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모가 어제 돌아가셨단다.
10여년 넘는 세월을 병원과 집에만 갇혀 감옥생활하듯 지내다 가셨다.
아들 둘이 의사인 덕에 이모는 목숨 연장만 길게 하신 것 같다.
다리를 쓰지 못해 이모는 10년도 훨씬 넘는 세월을 침상 안에서만 지내셨다.
창밖 구경도 남의 힘에 의지해야먄 했다.
인격조차 마모되어 이모는 아이처럼 퇴행되고
성인의 모습이라곤 없었다.
이모는 천성이 유순한 분이나 단순하고 지혜가 부족했다.
그 옛날 우리 집이 어려웠을 때, 이모네 집엔 늘 시골에서 올라 온
쌀가마가 쌓여 있었고 여름이면 쌀벌레로 몸살을 앓았다.
엄마는 언젠가가 이런 말을 하셨다.
"이모는 내가 가면 밥은 잘 주는데 한 번도 쌀을 퍼 준 적은 없었단다.
이모부가 친정 식구들에게 퍼주는 걸 싫어하셨기 때문이지."
과연 그 때문이었을까.
나는 이모를 볼 때마다 인간에게 지혜가 없다는 것은
곧 죄와도 직결되는 문제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내 착각이 아니라면 그분의 가슴엔 내 남편과 내 자식의 평안 밖에 없었던 듯 하다.
이모는 노인이 될수록 잘 울고, 잘 삐지고, 성을 잘 내시곤 했다.
인간은 죽음 앞에서 종교심을 되찾고 자신을 돌아보게 되는데
불행하게도 이모님에겐 그런 모습이 보이질 않았다.
돌아가시기 얼마 전부터는 이모는 침상에 사지가 묶여 인공 호흡기에 의지하셨다.
엄마에게 이모 소식을 전해들을 때마다 나는 늘 회의를 떨칠 수 없었다.
오빠는 어쩌자고 인공 호흡기를 떼지 않는 것일까.
의사로서의 사명 때문에?
효심 때문에?
이모는 목숨만 이어가는 삶의 비참함을 톡톡히 보여주고 떠나셨다.
몸에서는 냄새가 났고 긴 병에 효자 없다고 자식들도 의례적인 문병만을 했을 뿐이다.
부모님 세대들이 한 분 한 분 가고 있으니 이제 돌아오는 건 내 차례가 되겠지.
삶에는 예행 연습이 없지만, 죽는 것만은 예행 연습을 할수 있는 기간이
누구에게나 주어지는 것 같다.
산다는 건 죽음을 향해 간다는 의미도 될 수 있으니 말이다.
나는 어떤 죽음을 맞아야 할 것인가.
죽음의 문제는 곧 삶의 문제와 직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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