩 정신을 차렸지요. 으네는 엉거주춤 일어나서는 아주머니한테 꾸벅 절을 했어요. 그러고는 아주머니 뒤쪽에 서 있는 건우를 의아한 표정으로 쳐다보았지요. 건우는 쑥스러운 듯 조금 알은체를 했어요.

“할머니 안 계시지? 자, 이거 받아.”

아주머니는 들고 있던 비닐주머니 중에 하나를 골라서 으네를 향해 내밀었어요. 으네는 비닐봉지를 빤히 쳐다보다가 아주머니한테로 눈길을 돌렸어요.

“장보는 김에 너희 것도 좀 샀어. 지난번에 반찬이 너무 없길래. 생선이랑 장아찌 같은 거야. 얼른 받아.”

아주머니가 비닐봉지를 출썩거리며 재촉했어요. 세상에, 아주머니는 할머니하고 으네가 불쌍하게 여겨졌던가 봐요. 그날 반찬이 없었던 건, 할머니가 좀 피곤했기 때문이었어요. 여느 때 할머니는 으네가 이것저것 골고루 먹어야 한다면서 생선도 자주 굽고, 때마다 다른 나물을 무쳐 주기도 했어요.

으네는 비닐봉지를 받는 대신 건우만 뚫어져라 쳐다보았어요. 건우는 마치 큰 잘못을 저지른 아이처럼 시무룩했어요. 아마도 여기가 시골이냐고 물었을 때처럼 물벼락을 맞을까 봐 겁이 났던 모양이에요. 나는 숨을 죽이고, 으네가 어떻게 할까 지켜보았어요.

“잘 먹겠습니다.”

으네는 비닐봉지를 받고는 꾸벅 절을 했어요. 나는 휴, 하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어요. 건우 표정도 환하게 밝아졌어요.

“우리 건우가 네 얘길 참 많이 해. 친하게 지내야 한다.”

아주머니와 건우가 막 발걸음을 떼려는 순간이었어요.

“잠깐만요!”

아주머니와 건우가 그렇듯, 나 역시 으네가 무얼 하려는 것인지 무척 궁금했어요. 뒤꼍으로 달려갔던 으네는 곧 빨간 고추를 한 바가지 들고 왔어요.

“할머니가 기른 건데 농약을 안 쳐서 깨끗해요.”

“어머, 고마워라.”

아주머니는 비닐봉지 하나를 벌려 고추를 담았어요. 아스팔트에 몇 개 떨어진 고추는 건우가 얼른 주워 담았고요.

어느새 주위는 어둑어둑해져서 하늘만 파랗게 떠 있었어요. 밤이 되면 아스팔트는 없는 거나 마찬가지예요. 너무 깜깜해서 아예 어둠이 되어 버리는 거예요. 건우 어머니와 건우가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언덕 위로 걸어올라가는 모습을 바라보다가 으네는 곧 마당으로 내려섰어요. 그리고 그때, 그 일이 일어났어요.

끼이익, 쿵!

자동차 한 대가 급하게 달려오더니 그대로 마당으로 쿵, 하고 내려앉은 거예요. 자동차는 마당으로 내려온 다음, 내 옆구리를 받아 버렸어요. 아, 내 옆구리 따위는 아무래도 좋다고요. 나는 아주 작은 집이고, 또 낡은 집이니까요. 하지만 마당에 있던 으네는 작긴 하지만 아직 어린 아이였지요. 으네는 자동차에 받혀 힘없이 쓰러지고 말았어요.

건우와 건우 어머니가 달려오고, 어디에 있었는지 사람들이 뛰어왔어요. 그리고 곧 주인 할머니도 나타났어요.

“하이고, 우리 으네! 우리 으네 좀 살려 주세요! 돈이 없어서 이사를 못 갔는데, 아무것도 없이 나가라고만 하니 나가질 못했는데! 우리 으네, 우리 으네, 우리 으네!”

할머니가 으네를 끌어안고 울고 있을 때, 할머니가 고약한 늙은이라거나 돈을 무척 밝힌다거나 하고 흉을 보는 사람들은 아무도 없었어요. 그저 시커먼 아스팔트만 내려다볼 뿐이었지요. 아스팔트는 아무리 바라봐도 사실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요. 너무 캄캄하고 어두워서 자기 마음속을 들여다보는 것처럼 슬퍼질 뿐이지요. 사람들은 그걸 잘 모르나 봐요.

.

“으네는 수술이 잘 되었어. 다리에 철심을 박아서 굉장히 아플 거라는데 으네는 울지도 않더라. 할머니가 걱정할까 봐 그런가 봐.”

건우는 구멍난 바가지로 물을 뿌리며 이야기했어요. 건우가 다 시들어버린 과꽃에게 말을 거는지, 먼지를 함뿍 뒤집어쓰고 기우뚱 서 있는 토란에게 이야길 하는지는 잘 모르겠어요. 어쩌면 나한테 들려주는 이야기인지도 몰라요.

이젠 겨울이 바짝 다가와 물을 줄 필요가 없는데도 건우는 이따금 찾아와 꽃밭에 물을 뿌려주곤 했어요. 그러면서 으네가 병원에 입원했다는 이야기, 일이 잘 되어서 조그만 아파트에 들어가게 되었다는 이야기, 할머니가 좀더 나은 일자리를 얻었다는 이야기 들을 들려주었지요. 하지만 건우가 빼먹은 이야기가 꼭 한 가지 있어요.

“꼬마야, 언제까지 그러고 있을 테냐?”

건우가 돌아다보았을 때 아스팔트 위에는 커다란 쇠망치를 든 아저씨들이 몰려와 있었어요. 아저씨들 뒤쪽으로는 길을 마저 내기 위해 포클레인이며 불도저 같은 힘센 자동차들이 기다리고 있었고요.

“토란들아, 안녕! 과꽃들아, 안녕! 작은 집아, 안녕! 모두모두 안녕!”

건우는 아스팔트 위로 올라서기 전에 천천히 나를 보며 이야기했어요.

그래요, 맞아요. 이젠 헤어질 시간이 된 거예요. 난 다 알고 있었어요. 건우가 이야기해 주지 않아도 나는 이미 눈치챘으니까요. 아니, 어쩌면 처음부터 알고 있었을 거예요. 마을 사람들이 하나둘 떠나가고 논과 밭이 있던 자리에 아파트가 들어설 때부터 말이에요. 하지만 괜찮아요. 정말 괜찮아요.

나는 으네 할머니가 으네 엄마를 낳고, 으네 엄마가 으네를 낳는 것을 지켜봤어요. 으네 할머니가 할아버지를 떠나보내고 으네 엄마까지 떠나보내는 것도요. 나는 기쁜 일도 보았고, 슬픈 일도 보았어요. 그리고 이제 으네와 할머니는 길 위에서 덜덜 떨면서 지내지 않아도 되지요. 그러면 된 거예요. 암, 그러믄요, 그렇고말고요.

나는 작은 집이에요. 처음부터 지금까지 쭉 말이에요. 〈끝〉

출처 : [문화일보-동화]작은 집 이야기 / 김민령
글쓴이 : 남촌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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